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배움을 멈춘 어른은 아이에게 흉기와 같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에)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 쉰다.' - 2002년, 물고기 소년이 자신의 일기장에 남긴 유서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자신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입으로만 선한 악마입니다.' - 2017년,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8층에서 투신한 초등학생의 유서의 한 구절

얼마 전 학교폭력, 아니 어른들(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소리 없는 폭력'에 시달리던 한 초등학생이 8층에서 투신하면서 남긴 유서를 보고 2002년 물고기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는 죽음에 이르지 않았지만 어린 가슴에 맺혔을 한을 생각하면 숙연해집니다. 명백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학교 폭력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학교 폭력을 보호하고 대처하기 위해 어른들이 만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어른들이 '단순 접촉' 따위의 말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에, 아이의 피해는 부정되고 말았습니다. 물고기 소년이 죽은 지 15년이 지났지만 어른들은 하나도 안 변했습니다. 어른이 아이를 죽이는 일이 왜 이렇게 반복되는 것일까요? 어느 순간에 어른은 배움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배울 게 있다"고 말했지만 오늘날 어른들은 100명을 만나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평생학습'이란 말이 유행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통찰하지 못하는 어른은 아이들에게는 흉기와 같습니다.

2002년 모든 사람들이 월드컵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 조용히 목숨을 끊은 물고기 소년. 끝없는 공부가 죽음의 원인이었지만, 이번에는 학교 폭력입니다. 배움의 주변에서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까닭은 우리가 심각한 '배움의 병'을 앓고 있는 증거 아닐까요?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200년 전 영국에서는 어른들이 어린이를 공장에 가둬놓고 서서히 죽였습니다. 그들이 악마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동노동이야말로 영국 제조업의 번영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이처럼 당시의 학설이 아동노동을 지지하고, 통념이 지지하고, 남들도 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어두운 그림자가 오랫동안 대한민국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죽음의 공장으로 보내는 걸 당연시했던 영국의 어른들

<로버트 오언>
 <로버트 오언>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선생님, 우리 집에 오셔서 엄마 아빠께 특별과외 좀 해주세요!"

한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놀이 수업을 할 때 3학년 학생이 제게 해준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압니다. 아이가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그 사회와 시대를 좀처럼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시대의 족쇠를 깨부셔준 사람들을 우리는 지적 영웅이라 부르고 그들이 남긴 저작을 고전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이에게는 특히 암흑의 세월이었던 18~19세기 영국.

산업혁명과 거의 같은 시기를 살다 간 로버트 오언을 졸고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글라이더)에 초대한 까닭은 대한민국 아이들의 상황이 산업혁명 당시 영국 어린이들의 상황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에게 "사회"를 각인시켜준 로버트 오언을 어린이의 관점에서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어린이들을 지옥 같은 공장 노동자 처지에서 구해준 사람. 영국 어른들에게 어린이에 대한 인식과 접근 방법을 배꿔준 사람.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보육을 받게 해준 사람. 유치원에서 맘껏 뛰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사람. 유치원까지는 책을 되도록 멀리 하고 실컷 놀게 해야 한다는 걸 어른에게 가르친 사람.

영국과 미국에서 기승을 부렸던 아동노동과 아동착취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개선되었습니다. 지금도 제3세계 등 세계의 곳곳에는 아동착취 앞에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Robert Minor가 1924년 12월 22일자 <The Daily Worker>지에 실었던 만평)
 영국과 미국에서 기승을 부렸던 아동노동과 아동착취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개선되었습니다. 지금도 제3세계 등 세계의 곳곳에는 아동착취 앞에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Robert Minor가 1924년 12월 22일자 <The Daily Worker>지에 실었던 만평)
ⓒ Robert Minor

관련사진보기


로버트 오언은 왜 어린이를 이토록 중시했을까요? 인간 정신과 인성의 첫단추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면 대부분의 인간 영혼은 파괴당합니다. '괴물이 된 채로' 어른을 맞이하는 거죠. 괴물이 된 어른들은 다시 어린이들을 잡아먹고,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오언은 이 고리를 끊고 싶었던 거죠.

당시 공장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는 형편없었습니다. 위생 개념도 부족해서 많은 목숨이 공장에서 버러졌죠. 실업자라는 개념도 없어서 모두 빈민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몇 년 쓰다 버리는 공장의 부품이었죠. '공장의 부품'이라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팩트' 그 자체였습니다. 어린이는 '조그만 부품'에 불과했죠. <로버트 오언>에서 가장 가슴 아픈 구절을 소개합니다. 좀 길지만, 영국 어린이들의 비참했던 시대를 증언하는 르포르타쥬이이기에.

'이 아이들 중 다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난쟁이가 되어버리며, 그들 중 다수는 아예 기형이 되고 만다. 낮에는 내내 일만 하다가 밤이 되면 이번에는 교육이 시작된다. 이게 너무 지겹고 싫어서 수많은 아이들이 계속해서 도망을 치며 7년, 8년, 9년에 달하는 이들의 도제 훈련 기간이 빨리 끝나기를 몸부림치며 애태우며 기다리지 않는 아이가 없을 지경이며, 그나마 도제 훈련은 보통 이들이 13세에서 15세가 되었을 때 끝나버린다. 이 나이 때에는 스스로 생계를 벌어 생활하는 데에 익어 있지 않은 데다가 세상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법인데 이런 아이들이 에든버러나 글래스고와 같은 대처로 보통 나오게 된다. 그러면 이 소년 소녀들은 곧 큰 도시에는 항상 있게 마련인 무수히 많은 여러 유혹에 공격당하게 되며, 그들 중 다수는 그 희생물이 되어 쓰러지고 만다.' - <로버트 오언> 116~117

저는 부모, 학교 교사와 어린이 교육에 관여하는 어른들, 어린이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는 어른들이야말로 <로버트 오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영국 어린이들이 겪은 비참한 운명이 대한민국 어린이들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자신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입으로만 선한 악마' 중 한 명인 저는 어린이들의 편을 들기로 했습니다.

부모들은 만나서 어린이 공부를 하는 법을 알려주고, 사회와 어릴 적의 부모가 만들어놓은 생각의 틀을 깨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배움을 포기하지 않은 어른들이 모여서 어린이를 힘껏 보호해야만 15년 후에는 뭔가 달라질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15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어린이들에게 사과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글라이더)를 출간하고 나서 인문고전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면과 다른 이유 때문에 책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맞게 연재하려 합니다. 인문고전의 눈을 얻어다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님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태그:#로버트 오언,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아동 노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