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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네슈퍼로 나오는 건물은 실제로도 하나뿐인 동네 문구점이자 상점이었다. 
사진은 영화촬영 이전 모습.
 연희네슈퍼로 나오는 건물은 실제로도 하나뿐인 동네 문구점이자 상점이었다. 사진은 영화촬영 이전 모습.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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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네슈퍼는 러시아와 관련한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다. 주민들은 연희네슈퍼 바로 뒷집을 ‘러시아집’이라고 부른다.
 연희네슈퍼는 러시아와 관련한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다. 주민들은 연희네슈퍼 바로 뒷집을 ‘러시아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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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에서 삼촌 한병용(유해진 분)과 조카 연희(김태리 분)는 연희네슈퍼에 산다. 또한 배우 강동원과 연희는 이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시국을 이야기한다.

영화 <1987>이 흥행몰이를 하면서, 영화에 나오는 배경이 된 실제 장소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 가운데 '연희네슈퍼'는 목포 선창가에 있다. 해안로 127번길에 있는 이 작은 건물과주변은 비밀과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연희네슈퍼로 나오는 건물은 실제로도 하나뿐인 동네 문구점이자 상점이었다. 상점 뒤로 방 한 칸과 주방이 딸린 단조로운 콘크리트 건물구조다. 건물 뒤로는 두세 평(6~7㎡) 크기의 마당과 화장실이 있다. 이 집의 비밀은 마당 앞에 있다. 마당 앞에 30미터에 달하는 제법 큰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일제강점기 때 미군의 폭격 등 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 파놓은 것이다. 근대 역사현장이 작은 동네 상점 뒤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이다.

이 집의 주인은 김현일(백제한우한돈 대표·49)씨다. 김씨가 주인이 된 건 지난해 3월이다. 목포시내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 시절 동굴을 탐사하던 김씨는 이 건물을 눈 여겨 봤다. 이후 주인을 설득해 사들였다. 김씨에 의해 동굴의 존재도 널리 알려졌다.

김씨는 "현재 동굴탐사협회를 만들어 일제강점기 시절 목포지역에 만들어진 20여기의 동굴 탐사와 이를 활용한 근대역사 체험과 관광활성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전 주인이 운영하던 상점을 영화 <1987> 속 연희네슈퍼로 정비해 다시 열 계획"도 밝혔다.

연희네슈퍼로 나오는 건물은 실제로도 하나뿐인 동네 문구점이자 상점이었다.  이 집의 비밀은 마당 앞에 있다. 마당 앞에 30M에 달하는 제법 큰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일제강점기 때 미군의 폭격 등 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 파놓은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은 김현일(백제한우한돈 대표·49)씨다.
 연희네슈퍼로 나오는 건물은 실제로도 하나뿐인 동네 문구점이자 상점이었다. 이 집의 비밀은 마당 앞에 있다. 마당 앞에 30M에 달하는 제법 큰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일제강점기 때 미군의 폭격 등 전쟁에 대비해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 파놓은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은 김현일(백제한우한돈 대표·49)씨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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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집’은 위치상 연희네슈퍼 동굴 위에 있다. 동굴은 ‘러시아집’ 아래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꺾어져 있는 형태다.
 ‘러시아집’은 위치상 연희네슈퍼 동굴 위에 있다. 동굴은 ‘러시아집’ 아래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꺾어져 있는 형태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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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만이 아니다. 연희네슈퍼 일대는 목포 근대사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연희네슈퍼 정면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명 '유곽거리'다. 히빠리마치 또는 히빠리골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힛빠리'(引つ張り)라는 말은 일본어로 '잡아당긴다'는 말로, 호객행위를 뜻 한다.

목포항은 1897년 개항되었고, 목포에 유곽이 생긴 것은 1905년도의 일이다. 당시 자료를 보면, 1936년 목포에는 요릿집이 12곳, 음식점이 336곳, 카페가 20곳, 청루가 7곳이었다. 당시 번성했던 목포 경기를 느낄 수 있다.

연희네슈퍼 앞 유곽거리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주길정(住吉亭), 현해루(玄海樓), 만직지루(萬直志樓), 삼교루(三橋樓) 등이 있었고, 조선인이 경영하는 유곽으로는 일출정(日出亭), 명월루(明月樓), 영춘정(永春亭) 등이 있었다.

지금도 유곽거리에는 2층짜리 옛 유곽 7~8채가 세월의 흔적은 간직한 채 남아있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개량되고 부서졌지만, 옛 유곽의 모습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53년을 거주했다는 김금석(76)씨는 "이 일대가 모두 유곽거리였다"면서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유곽이었는데 개조했다"고 말했다.

점령군 일본인들의 유희와 환락의 장소였던 유곽거리는 이후 갈 곳 없는 동포들을 보듬는 곳이 된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일본 시모노세키 등지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이 귀국 뒤 빈 유곽에 수용되었다.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인들이 조선을 점령했던 일본인들의 환락의 장소에 정착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연희네슈퍼 일대는 목포 근대사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연희네슈퍼 정면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명 ‘유곽거리’다. 점령군 일본인들의 유희와 환락의 장소였던 유곽거리는 이후 갈 곳 없는 동포들을 보듬는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곳이 된다.
 연희네슈퍼 일대는 목포 근대사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연희네슈퍼 정면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명 ‘유곽거리’다. 점령군 일본인들의 유희와 환락의 장소였던 유곽거리는 이후 갈 곳 없는 동포들을 보듬는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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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네슈퍼 일대는 목포 근대사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연희네슈퍼 정면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명 ‘유곽거리’다.
 연희네슈퍼 일대는 목포 근대사가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연희네슈퍼 정면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명 ‘유곽거리’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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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재일조선인들을 품어줬던 연희네슈퍼 일대는 이후 다시 한번 갈 곳 없는 동포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민들이 목포에도 몰려들었다. 피란민들은 유곽거리 일대와 연희네슈퍼 근처 언덕 등에 판자촌을 세우고 정착했다.

이들은 산 중턱에 정착하면서 일제 상징을 뽑아냈다. 피란민들이 정착한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산에 무성한 벚꽃나무 때문에 '사쿠라마치'라고 불렀었다. 피란민들은 벚꽃을 모두 뽑아내고 터전을 잡았던 것이다. 마을주민 김금석씨는 "과거에는 이 일대에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살았는데 대부분 떠나고 없다. 피란민들도 대부분 군산과 인천 등지로 떠났다"고 말했다.

연희네슈퍼는 러시아와 관련한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다. 주민들은 연희네슈퍼 바로 뒷집을 '러시아집'이라고 부른다. '러시아집'은 위치상 연희네슈퍼 동굴 위에 있다. 동굴은 '러시아집' 아래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꺾어져 있는 형태다. 또 러시아집은 유곽거리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위치로, 목포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한 주민은 인근 산을 '러시아 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목포가 개항되어 각국 거주지가 획정되자 러시아는 영사관 부지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의 연희네슈퍼 주변과 및 인근지역의 토지 등을 사들였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패망으로 일반에게 불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이라는 아픈 근대사, 현대사에서 가장 잔혹했던 동족상잔의 아픔을 준 6·25한국전쟁, 비록 영화 속이지만 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1987년 6월 항쟁까지. 목포 서산동 연희네슈퍼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영화 1987>이 흥행몰이를 하면서, 영화에 나오는 배경이 된 실제 장소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 가운데 ‘연희네슈퍼’는 목포 선창가에 있다.
 <영화 1987>이 흥행몰이를 하면서, 영화에 나오는 배경이 된 실제 장소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 가운데 ‘연희네슈퍼’는 목포 선창가에 있다.
ⓒ 영화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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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987, #연희네슈퍼, #목포 서산동, #김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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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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