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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책표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책표지
ⓒ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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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만큼 우리 입에 착 달라붙은 외래어가 또 있을까 싶다. 더워도 스트레스, 추워도 스트레스, 일이 많아도 스트레스, 없어도 스트레스다.

미혼이었던 친구는 언제 결혼하냐는 사람들의 질문이 스트레스라더니, 이제 결혼을 목전에 두고 준비할 것이 많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미 내가 8번 이 단어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고만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라니,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라고요!' 하며.

여기, 오만가지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스트레스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로운지 설명하는 책이 있다. 우르스 빌만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그는 스트레스를 심리적 과부하 단계, 혹은 그 과부하에 따른 우리의 반응으로 지칭하는 것이 정확한 정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형태의 스트레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활성화시스템으로 우리가 생태계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즉, 스트레스 반응은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개체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가령, 식용달팽이 에스카르고가 중금속 오염에 적응해 더 큰 면역력을 갖춘 것도, 사상균 유로튬 루브럼이 적대적 환경인 사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도 다 스트레스 덕분이라는 것.

인간도 다르지 않다. 자연도태의 압박을 받는 생명체가 변화를 모색해 진화를 거듭한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가 굶주림 스트레스에 시달려 발전을 거듭한 것도 스트레스의 기능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은 이미 맹수의 이빨로부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단계는 벗어났으므로, 동식물에 관한 비유는 와닿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타잔의 옷을 입고 원시림으로 돌아갈 일은 없으니, 이제 스트레스는 피하고만 싶다고.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스트레스가 그토록 부정적인 것이라면, 왜 우리는 소름끼치는 공포 영화는 물론 때때로 선혈이 낭자한 하드코어물을 찾고, 놀이동산의 위험천만해 보이는 놀이기구를 타기위해 장시간 기다리는 수고까지 감내하는 것일까. 사우나 또한 자발적으로 스트레스를 찾는 행위의 단적인 예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은 분명 스트레스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발적으로 스트레스를 찾아다닌다. 저자가 주지하듯, 행복한 이야기보다 갈등과 고통의 이야기가 많은 소설을 내가 끊임없이 탐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스트레스의 순기능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말하는 스트레스의 기능을 살펴보면 이렇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간은 글리코겐을 혈액으로 쏟아내고, 이로써 뇌는 신경회로를 활성화해 최단 시간 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의 생존에 필수적일 것으로 보이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사고기관의 모든 힘을 모으는 것이다.

동시에 신체는 지방산을 분비한다. 이때 근육의 긴장도는 증가하지만 생존을 좌우하지 않는 신체 부위의 긴장도는 오히려 줄어든다. 스트레스 앞에서 음식물 소화가 중단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요의가 강해지거나 설사가 나는 것도 소화기관을 최대한 비워 신체가 최대한 민첩해지기 위한 활동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 몸은 나를 위해 참 많은 일을 하는 기특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스트레스 덕분에.

물론, 스트레스가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스트레스는 대개 '장기 스트레스'라는 것에 주목한다. 실제로 몇 분, 최대 몇 시간 정도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이롭지만,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런 이유로 기업의 고위 경영자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오히려 가난과 고독이 떠안겨준 만성 스트레스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만성 스트레스의 원인이 오직 낮은 사회적 지위나 빈곤이라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분명히 한다. 우리는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은 사람은 지위가 아무리 낮아도 맨 꼭대기에 앉아 힘들어하는 경영자보다 더 행복할 확률이 높다. 관건은 부담이 과도하지 않은지, 목표가 분명한지, 지속적으로 경쟁에 시달리는지, 따돌림을 당하는지 등에 있다. 직장 분위기든 작업환경이든 생활환경이든 모름지기 불만스러운 것은 만성 스트레스를 촉진하는 법이다."


애당초 우리의 스트레스 반응은 단기간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책에 등장한 어느 정신병리학자는 스트레스를 짧은 단위로 나눠 사이사이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하고, 어떤 건강심리학자는 세상을 향한 관점과 자세를 바꿀 것을 권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스트레스는 건강에 해로운 '만성 스트레스'를 막아주는 최고의 무기이며, 심지어 스트레스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보호해주는 소중한 원천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스트레스를 '밋밋한 일상의 양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그러나 아무리 스트레스의 훌륭한 기능을 알았다고 해서, 다가오는 스트레스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환영인사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를 받는 이중고로부터는 조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다가올 스트레스, 그래, 새해에는 좀 더 담대하게 너를 맞이하리라 다부진 다짐을 해 본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인용한 스트레스 연구자 한스 셀리에의 말을 재인용하겠다. 

"스트레스의 부재는 죽음이다. 죽은 사람만이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 질병, 고통, 우울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새로운 탐구

우르스 빌만 지음, 장혜경 옮김, 심심(2017)


태그:#스트레스는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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