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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고 출국길에 나선 신은미 시민기자. 사진은 2015년 1월 10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로비에서 출국 심정 밝히기 앞어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고 출국길에 나선 신은미 시민기자. 사진은 2015년 1월 10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로비에서 출국 심정 밝히기 앞어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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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말, 나는 6.15 관련 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다. 강연의 제목은 '통일 토크콘서트'. 서울에서의 첫 강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TV조선이 허위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강연에서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채널A, MBN 등 종편은 24시간 중계방송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두 달 가까이 나를 향한 종북몰이 광풍을 불러 일으켰다.

나의 북한여행기는 2014년 문체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 당시 문체부는 내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1200부를 구입해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배포했다. 뿐만 아니라 통일부는 나를 섭외해 다큐멘터리를 제작, 통일부 홈페이지에도 올려놨다. 그런데 갑자기 그해 말, 나를 향해 종북몰이를 하는 게 아닌가.

종북몰이가 한창일 때, 한국 사회의 큰 뉴스 중 하나는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이던 '통합진보당 해산'에 관한 재판이었다. 내 주변사람들은 크게 당혹해하는 내게 "통합진보당 해산 이슈를 가리기 위한 일환으로 당신을 이용하고 있다"라고 귀띔해줬다. 솔직히 나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나라의 정부가 한낱 해외동포 아줌마를 그런 데 이용할까' 싶었다.

한국 정치에 무지한 나는 통합진보당이 어떤 정당인지도 잘 몰랐다. 대체 무슨 당인가 궁금해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서구의 기준으로 봤을 때 중도 우파 정도로 여겨졌다. 경제정책은 기껏해야 중도이며, 그 당의 민족주의 성향은 오히려 우파의 모습이었다. 어쨌든, 정부가 나서 한 나라의 정당을 해체하려 하다니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신은미 종북몰이'가 남긴 것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은 2014년 12월 15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은 2014년 12월 15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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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14년 12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열린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최근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바로 온 방송 매체의 뉴스를 탔다. 이를 신호탄으로 나에 대한 검경의 조사가 시작됐다.

깜짝 놀랐다. 일국의 대통령이 불과 몇백 명 모아놓고 하는 강연에 '관심'을 보이다니. '통일 토크콘서트'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주제로 오르다니. 비로서 나는 "큰 이슈를 덮으려고 '신은미 종북콘서트'를 이용한다"라는 주변인들의 말을 조금씩 수긍하게 됐다.

며칠 후 헌재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고, 나는 출국금지와 함께 검경의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조사 시작과 더불어 소위 '신은미 종북몰이'는 더 큰 뉴스가 돼 종편을 온종일 장식했다. 대중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즈음, 검찰은 나를 강제출국시켰다. 5년 입국 금지 조치와 함께.

"내 위에 총장 있고, 그 위에 또 있다"라는 검사

세월이 흘러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수첩)이 언론에 공개됐다. 그 수첩 속 내용을 살펴보면 박근혜와 청와대가 소위 '종북콘서트'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알 수 있다. '조계사 - 황선 장소제공 - 경위조사 후 조치(자승)'이라는 메모를 통해서는 통일 토크콘서트에 대한 외압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종북토크 - 통진당 해산 찬성 쪽 여론변화 효과' '종북콘서트 - 국민혼란 초래 왜곡' 등의 메모도 있었음이 확인됐다. 이 대목에서는 '종북콘서트를 통합진보당 해산에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이를 확인이라도 하듯 지난 10월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수석의 항소심 첫 공판에서 박영수 특검팀은 '조 전 수석 지시로 재미교포 신은미씨 책의 우수 도서 선정 문제를 논의했다'는 정관주 전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의 증언과 2014년 12월 24일 강일원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의 2014년 12월 24일 메모를 항소 이유로 제시했다.

강 전 행정관 수첩에는 조 전 수석이 "어떻게 북한에 다녀온 사람의 책을 우수도서로 선정할 수가 있느냐. 우수도서 선정위원을 잘 선정해서 신은미 같은 사람이 선정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는 취지의 메모가 있었다. 조금씩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등장한 '종북콘서트'(통일 토크콘서트). 위는 2014년 11월 25일(화) 작성된 메모. 아래는 다음날인 11월 26일(수) 작성된 메모.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등장한 '종북콘서트'(통일 토크콘서트). 위는 2014년 11월 25일(화) 작성된 메모. 아래는 다음날인 11월 26일(수) 작성된 메모.
ⓒ 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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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를 담당했던 검사가 강제퇴거 전 내게 한 말이 귀에 아른거린다.

"내 위에 총장이 있고, 그 위에 또 있습니다." 

'그 위'가 바로 청와대였을까.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세상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이 진행될 때도 있는데 지금이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가세요." 

그 검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이제 나라가 차츰차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3년 전 내가 모국에서 겪었던 고통도 서서히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태그:#신은미, #종북몰이, #통일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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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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