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이 2017년 A매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다사다난했다'는 말은 매년 이맘때면 의례적으로 언급되는 표현이지만, 올해의 한국축구는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롤러코스터처럼 넘나들었다'고 할 만큼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던 한 해이기도 했다.

2017년 한국축구의 최대 화두는 '러시아로 가는 길'이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의 운명이 좌우된 올해, 한국축구는 시작부터 큰 위기에 직면했다.

이미 지난해 9월 시작된 최종예선부터 불안한 경기력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대하여 한국축구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재신임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최악의 한 수'가 됐다. 슈틸리케호는 지난 3월 23일 중국 원정에서 0-1로 패배하는 '창사 참사'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2017년 A매치는 첫 단추부터 악몽으로 물들었다.

홈에서 열린 시리아전에서 1-0 신승으로 위기를 탈출하는가 했지만, 다시 6월 13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원정에서 2-3으로 패하면서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곳까지 떨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계속된 부진에도 "그럼 내가 어떤 전술을 써야 했나", "홈에서는 강했는데 원정에서 약한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등 각종 망언과 책임회피성 인터뷰로 일관했다.

슈틸리케 '경질', 신태용호 출범... 월드컵 본선 진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 원정경기에서 패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14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 원정경기에서 패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6월 14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팬들과 언론의 인내심은 바닥났고 대한축구협회도 더 이상은 기다려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3년)으로 기록된 슈틸리케의 마지막은 그렇게 초라한 몰락과 경질로 귀결됐다. 슈틸리케 영입에 책임이 있었던 이용수 기술위원장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김호곤 위원장과 자리를 맞바꿔 여전히 부회장으로 남으며 축구협회에 대한 무책임한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난 여론도 쏟아졌다.

다급하게 '소방수'가 필요했던 한국축구는 일찌감치 차기 감독 후보를 국내파로 정하고 허정무, 최용수, 황선홍 등 여러 감독을 물색했다. 고심 끝에 결국 최근 현장 감각과 대표팀 경험이 가장 풍부한 신태용 감독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신 감독은 홍명보 전 감독처럼 U-20대표팀, 올림픽대표팀에 이어 성인 국가대표팀까지 지휘봉을 잡게 됐다. 그러면서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한몸에 받는 '육성형 지도자'의 행보를 걷게 됐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게 된 신태용 감독의 당면 과제는 당연히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신 감독은 이란-우즈베키스탄과의 마지막 2연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조 2위로 간신히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이라는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따뜻한 박수와 환호를 기대했던 자리에 싸늘한 비난과 질타가 더 쏟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에서 2연속 무득점 무승부, 한국축구의 아시아 예선 사상 첫 '원정 무승'의 불명예 기록을 세우고도 최종전에서 이란이 시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부지리로 본선 진출을 당했다'라는 웃지 못할 평가까지 나왔다. 신태용 감독의 이해하기 힘든 경기 운영과 언행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여기에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과 맞물려 갑자기 터져 나온 '히딩크 복귀설'은 신태용호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신태용 감독을 선임했던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히딩크 복귀설 제안을 둘러싸고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과 진실공방에 휩쓸리며 결국 여론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3개월 만에 사임했다.

'히딩크 논란'으로 혼란, 신 감독 선임 후 어렵게 수습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해외파 위주로 팀을 꾸렸던 10월의 유럽 원정 2연전(러시아 2-4 패, 모로코 1-3 패)은 신태용호는 졸전 끝에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며 감독 경질논란에 휘말렸다. 10월 한국축구의 피파 랭킹은 62위까지 추락하며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도 뒤지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국축구에도 신태용 감독에게도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11월부터 신태용호는 조금씩 반전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국내·해외파를 총망라한 최정예 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코칭스태프에도 월드컵-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에 빛나는 스페인 출신 토니 그란데 수석코치와 하비에르 미냐노 피지컬 코치를 수혈하는 보강이 이뤄지며 진용을 새롭게 꾸렸다. 축구협회도 대대적인 인적 개편에 돌입하며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 홍명보 전무이사와 박지성 유소년본부장을 영입하는 등 겉으로나마 변화의 의지를 드러냈다.

11월 10일 콜롬비아(2-1)와 1차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1년여에 그친 A매치 필드골 무득점의 한을 풀 듯, 2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으로 마침내 분위기를 바꿨다. 11월 14일 세르비아와 2차 평가전에서 구자철이 페널티킥 동점포를 얻어내 1-1로 비겼다.

신태용호 출범 이후 가장 강한 상대로 평가받았던 콜롬비아와 세르비아는 당초 전력상 버거운 상대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강팀과의 대결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축구의 근성과 저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태용식 4-4-2 전술과 압박축구의 부활이 대표팀의 새로운 플랜 A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동안 애증의 감정으로 대표팀을 지켜보던 팬들도 선수들이 결과 못지않게 오랜만에 헌신적으로 뛰는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신태용 감독이 네번째 추가골을 넣은 염기훈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최종 3차전 한국 대 일본 경기. 신태용 감독이 네번째 추가골을 넣은 염기훈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연합뉴스


한일전 승리, 동아시안컵에서 '최초' 우승컵 들어 올려

12월이 되면서 월드컵 본선 조편성이 확정됐다. 최근 몇 년간 부진한 성적으로 피파랭킹이 급락한 한국은 일찌감치 최하위 4그룹으로 밀려나며 험난한 행보를 예고했다. 실제 조편성에서도 하필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죽음의 F조'에 편성되며 '역대 최악의 조편성'이라고 할 만큼 불운한 결과를 맞이했다. 월드컵이 시작도 하기 전에 '해보나 마나'는 비관적인 전망이 득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찍 포기하고 좌절할 시간에 강팀들과 후회 없이 부딪혀보고 한국축구의 진짜 경쟁력을 확인할 기회'라는 희망의 목소리도 조금씩 늘어났다.

올해의 마지막 A매치였던 동아시안컵도 신태용호는 롤러코스터같은 행보의 연속이었다. 유럽파가 참여할 수 없는 동아시안컵은 선수점검과 전술실험에 무게가 쏠렸다. 하지만 라이벌 의식이 강한 중국, 일본,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결과에 대한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대회였다.

신태용호는 1.5군급의 젊은 선수들을 내세운 중국과 1차전에서 선제골을 내준 끝에 2-2 무승부에 그쳤다. 북한과의 2차전에서는 스리백 전술을 앞세워 오랜 원정 무승 징크스를 깨는 데 성공했지만 상대 자책골에 이은 힘겨운 1-0 승리에 그쳐 경기력에 대한 우려가 계속됐다.

상복 터진 태극전사들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축구대표팀의 장현수(왼쪽부터), 이재성, 김신욱, 조현우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한일전 이후 열린 시상식에서 각각 최우수 수비수상, 베스트듀얼플레이어상과 최우수선수상, 득점왕, 최우수 골키퍼상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상복 터진 태극전사들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축구대표팀의 장현수(왼쪽부터), 이재성, 김신욱, 조현우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한일전 이후 열린 시상식에서 각각 최우수 수비수상, 베스트듀얼플레이어상과 최우수선수상, 득점왕, 최우수 골키퍼상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다시 4-4-2 카드를 들고 나온 한·일전에서 7년 만에 일본을 완파하는 4-1 대역전승으로 또 한 번의 '도쿄대첩'을 연출했다. 한일전 승리는 7년 7개월 만이자 4골을 기록한 것은 1979년 정기전 이후 무려 38년 만의 쾌거였다. 김신욱-이재성 등 국내파 선수들의 경쟁력을 확인한 것도 성과였다.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서는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짜릿한 경험을 맛보며 다사다난했던 2017년, 한국축구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했다.

2017년 1월 당시 37위로 출발했던 한국축구의 올해 마지막 12월 피파랭킹은 60위였다. 롤러코스터 같은 행보만큼이나 아픔도 시련도 많았지만 한국축구는 다시 한번 위기를 넘어 러시아를 향한 길을 열어젖혔다. 내년에도 또 한 번의 위대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 되겠지만 신태용호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내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다시 한번 한국축구의 희망을 되살려낼 수 있을까.

[한눈에 보는 한국 대표팀 2017년 A매치]

중국 0-1 패(2017년 3월 23일, 아시아 최종예선) - 창사 참사
시리아 1-0 승(2017년 3월 28일, 아시아 최종예선)
이라크 0-0 무(2017년 6월 8일. 평가전)
카타르 2-3 패(2017년 6월 14일, 아시아 최종예선) - 도하 참사, 슈틸리케 경질
이란 0-0 무(2017년 8월 31일 아시아 최종예선) - 신태용호 출범
우즈베키스탄 0-0 무(2017년 9월 6일, 아시아 최종예선) -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 확정

러시아 2-4 패(2017년 10월 7일. 평가전)
모로코 1-3 패(2017년 10월 10일, 평가전)
콜롬비아 2-1 승(2017년 11월 10일. 평가전) - 신태용호 출범 첫 승
세르비아 1-1 무(2017년 11월 14일. 평가전)

중국 2-2 무승부(2017년 12월 9일. 동아시안컵)
북한 1-0 승리(2017년 12월 12일, 동아시안컵)
일본 4-1 승리(2017년 12월 16일. 동아시안컵) 신태용호 첫 우승. 동아시안컵 2연패

최종전적-13경기 4승 5무 4패,16득점 16실점(홈 2승 2무, 원정 2승 3무 4패)
슈틸리케호 1승 1무 2패 /신태용호 3승 4무 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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