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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표지
▲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표지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표지
ⓒ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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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는다고 생각하면 또다시 당신 생각'이란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이 가사처럼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생각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흰곰 효과'라고 한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미리 흰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고 했더니 오히려 실험시간 내내 흰곰만 생각하더라는 연구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참 알 수가 없다. 오죽하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마저 있을까. 그런데 이 마음이란 것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일까?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는 없을까? 만약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마음이 있다면 같은 동물인데 닭이나 오징어나 문어는 어떨까?

문득 남의 마음을 몰라 애태우던 때가 생각나면서 마음이란 게 뭔지, 마음은 언제 느낄 수 있는 건지, 왜 제각각 마음이 다른 건지, 마음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졌고, 때마침 만난 책이 '흰곰 효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와 커트 그레이가 쓴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원제: The Mind Club: Who Thinks, What Feels, and Why It Matters)>이다. 

2013년 루게릭병으로 눈을 감기 전까지 대니얼 웨그너는 제자인 커트 그레이와 함께 마음의 정체를 밝히는 연구에 몰두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한 마디로 마음은 지각의 문제이다. 저자들은 '마음은 마음을 바라보는 자의 눈 안에 있다'고 말한다.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서는 사람을 비롯해서 동물, 기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심지어 죽은 자와 신(神)까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마음 지각의 문제를 탐구함으로써 마음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밝히고 있다.

마음을 둘러싼 수많은 사례와 실험에 대한 얘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한 해를 보내며 읽기에 딱인 것 같다.

동물이 재판을 받는다고?!

만약 강아지를 요리해 저녁 밥상에 올려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밥 대신에 욕을 무진장 얻어먹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밥상에 올라온 것이 강아지가 아니라 고등어나 오징어라면 어떨까? 이번엔 욕이 아니라 가족들 모두 흐뭇한 얼굴로 칭찬하겠지? 이처럼 같은 동물임에도 고등어나 오징어는 되는데 어째서 강아지나 고양이는 안 되는 걸까?

그것은 바로 마음의 지각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등어나 오징어에게는 마음이 있다고 지각되지 않지만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는 마음이 있다고 지각되고, 마음이 있는 것으로 지각된 동물에게는 사람들이 도덕적 권리를 인정하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동물에게는 도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렇게 마음이 있다고 지각되면 동물이 사람처럼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 중세에는 동물을 재판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농작물 파괴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메뚜기도 있었고 알을 낳는 암탉 행세를 해서 사형 선고를 받은 수탉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기를 잡아먹은 죄로 재판을 받아 사형에 처해진 돼지도 있었다는 것이다.

동물이 재판을 받다니 이 무슨 일일까? 이것은 '쌍의 완성'이란 개념으로 설명되는데, '쌍의 완성'이란 피해를 입은 수동자가 있으면 피해를 끼친 행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불의의 장면을 목격했을 때 사람들은 쌍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책임을 물을 대상을 찾는다.

이때 대상은 마음을 가진 행위자여야 하는데, 대상이 되는 사람이 없을 경우, 동물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즉 동물을 마음을 가진 행위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마음 지각은 이성보다는 감성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눈으로 동물을 바라보지만, 동물의 마음에 대해서는 우리의 심장으로 바라보는 듯하다고 저자들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낮에는 동물보호협회에 돈을 기부하면서도 밤에는 소주에 삼겹살을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환자 코스프레는 이제 그만

재판을 보이콧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가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었다. 박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검찰조사나 재판에 나갈 때면 으레 환자복에 휠체어를 타고 마치 다 죽어가는 사람마냥 아픈 척을 하는 모습, TV 화면을 통해 너무나도 많이 봐 왔다.

그럴 때마다 '저 사람들이 정말 아플까? 쇼 일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대체 왜 저렇게 할까 궁금한 한편 뭔가 마음에 찜찜함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 그렇게 환자 코스프레를 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그건 바로 심리학적으로 계산된 각본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또는 우리 자신)을 상처 받기 쉬운 감수자로 간주하면 그 사람을 사고하는 행위자로 보기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사고하는 행위자로 간주하면 그 사람을 상처 받기 쉬운 감수자로 보기가 쉽지 않다. 행위 능력의 지각과 감수(즉 경험) 능력의 지각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역관계를 가리켜 우리는 '도덕적 유형 고착'이라고 부른다. (본문 154쪽)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일단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로 인식되면 나쁜 짓을 하는 행위자로 보여지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저 꾸며낸 연출일 뿐이지만 그런 전략이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점이다.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피하게 된 것은 피해자가 상처 받기 쉬운 감수자라는 마음 지각에 의해 일어난 것이며, 피해자에 대한 이런 지각은 도덕적 유형 고착에 따라 관대한 처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재벌이나 정치인들의 환자 코스프레는 단순히 아픈 척이 아니라 관대한 처분을 받아내기 위한 고도의 심리학적 분석 끝에 나온 것이며,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 즉 마음의 지각을 이용하는 셈인 것이다.

우리는 이 마음 지각의 힘에 의해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해치거나 보호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각하는 존재이고, 지각하는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가진 것은 지각뿐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이 마음 지각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이것이 실재하는 유일한 것이라고도 한다. 알듯 말듯 어렵기도 하지만 아마도 부처가 말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개념과 비슷한 것 아닐까. 실체가 없는 실체, 그래서 알기 어려운 것, 그것이 마음인가 보다 하면서 한 해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대니얼 웨그너, 커트 그레이 지음, 최호영 옮김, 추수밭 펴냄, 2017년 10월, 447쪽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마음의 비밀

대니얼 웨그너 & 커트 그레이 지음, 최호영 옮김, 추수밭(청림출판)(2017)


태그:#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대니얼 웨그너, #커트 그레이, #마음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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