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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에 거의 다 왔다. 뭐 먹고 싶은거 있냐? 우리가 사가지고 갈게"

"병원에서 잘 챙겨줘서 별로 먹고 싶은거 없다. 캔맥주나 두어 개 사와라. 나 지금 말라죽기 직전이다"

"너 미쳤냐?"

친구들 여럿이 입원실에 찾아왔다. 캔맥주 이야기는 농담 반 진담 반이었는데, 사실은 진담 쪽에 더 가까웠다. 나의 몸 상태로 봐서 술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기름을 쏟아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입원실에서 맥주를 홀짝 거리다가 간호사에게 걸리면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또 술 타령을 하다니, 진짜 내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한 술집에서 보았던 신천희 시인의 '술 타령'이라는 시(詩)가 생각난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입나
술 사먹지'

소설가와 시인이 늘어 놓는 '술 타령' 이야기

병원 로비의 크리스마스 트리
 병원 로비의 크리스마스 트리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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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희 시인도 어지간히 술을 좋아했나보다. '적당히 마시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술을 마시지만, 술은 마시기 시작하면 '적당히'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일화 역시 떠오른다.

스티븐 킹도 한때는 술을 끼고 살면서 글을 썼단다. 거기에 약물 문제까지 더해졌다. 술과 약물에 빠져서 글을 쓰던 어느 날, 부인이 와서 일종의 엄포를 놓았다. 술과 약물을 끊던지, 아니면 꼴 보기 싫으니까 집에서 나가라고. 스티븐 킹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집에 불이 나서 옥상으로 대피했다. 헬기가 구조하러 와서 밧줄 사다리를 내렸는데, 정작 구조 받아야할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요!"

스티븐 킹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면서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니. 어쩌면 술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추운 날에 찾아와준 친구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올지도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올지도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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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친구들과 함께 입원실에서 떠들 수는 없는 일. 나 혼자 쓰는 입원실이라면 모를까. 시끄럽게 떠들다가는 다른 환자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1층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내려왔다.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제대로 못잘 것 같다. 안 그래도 입원 이후에 밤마다 잠을 조금 설치고 있었다. 내 옆 침대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는 신장 투석 환자였는데, 무슨 안 좋은 꿈을 꾸시는지 밤이면 가끔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덩달아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새벽 2-3시에 간호사가 들어와서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체온과 혈압을 측정해 가기도 했다. 간호사실로 데려가서 키와 몸무게를 측정한 적도 여러 번이다. 체온과 혈압은 그렇다고 쳐도, 그 새벽 시간에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잠이 덜 깨 멍한 상태에서 그런 걸 질문하기도 좀 그렇고.

아무튼 한 번 깬 잠은 쉽게 다시 오지 않는다. 그 때마다 머리맡에 있는 조명을 켜고 집에서 가져온 책을 뒤적이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았다. 지나간 가요의 제목처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침대 전체를 커튼으로 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 입원실의 침대가 왠지 아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층 커피전문점에서 나는 커피 대신 생과일 주스를 주문했고, 친구들은 커피를 마셨다. 다들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있단다. 하긴 우리 나이도 어느새 40대 중반, 쉽게 말해서 만들어진지 40년이 훌쩍 넘었으니, 망가지는 부위가 나오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역시 나이를 먹다 보니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여기가 병원이라서 그럴 수도 있을 테고. 친구들은 추운 밤에 각자 집으로 향했고 나는 다시 입원실로 돌아간다. 여기까지 찾아와준 친구들이 고마울 뿐. 오늘 밤에는 깨지 않고 푸욱 잘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대학병원, #입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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