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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지난 9월 올린 기사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초청 "위기의 대한민국號 무사귀항...감사합니다"
 성균관대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지난 9월 올린 기사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초청 "위기의 대한민국號 무사귀항...감사합니다"
ⓒ 성균관대총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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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2018 자랑스런 성균인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쏟아지는 한편, 이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단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지난 9월 초, 성균관대 총동창회는 메일을 통해 뉴스레터를 발송했다. 당시 발송된 뉴스레터에는 "모교 사립대 최초 '세계 100위권' 진입"이라는 대문짝만한 헤드라인 아래에 "총동창회,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초청... 신윤하 회장, 모교위상↑·국정헌신 감사패"라는 기사가 있었다. 해당 제목을 클릭하면 곧바로 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 홈페이지로 연결되고 <총동창회,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초청 "위기의 대한민국號 무사귀항...감사합니다">라는 기사가 떴다.

기사 제목도 납득키 어렵지만, 기사 내용은 훨씬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다음은 해당 기사의 내용이다.

... 신윤하(58 생명과학) 총동창회장은 지난 6월 16일(금)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무난히 수행하고 퇴임한 황교안(77 법률/전 국무총리) 동문을 초청, 모교와 총동창회의 명예를 높이고 국가 발전을 위해 애써온 황 동문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신 회장은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오랫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해 온 황 동문에게 22만 동문을 대표해 그동안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인사를 전한 후, "모교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만큼 동문사회 결속과 화합을 위해 앞장서 주길 바란다"면서 감사패를 전달했다. ...

그야말로 놀라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 기사의 제목과 내용대로라면,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한 셈이 된다. 역사의 왜곡이란 이런 것인가? 아무리 동창회 차원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일지라도 어떻게 이런 식의 제목과 기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성균관대 총동창회 운영진들은 지난해 겨울, 연인원 1700만의 시민들이 차디찬 아스팔트 위 도로에 앉아 허리통증을 참아가며 들었던 촛불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다른 별에서 살다 온 사람들인가?

명색이 총동창회라는 곳에서, 그것도 "22만 동문을 대표해", 저렇게까지 미화할 수 있는 것인가? 더구나 황교안 전 권한대행에 대한 감사패 전달에 22만 동문 모두 동의했을까? 아니,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도 했을까? 이것이야말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을 모욕하는 꼴이 아닌가? 아마 그들은 이런 수준의 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는 사실에 몹시 부끄러워 할터이다.

여기서 잠시 지난 겨울을 되돌아보자.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박근혜 탄핵소추 가결 이후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권한대행이 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 기념 시계'를 배포해 세간의 빈축을 샀다. 일전에도 권위주의적 의전 행태로 비난을 산 바 있던 그였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정농단 사태에 부끄러움과 분노를 참지못하고 있던 와중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본인 혼자 '동떨어진 상황인식'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하던 특검의 "수사기간 30일 연장 요청"을 거부하며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을 밝히라는 시민들의 열망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 자신 박근혜 정권의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로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정치적 사태에 책임을 지기는 커녕, '권한대행'이라는 간판을 이용해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진실 규명을 방해한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박근혜 지키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와 관련된 세월호 참사 당일 보고 문서 등 박근혜 정부가 남긴 문서자료들을 서둘러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했다. 진실규명의 단서를, 법과 제도를 교묘히 이용해 역사 속에 수장시킨 선례를 남긴 것이다. 당시 이소연 한국기록학회장은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불소추 특권이 소멸했듯 대통령 지정기록물도 지정할 수 있는 주체가 사라졌으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정 권한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이에 더해 그는 대선 직전, 성주 군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사작전 하듯 사드를 새벽에 일방적으로 기습배치했다. 뒤이어 들어설 새 정부에 외교적으로 커다란 짐이 될 수밖에 없고, 찬반 여론과 논란 역시 분분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그와 같은 결정을 하였다. 이에 대해 그는 사드는 무기체계이므로 비밀리에 배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강변했지만, 이는 그 직전 사드 장비의 국내 반입을 공개한 결정과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였다. 이에 세간에선, 사드를 대선에 이용해 보수 여론을 집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그에 대해 촛불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 정권의 '대표적 부역자'로 지목하였고, 촛불항쟁 과정에서 "황교안은 물러나라"는 외침을 그치지 않았다. 이처럼 '사실'이 엄연할진대, 어떻게 그가 대한민국을 구했는 둥,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무난히 수행했다"는 둥의 말을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단순한 미사여구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성균관대 총동문회를 이끌어나가는 이들의 의식수준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로 인해 망신살이 뻗은 대한민국을 구한 것은 촛불시민들이었다. 촛불시민들의 질서 정연한 시위에 외신들은 전세계 민주주의의 새 전범을 보여주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글로벌 대학순위와 평판에 민감해하며 세계 100위권 안에 든 사실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성균관대 총동창회가 정작 외신보도는 읽지 않는 것인가?

우리 현대사에는 '부역자'가 '애국자'로 둔갑한 사례가 있다. 바로 친일파들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 그들은 판사, 검사, 관료, 군수, 면장, 경찰, 헌병 따위의 직책에 있으며 항일투사들을 고문하고, 일제의 군국주의적 파시즘과 침략전쟁을 거들었다. 해방 후 그들은 분단세력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스스로 '대한민국의 애국자'라 자처했다. 냉전과 미국이라는, 외생적 구조에 기생하며 민중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그들은 역대 독재정권을 거치며 학살, 고문, 정치적 음모를 자행했던 바, 그 대상은 항일투사와 민주화를 요구한 민중, 자기 권익을 주창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애국자라 포장하며 '기억의 왜곡'을 자행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2017년 6월 19일,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의 퇴임감사 예배에 참석해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이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발언은 이러한 역사적 계보 위에 서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친일파 문제에 '민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만, 기실 친일파는 줏대없이 '강자에 부역하는 인간형'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촛불항쟁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열망을 온전히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억'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촛불항쟁에 대한 사소한 '기억의 왜곡'이라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5월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진실왜곡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고, 이땅의 '킬링필드'였던 60년 전 보도연맹 학살을 대다수 사람들이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슬픈 현실은, '역사적 기억의 중요성'을 적나라하게 웅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투쟁에서 패배한 촛불은 촛불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성대동창회보 452호의 해당 기사는 촛불시민들의 항의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 다르게 생각하는 글방(http://anarchism-historian.tistory.com/14)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태그:#황교안, #자랑스런 성균인, #성균관대 총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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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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