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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 줘봐라."

20여 년 전, 수능 치고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했던 한 마디입니다. 학창시절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몰래 담배 피우다 걸려서 엄청난 고통을 받는 친구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담배에 큰 호기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능을 치고 나와서는 당시 담배를 피우던 친구에게 담배 한 개비를 달라고 했습니다. 제 인생 첫 담배였지요. 담배를 피우는 방법도 몰랐던 저는 친구에게 속성으로 지도를 받고 그 자리에서 한 모금을 깊게 빨아 삼켰습니다.

"으으흡, 후~"

하늘로 길게 첫 모금을 뱉었습니다.

그리곤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지요.

"헉, 괜찮나?"

어지러웠고 메스꺼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저는 자연스레 담배와 친해지게 됐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담배와 추억을 같이 했습니다. 친구들과 당구장에 가서 맛있게 담배를 물었고, 술집에서는 서로 불을 붙여주며 술맛을 더했습니다. 조용한 밤에는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담배를 권하며 우정을 확인했지요. 아무런 제재도, 걱정도 없이 자연스레 담배와 함께 나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금연을 결심하고 시도했던 것은 결혼하고 나서입니다. 아빠가 담배를 피우면 아이에게 안 좋다는 확실한 사실을 알고 나서 금연을 시도했습니다. 근 1년을 안 폈습니다. 주위에선 '독하다', '그래도 잘 끊었다'고 격려하던 무리와, '무슨 재미로 살 거냐', '그 스트레스가 더 안 좋다'며 위협하던 무리도 있었습니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의 첫 금연 도전기는 1년 후, 부부싸움 후 실패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저를 자극한 아내 탓으로 돌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어서 제가 시비를 걸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후에도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금연이라는 목표를 세우곤 했지만 한 달, 석 달, 일주일, 이틀 계속 실패했습니다. 보건소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어김없이 실패했고, 최근에는 금연에 도움 되는 약을 먹을까라고 고민했던 적도 있습니다.

저희 아내는 제가 금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금연 기간에 돌입하게 되면 유난히 신경질을 많이 내고 까탈스러워진다며, 그냥 제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아내에게 짜증을 내는 형태로 금단현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해서 전 고마운 아내 덕에 특별한 죄책감 없이 담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 3달 전,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골초'였던 한 지인분께서 갑자기 금연을 선언하시며 순식간에 담배를 끊으셨습니다. 전혀 힘들어하지 않으시며 '당연히 끊을 때가 돼서 끊는다'고 했습니다. '담배를 왜 끊으셨냐'고 여쭤보니 담배를 계속 피우는 본인이 계속 더러워지는 것 같아 끊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담배를 끊으니 본인과 주변 환경이 깨끗해진다면서, 저보고도 이번 기회에 끊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마침 딸아이가 제게 "아빠, 죽고 싶어? 담배 피우면 빨리 죽는데, 오늘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폐를 봤어. 아빠, 빨리 죽고 싶어?" 하며 협박 아닌 요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아이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치는지, 학교 교육을 살짝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담배 의존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20여 년 정도 피웠지만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5개비도 피우지 않았으며, 출근하면 하루 10개비 정도 피웠습니다. 하루의 첫 담배는 아침을 먹고 나서였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꼭 피워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애연가들은 공감하실 것입니다. 제 경험상 담배가 맛있었던 순간은 ①밥 먹고 나서 믹스 커피 한 잔 마실 때 ②좋은 이들과 술 마실 때 ③일 다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직전 한 대 피울 때였습니다. 즉, 의존도가 낮았기에 담배 피울 때의 즐거움만 참으면 금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담배(자료사진)
 담배(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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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혼자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딸아이가 저에게 엄청난 제안을 했습니다.

"아빠가 담배 끊으면 매일 아빠 뺨에 뽀뽀해줄게."

딸아이의 적극적인 후원과 저 자신의 의지로 이제 진짜 끊어보자! 는 생각으로 금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다 안정적인 금연을 위해 보건소에 가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금연을 시작한 지 80여 일이 좀 지났습니다. 80여 일간 담배를 단 한 대도 피우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힘들어하는 지인 곁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워줬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담배의 맛은 형편없었습니다. '으, 이 맛도 없는 것을 왜 피웠을까?' 그리고 다음 날에도 담배는 찾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담배 생각은 한 번씩 납니다. 하지만 담배의 고소한 맛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메케하고 쓴맛이 떠오릅니다. 즉 담배가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9월부터 육아휴직 중입니다. 아이들을 아침에 보내놓고선 집안일을 하고 오후엔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전에 담배를 피울 때는 담배 피우는 시간을 내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놀이에 몰두하고 있을 때, 잠시 1층으로 뛰쳐나가 급하게 한 대 피우고 집으로 들어와 손을 씻고 양치를 하고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추운 날에는 추위에 떨며 담배를 피우는 자신을 보며 '이게 뭐 하는 짓이고'라는 생각을 가졌던 적도 있었습니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닌 참는 것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에게 '당장, 금연하세요!'라고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분명 장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처럼 금연의 목표와 의지가 확실할 때, 그때를 피하진 마시고 자연스레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담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금연을 하면 죽을 때까지 담배는 한 대도 입에 대지 않겠다'보다는 '나는 담배를 피울 줄 안다. 하지만 일부러 피진 않는다. 담배를 꼭 피워야 할 상황이 오면 한 대는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금연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금연을 하고 보니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우선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외출할 때 주머니가 가벼워집니다. 뭔가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담뱃값을 아낄 수 있습니다. 저는 하루 5000원으로 계산해서 아낀 담뱃값이 20만 원이 됐을 때 잘 견디고 있는 저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점은 뭔가 심심합니다. 특히 시간이 빌 때, 무료할 때 뭔가 심심합니다. 저는 이 순간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며 자연스레 참고 있습니다. 즉 담배를 끊으니 SNS에 중독되는 묘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017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2018년이 되면 또 많은 분들이 금연에 도전하실 것 같습니다. 의무로 금연에 도전하기보다는 금연의 이유를 찾아보시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담배를 끊으면 뭔가 마음이 편해집니다.

담배를 피웠을 때는 담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챙겨야 했고, 새로운 곳에 가면 담배 피우는 장소를 탐색해야 했으며, 담배꽁초를 아무 곳에나 버리며 자연에 미안한 마음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이젠 아이들 손을 언제든 잡을 수 있고, 항상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으며, 담뱃값을 모아 의미 있는 곳에 돈을 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담배는 분명 좋은 친구입니다. 하지면 영원히 좋은 친구일 수는 없습니다. 한 때는 절친 이었던 담배, 그의 빈자리가 허전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됐다는 확신이 듭니다.

2017년은 저에게 담배와 헤어진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저 또한 올해 담배와 헤어질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담배와 멀어지게 되었고 이 사실은 저에게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담배 자체가 아니라 담배를 피울 때의, 혼자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금연 자체는 불가능한 도전은 아닙니다.

저의 고백이 2018년, 금연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담배는 분명 좋은 친구이나 영원히 함께할 친구는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에도 올립니다.



태그:#금연,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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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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