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사 제공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 윤민석 작사·작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이 노래는 2016년 겨울, 전국이 촛불로 뒤덮였던 당시 집회가 끝날 때쯤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탄핵을 외치다가 마지막에 이 노래가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졌다. '그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 여기 있는 우리가 그것을 만들 것이다'며 결의를 다지곤 했다. 이때의 거짓은 '대통령과 부역자들의 부정'이었고 진실은 '대통령의 자격 없음'이었다. 진실과 거짓이 너무도 명확해 한 치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촛불의 힘으로 진실을 끌어올렸고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제는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다. 7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자신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촛불이 심판하려 했던 대통령과 부역자들은 구속되어 재판 중이다. 촛불 시민이 끌어올리고자 했던 진실은 세상 밖으로 나왔고 거짓은 심판 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원하는 대로 만족스럽게 되었나? 빛이 어둠을 이겼나? 모든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되었나?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서 있던 그 때만 해도 대통령이 탄핵되기만 하면, 대통령이 바뀌기만 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모두 다 한 번에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절대 악과 같았던 어둠과 거짓이 사라져 버린 지금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악이 힘을 잃어가는 지금도 왜 여전히 개인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빈부의 격차가 줄어드는 날이 오기는 하는가. 사회 여러 가지 갈등들은 왜 더 심해지는 것만 같은가. 현재의 어둠은 무엇이고 빛은 무엇인지, 거짓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인지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영화 <세번째 살인>은 혼란에 빠진 우리들을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다. 도대체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영화는 계속해서 질문만 던지고 답도 알려주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이 드러나는 것과 달리 <세번째 살인>은 분명해 보였던 사건이 점점 더 알 수 없어진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일가. 진실은 밝혀질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어디까지인가. 부당한 일은 법을 어겨서라도 심판해야 할까.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정당한가. 살인과 사형제도는 무엇이 다른가.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만, 질문만 던지다가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끝나버린다. 영화 속에서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진실이 무엇인지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고, 정의가 승리하지도 않는 것 같고, 악이 처벌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이 영화는 마구 던지는 이 질문들만으로 유의미하다. 세상은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며 모두가 확신에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여 질문을 던지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실이니, 거짓이니, 심판이니 하는 먹고 사는 것과 아무 상관 없는 뜬구름 잡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감히 꺼낼 엄두도 내기 어렵다.

이 마음 답답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가 생각났다. 아마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가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진실을 끝내 알 수 없었는데 과연 내가 사는 세상의 진실은 어떠한지 영화 <세 번째 살인>의 질문을 우리 사회에 돌려본다.

2017년을 마무리하고 2018년을 맞이해야 하는 지금 우리들에게 진실과 빛은 무엇인가. 어떤 진실을 밝혀내고 어떤 빛을 향해 나가야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까. 모두가 동의하는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살기 좋은 사회는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는 것인가. 노력하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영화 <세번째 살인>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들만으로 그 의미가 충분하듯이 각계의 여러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 역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당장에 답을 찾진 못하겠지만 다같이 질문을 하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지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그동안 촛불 든다고 고생했는데 잠깐 쉬면서 같이 질문하는 시간이 있으면 어떨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질문과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세번째 살인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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