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이 6명이나 되는데 이들이 모두 유명한 배우라면, 대중은 자연스레 작품에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영화 < 1987 >은 김윤석, 하정우 등 6명의 주연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김윤석과 하정우 외에도 <아가씨>로 이름을 알린 김태리와 <남한산성>의 박희순, <택시운전사>의 유해진,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이희준이 함께 주연으로 등장한다. 6명의 흥행작 배우들은 영화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 1987 >이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주연 배우들 보다 시나리오에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 1987 >은 대중의 관심작이 되었다. 민주화 운동 역사의 한 축인 '6월 민주항쟁'의 시작점이기도 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시나리오를 가진 < 1987 >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역사와 영화의 경계에서 완성된 < 1987 >

 1987 스틸 이미지

ⓒ CJ 엔터테인먼트


올해에는 유달리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들이 많았다. <택시운전사> <군함도> <박열> 등 시대와 인물 모두 다양했고, 대중의 시선도 다양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다뤘던 <택시운전사>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거뒀지만, 일제 치하의 아픔인 '군함도 조선인 강제노역'을 다룬 영화 <군함도>는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과 함께 기대와는 다른 성적을 냈다.

<택시운전사>와 <군함도>가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든 이유는 '역사적 사실을 얼마큼 완성도 있게 각본화 시켰는가'에 있었다. 같은 기준에서 < 1987 >은 사실적 묘사와 영화상의 각본이 잘 어우러진 영화라 할 수 있다. 큰 틀의 역사적 사실들을 재현하고, 작은 이야기들은 영화에 맞추어 각색하면서 관객들이 감동하고 분노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냈다.

몇몇 등장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역사와 다른 점이 있지만, 영화 자체를 움직일 만큼의 변화는 아니다. 오히려 고 이한열 열사의 안경을 본떠 소품을 만들고, 실제 당시 사진과 같은 구도의 장면을 담는 등 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 1987 >은 영화의 주 소재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과 이를 통해 이어진 '6월 민주항쟁'까지 영화에 담아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지켜야 할 '사실을 기반으로 한 각본화'를 성공시킨 것과 역사와 영화와의 경계에서 작품을 완성한 것에 대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

포스터에 등장하지 않았던 영화의 진짜 주인공

 1987 스틸 이미지

ⓒ CJ 엔터테인먼트


< 1987 >은 6명의 배우가 각각의 역할로 주연을 맡았다. 6명의 주연 모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연기하며 영화의 진행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영화의 주연배우들이 연기한 역할과 상관없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다른 인물을 뽑고 싶다. 바로 강동원이 연기한 이한열이다.

강동원이 연기한 이한열 역은 < 1987 >에서 연희(김태리 분)와 관련되어 등장한다. 학생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연희를 변화시키는 인물이자 실존 인물인 고 이한열 열사를 바탕으로 한 역할이다.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해 마지막에서야 이름이 등장하는 이 역할은 영화의 끝을 완성하는 소재가 된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을 이한열 역으로 꼽은 이유는 영화가 마무리되는 과정에 있다. 영화적 관점에서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 1987 >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해 '6월 민주항쟁'으로 끝이 나는 영화다. 이 둘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이한열'이라는 역할이 사건의 시작에서 끝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실제 역사에서도 고 이한열 열사는 '6월 민주항쟁'의 과정에 있다. 국민들은 연세대생이 최루탄을 후두부에 맞고 사망한 것에 분노했고, 외신에 보도된 사진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각색된 인물로 등장했지만, 이한열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인물이자 역사를 앞으로 이끄는 인물이었다. 그는 < 1987 >의 진짜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에 완성된 영화

 1987 스틸 이미지

ⓒ CJ 엔터테인먼트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 1987 >은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배우들의 대사에 관객들이 크게 웃는 경우도 드물고, 영화의 기반이 되는 사건들이 가지는 성격상 즐거움보다는 슬픔과 분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의 캐스팅 역시 영화를 받아들임에 있어 한 단계 더 생각하게 만든다. 고 이한열 열사의 영정사진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던 우현은 경찰 수뇌부로 등장하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은 안기부장으로 등장한다. 고 박종철의 고교 후배인 김윤석은 남영동의 박 처장 역을 맡았다. 이들은 악역으로서 역할을 다하지만 보는 이들에게 미묘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관객들이 가지는 미묘한 감정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온다. 보통의 영화들은 이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관객들이 빠져나간다. 하지만 < 1987 >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에 영화가 완성된다.

< 1987 >은 엔딩 크레디트에 1987년 당시의 영상들을 담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영상들과 고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영상까지 실제 영상들은 영화보다도 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음악 '그날이 오면'과 '가리워진 길'이 흘러나온다. 이 음악들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과 겹치며 관객들이 영화가 주는 분위기를 끝까지 가져갈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음악들은 시대를 대변하는 음악이자 인물을 비유하는 음악이기도 했다.

감옥에 가두지 못했던 진실을 담다

 1987 스틸 이미지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등장인물 이부영(김의성 분)은 "진실은 감옥에 가두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어쩌면 영화 속 악역들이, 역사 속 정권이 두려워했던 것은 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 1987 >은 이 '진실'을 129분의 영화로 담았다.

< 1987 >은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가 다른 영화들에 비교해 엄청나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다른 상업영화들에는 없는 1987년의 진실과 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상영시간 129분 동안 관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시대의 진실과 그 진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1987 >은 2017년의 마지막에서 1987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역사와 영화의 경계점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집약본으로서 완성이 되었다. 그 시절의 진실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129분. 어쩌면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임동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easteminence의 초저녁의 스포일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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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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