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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기지 않고 놀이를 하는 실천적 지혜를 아이에게 선물하려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가정의 독재자가 되지 않으려면 《정치학》을 읽어야 합니다
 끊기지 않고 놀이를 하는 실천적 지혜를 아이에게 선물하려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가정의 독재자가 되지 않으려면 《정치학》을 읽어야 합니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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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수단으로 대접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다가 위 구절에서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아이들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헌신한다지만, 그것은 아이를 위한 것인지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인지 막연해졌습니다.

절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다투다가 한 아이가 울거나, 또는 형제가 호랑이처럼 서로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 되면 저는 '진압'을 했습니다. 지금도 진압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기가 버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다 큰 어른이 아니기에 싸움은 불가피합니다. 싸움을 억지로 뗴어놓는 것은 사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 자신을 위해서죠. 부모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아이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이들의 진압된 감정은 전정가위를 쓰지 않고 함부로 따버린 귤나무의 가지처럼 생채기가 드러난 채로 마음의 세균에 노출되죠. 넘어진 상처만 소독약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아이가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가장 클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부모가 '큰맘'을 먹을 때입니다. 큰맘 먹고 캠핑가거나, 큰맘먹고 차로 먼 길을 달려 펜션이나 특별전시회 같은 곳에 다녀오거나, 큰맘 먹고 OO랜드 같은 대형 놀이공원에 갔을 때를 돌이켜보세요.

놀이공원 키즈카페에서 빵봉투처럼 아무데나 드러눕거나 걸터앉아 쪽잠을 청하는 그 많은 어른들의 모습은 즐거워보이지 않았습니다.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의 다툼과 짜증 소리에 폭발한 부모님들. 다시는 이런 수고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들.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다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그 고생을 했다면 아이는 이미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것입니다. 목적에 아이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짜증나는 일들이 곁가지처럼 붙어 있는 것 아닐까요? 아이를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버리면, 부모 자신은 만족스러울까요? 부모 스스로도 수단이 되어버리니 썩 내키지 않을 걸요.

놀이는 휴식을 위해 있고, 휴식은 노력으로 인한 고통의 치료제인 만큼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놀이가 즐겁고, 휴식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실천적 지혜'입니다. 실천적 지혜가 없다면 아이들의 놀이도 곧 싸움터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실천적 지혜는 부모라는 '윗물'에서 흘러나와야 하죠.

예컨대 부모가 아이와 함께 놀이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다툼이 일어날 길목에서 부드럽게 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이 무슨 수로 놀이를 즐겁게 지속할 수 있을까요? 무슨 수로 다툼의 지뢰밭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부모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실천적 지혜'를 선물하는 몹시 드문 책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로 아이들과 놀아봤습니다

저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지혜와 배려를 하는 사람만이 오래도록 즐겁게 놀 수 있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부족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친 '실천적 지혜'를 활용해 놀아봤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특히 '놀이 후 욕구불만'의 문제가 제게는 난제 중의 난제였죠. 그걸 풀었습니다.

놀고 나서 아이들은 마음이 평화로울 뿐만 아니라 한껏 성숙해져 집안일을 도우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실천적 지혜를 선물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그 과정을 소개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혼'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완전한 사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느냐? "혼이 몸을 지배"하는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A.매슬로는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에 따라 연구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존재의 심리학》(문예출판사)입니다. 매슬로의 용어로 말하자면 '자기 실현자'에 대한 연구서입니다. 자기 실현자란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 안에서 가장 꼭대기(자기실현 욕구)에 도달한 사람을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람에게 혼이 있지만 각자 "다른 방법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이를 언급했습니다.

아이는 기획 능력은 있지만 아직은 그것이 성숙하지 못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지금까지 놀이나 여행 등의 기획을 부모님이 하셨다면 그 일부분을 아이에게 맡기길 권합니다. 어디 가자는 큰 기획은 부모가 세울 수 있지만, 어디 가서 무엇을 하자는 자잘한 기획까지 부모가 해버린다면 아이들은 '타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재미 없는 계획이 될 것입니다.

아이의 기획 능력을 믿으세요.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바닷가에 가지만 거기서 무엇을 할지는 아이들에게 맡깁니다. 물론 위험천만한 계획을 말하기도 하지만, 부모가 보완을 해주면 무리 없이 실행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놓인 곳에서 자유롭게 상상해 놀이를 만들어내고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모들에게 탁월함을 심어줘야지 '관리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일일이 지시하다 보면 아이의 잠재력은 점점 바닥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탁월함을 선보이면 아이들은 따라하려고 노력하고, 부모보다 더 훌륭한 탁월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만 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경전에도 자주 나오는 얘기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이 '독재'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부모가 노예를 다스리는 주인인지, 자유민을 지배하는 정치가인지가 이를 결정하죠. 부모가 노예가 되고, 아이가 노예가 되기가 참 쉬운 곳도 가정입니다.

가정이 어떤 곳이 될지, 아이들이 어떤 지위를 가지게 될지 결정하는 것은 아이일까요, 부모일까요? 저는 자명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은 개인보다 더 자족할 수 있고 국가는 가족보다 더 자족할 수 있는데, 국가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민들이 자족할 수 있을 만큼 많고 다양해야" 한다는 말처럼 가정은 아이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한자쓰기와 일찍 일어나기를 습관화하지 못해 걱정이었습니다. 한자쓰기는 '성실함'을 위한 도구인데, 아직은 성실함을 다 선물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한 끝에 '칭찬스티커'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칭찬스티커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차에 의견을 낸 첫째가 파워포인트로 만들었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칭찬스티커였습니다. 쿠폰북에 가까웠죠. 종이를 가로로 양분한 다음 "민준 1~100", "민서 1~100"을 표시했을 뿐입니다. 부모는 사인을 하거나 도장을 찍어서 표시를 하면 됩니다. 100개가 다 채워지면 원하는 것을 사주기로 했고, 칭찬스티커 받을 항목도 대화를 통해 정했습니다.

돌아보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놀이를 하고 나면 욕구불만이 없고 아이들도 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정한 규칙은 비교적 오래 갔습니다. 가정도 하나의 정치 단위라는 사실을 인정하신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꼭 읽어보세요. 《정치학》과 쌍둥이 책으로 함께 읽어야 할《니코마코스 윤리학》에 관한 소개와 욕구불만을 남기지 않는 놀이와 관련한 자세한 글은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에 소개했기에 이 글에는 자세히 싣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글라이더)를 출간하고 나서 인문고전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면과 다른 이유 때문에 책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맞게 연재하려 합니다. 인문고전의 눈을 얻어다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님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태그:#아빠의 아이 공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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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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