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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아내가 우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깨어나 보니 아내가 전화기를 들고 울고 있었다.

"아니 무슨 전화인데, 울어?"
"성원이 전화야."
"왜. 무슨 일인데?"

성원이는 서울에 살고 있는 큰아들 이름이다. 낮에 길을 가는데 길 유기견 한 마리를 보았단다. 겁에 질린 강아지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계하며 피했는데 유독 자신에게만 친근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집을 나온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털이 온통 더럽게 되어있는 걸로 봐서는 한참이 지난 것 같이 보였단다.

평소 큰아들은 동물을 좋아했다. 어릴 때는 개미를 집에 데려오기도 하고, 풍뎅이 하늘 소 등 별의별 곤충들을 집으로 가져와서 키우곤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병아리를 사온 적도 있었는데, 금방 죽어 많이 슬퍼했다.

옆에서 우는 모습을 보기가 딱해서 잘 죽지 않는 촌닭 병아리를 사주려고 동물시장까지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동물시장엔 아이가 키울 만한 병아리가 없어 오리 새끼 두 마리를 사와 아파트에서 키웠다. 코가 유난히 커서 오리의 이름을 코심이와 코돌이로 지었다. 오리를 키우는 동안 아파트인 우리집은 구경 온 동네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길에서 황조롱이 한 마리를 안고 집에 온 적도 있다. 처음엔 새 이름을 몰라 부산에서 동물병원 하는 조카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조카는 그 새가 천년기념물 황조롱이이며 맹금류라고 했다.

황조롱이는 어른인 내가 봐도 겁이 날 정도로 컸었는데 큰아들은 겁도 없이 새를 안고 집에 왔다. 집에 데려온 연유를 물으니 도로 옆 화단에 힘 없이 앉아있는 것을 봤는데, 손을 벌리니 자기에게 힘겹게 다가와 안겼다고 한다. 그래서 119에 신고하여 새를 가져가도록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집에 '축복'이라는 이름의 말티즈를 키우고 있다. 그 개도 큰아들을 유난히 따른다. 서울에 있다 한 번씩 집에 내려오면 축복이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서 난리가 난다. 언젠가 큰아들이 동물에게 손을 내미는 눈빛을 본 적이 있다. 그 부드럽고도 선한 눈빛. 그 눈빛이 동물과 교감을 하는 것 같고, 생명을 아끼는 천성을 타고난 것 같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길에서 만난 바둑이를 큰아들이 사는 원룸으로 데려와 씻기고 먹을 것도 주었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밥을 주면 주는 대로 다 받더란다. 그래서 이름을 '먹돌이'라 지었단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고 사는 곳이 원룸이라 키울 형편이 안 되어 유기견 분실 센터에 가져다주었단다.

큰아들이 아내에게 전화를 하면서 운 이유는, 10일 이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거나 분양되지 않으면 유기견 분실센터에서 안락사를 시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살의 남자가 자신이 키우지도 않은 강아지가 안락사 될 거라는 말을 듣고 울었고, 우는 아이의 전화를 받고 아내도 울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난 뒤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먹돌이가 분양이 되었어요."

큰아들 말에 따르면, 먹돌이를 유기견 센터에 맡긴 후 견주를 찾기 위해 사진을 복사해서 전봇대에 붙이고, 주변 지인들 중에 키울 사람이 없는지를 알아보고, 인터넷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등 나름 분양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거다. 그런데 마침 키우겠다고 나선 사람이 생겨 분양을 했다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이 목소리가 함박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 웃음을 보고 아내도 너무 좋아했다.

'난, 참 행복하다. 이렇게 순수한 아들과 아내가 내 아들이고 내 아내여서.'


태그:#CYYOU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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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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