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용과도전 조찬세미나에 초청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외상센터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외상센터의 역할' 발제하는 이국종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용과도전 조찬세미나에 초청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외상센터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공동경비구역을 넘어 자유를 찾아온 북한 귀순 병사는 수발의 총탄에 맞고도 이국종 교수팀이 있는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로 후송되어 극적으로 생명을 되찾았다. 이후 '이국종 신드롬'이 불었다.

처음에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의사된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국종 교수 개인에게 시선이 모아졌다가, 북한 병사에 대한 기생충 브리핑을 계기로 순식간에 인권과 알 권리의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와중에 다행히 중증외상센터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의지가 모여 청와대 청원운동으로 이어졌고, 200억 원이 넘는 예산 편성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근래에 보기 드문 감동적인 대서사는 쉴 틈 없이 휘몰아쳤고, 여러모로 힘든 국민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멋진 드라마의 주인공격인 이국종 교수는 이 정도면 못 이기는 척 청사진을 제시하며 더욱 열심히 하겠노라고 화답하고 마무리하면 좋을 텐데, 삽시간에 예상되는 결말을 벗어났다.

작금의 관심에 감사하면서도 현재의 중증외상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단다. 날 선 현장에서 죽음과 싸우는 그는 줄곧 시스템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피토하는 심정'이라는 이국종 교수의 열변을 좇다 보면 꽉 막혔던 가슴이 더 조이는 것 같다.

학교 보건 교육의 허점, 왜 개선이 안 될까

지난 수년 동안 보건교사들도 '소아당뇨 등 요보호 학생의 건강관리, 학교 미세먼지 및 석면 공기질 관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보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이국종 교수와 동병상련의 심정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지난 11월 6일, 저혈당쇼크나 항원-항체 면역 반응으로 발생하는 아나필락시스 쇼크 등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보건교사가 학생에게 응급처치를 제공하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는 골자의 학교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응급 상황에서 보건교사가 주사 처치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온 보건교사로서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화장실에서 몰래 인슐린을 주사하는 소아 당뇨 아이들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자, 화살은 뜻밖에 보건실로 날아들었다. '보건실에서 아이들이 마음 놓고 주사를 맞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아이들이 자신의 상태를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는 거다. 보건실까지 오가며 놀 수 있는 쉬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때문에 보건교사들은 소아당뇨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보건교육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보건교육이 공신력을 갖도록, 중·고등학교처럼 국가 수준의 초등 보건교육과정을 고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적 요청은 전혀 공론화되지 못했다. 가능하면 소아 당뇨 아이들이 있는 층에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학교의 보건실과 다른 교실 및 강당 등은 먼 거리에 있을 수 있고, 보건교사가 없는 데서 이루어지는 체험활동도 많다. 하지만 소아당뇨나 아나필락시스 쇼크 등의 위험 상황은 학교생활 중 어느 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응급처치용 주사에 대해서는 선진국처럼 보건교사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전체 교직원이 주사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언론·국회·정부 어느 한 곳도 보건교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은 응급처치용 주사 박스를 교내 곳곳에 배치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누구나 즉각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입법 과정에서 보건교사들의 '이기주의' 내지는 '이상주의'로 치부되곤 한다.

학교 보건 교육의 허점, 왜 개선이 안 될까
 학교 보건 교육의 허점, 왜 개선이 안 될까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미세먼지를 보건교사가 관리하라니...

미세먼지, 석면 등으로 더럽혀진 공기질 관리는 또 어떤가. 학교보건의 목적이 결국 건강 증진과 연결되어 있기는 하나, 그중 보건교사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건 보건교육이다. 하지만 수업시수 확보나 보건교사의 배치, 자격 부여(정교사 부여) 등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건강 증진은 보건교사가 전문가이니 본질이 시설관리이더라도 보건교사가 담당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든다. 보건교사들은 시급하게 보건교육의 여건을 조성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하여 소방·수도 시설을 관리하듯 미세먼지·공기질 등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그 어떤 대책 속에서도 고려되지 못했다.

덕분에 교육계에서 '을 중의 을'인 보건교사는 시설관리자로 둔갑되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학교의 차량 통제를 담당하고, 미세머지 경보 및 주의보에 따른 학사 일정 조율을 떠안고 있다.

또 석면으로 지어진 옛 학교 건물을 보건교사가 어찌할 도리도 없는데, 전문 측정 업체 등을 연결해 해마다 돈을 들여 학교의 공기질만 측정하고 있다. 나쁜 결과가 나오면 '창문 열기'가 거의 유일한 해결책인데도 말이다.

요컨대 '보건교사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외국에서는 누구나 투여할 수 있는 주사를 어디서든 출동해 적시에 응급 주사를 하고, 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 전문성 따지지 말고 사명감을 가지고 시설관리를 하라'는 것이 우리가 현재 서 있는 학교보건의 좌표다.

하도 답답해서 미국 학교보건협회에 메일을 보냈더니, '학교의 실내 공기질 관리는 시설관리의 일환으로 정책이 시행되고 있고, 보건교사 등 교사들은 학교 공기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시설 관련 당국에 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다'는 친절한 답신이 돌아왔다.

이국종 교수는 자신의 환자들은 대부분 블루 칼라여서 여론을 형성할 여력도 없는 계층이고, 자신은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가 아니고 노동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석해균 선장의 회복 이후 중증외상센터 정책이 무더기로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에게는 무전기 하나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보건실에 가장 많이 찾아오는 아이들도 소외되고 아프고 괴로운 아이들이다. 공부 지상주의의 학교 정책에서는 주목받지 못한다. 더구나 보건교사는 학교에 1명뿐이어서 민주주의가 잘 구현된다는 학교에서조차 의제를 여론화하는 데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보건교사들의 이기주의'라는 프레임만 씌우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 되는 세태 속에서 학생 건강 정책은 산화되고, 학교 보건 시스템 개선은 요원해지고 있다. 그나마 진정성과 실력으로 언론에 대놓고 인터뷰할 수 있는 이국종 교수가 부럽다면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종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국종, #소아당뇨, #미세먼지, #보건교사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