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선수가 은퇴 후 행정가의 길을 간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많은 2002 월드컵 4강 신화 주역들이 코치, 감독의 길을 걷고 있고 실제로 한국에서는 지도자의 길이 가장 직접적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계속되는 축구 대표팀의 부진으로 인해 사람들은 단순히 그라운드 위 선수들의 헝그리 정신을 문제 삼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본질은 시스템이고 행정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많은 축구 팬들이 축구협회의 개혁을 강하게 외쳤다.

토티(AS로마 풋볼 디렉터)와 반 데 사르(아약스 마케팅 디렉터) 등 해외 유명 축구 선수가 축구 행정가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과 더불어 이러한 유명 선수들 역시 산업으로 확장된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단순히 그라운드 위가 아닌 구단을 둘러싼 '시스템'에 주목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풋볼 디렉터가 가진 의미

 테크니컬 디렉터를 영입하며, 시스템 강화를 계획하는 전북 현대 모터스.

테크니컬 디렉터를 영입하며, 시스템 강화를 계획하는 전북 현대 모터스. ⓒ 전북 현대 모터스 공식 홈페이지


전북이 조긍연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을 테크니컬 디렉터로 선임한다는 발표를 했다. 굉장히 생소한 단어다. 쏟아지는 이적 시장 소식에 주목받지 못하고 기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자본 경영은 CEO가 맡고 팀이 가진 철학과 선수 운영에 대한 결정은 '풋볼 디렉터'가 맡는 유럽의 최근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전략이나 시스템을 관리하는 구단 자체적인 부서는 존재하지만,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축구와 관계없이 스폰서 기업에서 줄곧 일하다 구단을 맡은 고위급 경영인이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효율적인 판단을 할지 모르지만 소통 없는 판단과 축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판단으로 축구 관계자들과 마찰음이 끊이지 않았다.

산업으로 발달한 축구는 수많은 자본이 모여들어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한 시장 속에서 기업과 연결된 클럽의 자본을 운용할 전문 경영인의 필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해 버리는 구단 속에서 감독 혼자 선수 영입, 전략 회의, 그 외 대외적으로 팀의 색깔을 보여주는 마케팅까지 신경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일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며 팀의 확고한 철학을 고민하고, 감독에게 조언하며 편하게 그라운드 위의 상황에만 신경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테크니컬 디렉터 혹은 스포츠 디렉터라고도 불리는 '풋볼 디렉터'의 일이다. 그만큼 구단의 경영적 상황과 그라운드 위의 철학을 모두 이해하며 튼튼한 뿌리 역할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황선홍 감독이 떠나자 포항의 티키타카라고 불리는 '스틸타카'는 사라졌다. 당시 포항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지만 유지하지 못했다. 성남은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 어수선한 분위기가 그라운드 위까지 영향을 미치며 강등 당했다. 누군가가 떠나면 혹은 다른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라운드 위 K리그 팀의 뿌리는 쉽게 흔들리고 색깔은 순식간에 사라져왔다.

레스터 시티 역시 라니에리 감독이 떠난 후 잠시 흔들렸다. 그런데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 이후 다시 일관된 색깔의 '역습 축구'를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스널, 바르셀로나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유소년을 발굴해 짧은 패스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풋볼 디렉터와 그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며 돋보이게 만드는 전문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K리그 다른 구단들의 역사를 봤을 때 전북도 최강희 감독 장기 집권 체제가 끝났을 때 팀의 색깔이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북은 한 단계 발전한 풋볼 디렉터 시스템 도입을 통해, K리그에 악순환처럼 지속되던 '팀의 뿌리가 흔들리고 색깔이 희미해지는 현상'을 용납하지 않고 자신들의 '닥공' 축구의 명맥을 꾸준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산업으로 성장한 축구 속 다양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감독 교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역습 축구를 보여주는 레스터 시티. 핵심 선수인 제이미 바디.

감독 교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역습 축구를 보여주는 레스터 시티. 핵심 선수인 제이미 바디. ⓒ 레스터시티 공식 홈페이지


스페인 라리가가 큰 자본이 돌고 있는 아시아 시장을 주목해서 이번 엘클라시코 시간을 최초로 아시아 시각에 맞추는 마케팅을 통해 아시아 팬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이처럼 산업으로 성장한 축구에서는 '풋볼 디렉터'를 비롯해 다양한 직종의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들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다행히 한국은 박지성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진출로 20, 30대 젊은 남성들이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축구 문화를 접했고, 현재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 직종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스포츠를 공부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고 '슛포러브', '고고고알레알레알레' 등 축구를 활용한 통통 튀는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있다. 축구를 사랑하는 젊은 인재들과 함께, 축구를 둘러싼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북의 '풋볼 디렉터' 도입은 K리그가 가진 하나의 한계를 깨고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현상이다. 자본과 전력에서만 '1강' 체제가 아닌 구단에 대한 진정한 발전에 대해 한 단계 앞선 모습을 보여준 전북의 지속적인 '1강'을 향한 노력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 현상을 시작으로 K리그 구단들의 다양한 축구 시스템 발전 시도가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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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신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joonho146)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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