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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곱 살, 아홉 살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오늘 둘째의 취학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처음도 아닌데 기분이 묘합니다. 올들어 둘째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서로 서먹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어서 아내가 섭섭해할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풍선 효과일까요? 서로 좋아 못 살던 첫째는 반항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지적을 받으면 '치' 하며 불만을 표시하는 횟수가 잦아서 한번은 크게 혼내려는 걸 참았습니다. 사랑은 움직인다더니 부모 자식 간의 호불호도 이렇게 바뀌는 건가요? '육아의 순간'이라는 건 이렇게 긴박합니다.

 책이 나오는 데 결정적인 말들을 남긴 두 아들입니다. 책으로 따지면 저본(底本)이라고 해야겠죠.
 책이 나오는 데 결정적인 말들을 남긴 두 아들입니다. 책으로 따지면 저본(底本)이라고 해야겠죠.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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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말에 굉장한 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5년 전입니다. 첫째가 네살배기였죠. 만약 그때 아이의 말에 깊이 귀 기울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저는 가정을 잃었을 것입니다.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는 나가 버려."

침대에서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질문하자 아이가 제게 던진 말입니다. 이 말은 동양경전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대목과 일치합니다. 매우 잘 알려진 구절이고 뜻도 알고 있었지만, 아이는 제가 이 지혜를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는 점을 아프게 지적했습니다.

'예부터 눈부신 덕德을 온 세상에 선사한 인물들은 먼저 자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는 데 힘썼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집안을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집안을 잘 살피려면 사소한 몸가짐을 돌아보아야 한다.' - <대학>大學

아이가 대학 구절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합니다. 아이가 나에게 던진 인생의 한 마디는 맑은 욕구와 욕구불만이 빚어낸 말이기에 인문학의 말입니다. 인문고전에서 만나는 말들은 작가가 뼈와 살을 깎고, 시대가 자신에게 씌운 굴레를 벗어던진 끝에 나온 결실이기에 우리 시대에도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어른들의 마음은 맑지 않고, 말에도 뿌리가 없습니다.

만약 아이의 말을 뿌리 삼아서 곱씹어본다면 부모 자신의 문제는 물론, 가족이 나아갈 방향까지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의 말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죠. 일터에서의 합리적 관계(이를테면 갑질없는 사회)라든지 정치와 사회의 발전이 더딘 것도 어쩌면 아이의 말을 몰라주는 어른의 얕은 인식과 관계가 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국가와 사회가 되니까요.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추구'하면 부모의 문제가 풀린다

 인문 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인문 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 글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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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우리는 아이들의 유치한 질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질문들에 대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호기심만 발동된다면, 그런 질문들은 여러분을 아주 먼 곳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데려갈지도 모른다.' - 조르주 아프라, <숫자의 탄생>

수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장을 걷었다가 '아이의 말'에 대한 뜻밖의 진실을 듣고 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숫자의 탄생> 저자의 말은 단지 수학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른 영역에까지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뜻이 깊고 넓습니다.

네살배기 첫째의 말을 접한 후에 저는 '대답'하기 위해서, '추구'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원칙은 한 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직업을 바꿔야 했습니다. 환경도 바뀌어야 했습니다. 웹 에이전시 회사를 퇴사하고 공부방을 하게 되었고, 고향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녁에 아이들과 농구, 축구, 캐치볼 같은 스포츠도 하고 산책도 가끔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콩나물 무침을 합니다. 가족들과 아이들이 한결 가까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이것이 아이가 말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아닌가 합니다.

둘째의 말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그래도 혼을 잘 내지 않는 부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웃에 사는 사촌형과 엉켜붙어 싸우려 하는 것을 억지로 떼어내고 둘째를 방으로 데려가서 진정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둘째는 대뜸 "혼낼 거잖아요!"라고 말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나와 둘째가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혼날 짓 했으면 혼나야지!"라고 말하면 그만일 수도 있었겠죠. 그러면 아이와 연결되는 문 하나가 조용히 닫히겠죠.

민서의 말을 뿌리로 삼아 자신에 대한 인식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자주 혼내는 부모에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속상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아이와 관계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최근 읽었던 책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사유의 가치는 사유가 친숙한 것의 연속성과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가를 통해 가늠된다.' - 아도르노

제주에 내려와 아들들의 말을 추구하고 4년간 공부방을 하면서 겪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대화를 인문고전의 그릇에 정성스레 담았더니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글라이더). 아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배우자는 의미입니다.

인문고전의 거울로 비추면 비출수록 형형히 빛나는 아이의 모습이 황홀할 지경이에요. 만약 인문고전을 읽듯 아이를 읽는다면 자녀교육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뿐 아니라 오래된 부모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은 결국 부모 자신의 문제로부터 파생된 것이니까요. 아이를 공부했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할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아빠의 아이 공부 - 인문 고전으로 하는

오승주 지음, 글라이더(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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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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