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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올린 SNS 글을 검증 없이 보도한 동아일보
 시민이 올린 SNS 글을 검증 없이 보도한 동아일보
ⓒ 동아닷컴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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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동아닷컴에는 <복직 박성호 기자, 신동호 저격 "기왕이면 사표 쓰시지">라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MBC에서 해직됐다 <뉴스데스크> 신임 앵커로 낙점된 박성호 MBC 기자가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을 저격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MBC 신동호 국장이 물러난다는 <동아일보>의 기사를 공유하고 '기왕이면 사표도 쓰시지'라는 글을 쓴 사람은 MBC 박성호 기자가 아니라 동명이인인 일반 시민이었습니다.

동아닷컴의 기사가 나오자 여러 매체에서 앞다퉈 같은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당연히 모든 보도 내용은 '오보'가 됐습니다.

"MBC 복직 박성호 기자, '기왕이면 사표도 쓰시지' 신동호 저격" <매일경제>
"'앵커 낙점' 박성호 기자 '신동호, 기왕이면 사표도'" <데일리안>
"뉴스데스크 박성호 앵커, 신동호 국장 교체에 '기왕이면 사표도 쓰시지'" <아시아경제>
"복직 박성호 기자, 신동호 국장에 '기왕이면 사표도' 일갈" <스포츠 서울>


이런 오보가 나오게 된 배경은 최승호 PD가 MBC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과거 언론 부역자들에 대한 거취 문제가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이들의 싸움을 부추기려고 했고, 때마침 MBC 기자와 같은 이름의 계정에 글이 올라오자 옳다구나 하고 검증 없이 쓴 것입니다.

언론의 오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오보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오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언론이 여론을 어떻게 조작하려고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북풍을 위한 외신의 오역

연합뉴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페리 전 미국 국방 장관의 말을 오역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페리 전 미국 국방 장관의 말을 오역 보도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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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는 지난 6일 <페리 전 미 국방 "북, 실전형 ICBM보유때까지 시험발사 안멈출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전직 국방 장관이 무기 관련 세미나에서 '미국과 일본이 독립적인 핵전력을 갖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보도했지만,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특히 발언 당사자인 월리엄 페리 전 장관은 직접 트위터에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등을 지목하며 "나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떤 나라에서든 핵무기 배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서 기름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라며 북한 상황이 '나쁘다'고(Too bad!) 말한 내용을 '가스관'이라고 오역한 적도 있습니다.

기레기 대참사,트럼프 트윗 '오역'을 그대로 받아쓴 언론사들

외신 오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북한과 관련한 일명 '북풍' 때문입니다. 북한과 관련한 기삿거리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보도하니 오역과 오보가 난무합니다. 단순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 북풍을 통해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될 수 있습니다.

오보라도 괜찮아, 노무현만 죽일 수 있다면

참여정부 시절,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 보도했다.
 참여정부 시절,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 보도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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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사례를 조사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언론사 중의 하나가 <조선일보>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아니 훨씬 이전부터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오보를 수십 차례 쏟아냈습니다.

2004년 <조선일보>는 <검찰 두 번은 갈아 마셨겠지만>이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측근 비리 수사에 불만을 나타냈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찰 수사권의 독립을 강조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무너뜨리는 보도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5년 <조선일보>는 "확인 결과 (갈아 마시겠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바로 잡는다"며 정정 보도를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 책임 있습니다. 회피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민생파탄 책임 없다"라고 보도했습니다. AP통신의 기사를 인용해 노무현 대통령이 '수개월 간에 걸친 비판'을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AP통신 원문에는 노 대통령이 '악의적인 비판을 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분명 오보임을 알면서도 <조선일보>가 왜곡 보도를 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매장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악의적인 왜곡 보도가 연일 언론에 등장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내내 '무능한 대통령'으로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속보 경쟁, 검증 따윈 필요 없어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복지부는 한국일보의 오보를 지적했다. 그러나 YTN은 해명 자료가 나온? 뒤에 오보를 냈다. 연합뉴스는 기상청 직원의 통지문을 검증 없이 보도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복지부는 한국일보의 오보를 지적했다. 그러나 YTN은 해명 자료가 나온? 뒤에 오보를 냈다. 연합뉴스는 기상청 직원의 통지문을 검증 없이 보도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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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사고 때마다 오보는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나와 국민의 분노를 유발했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던 2015년 6월 11일 저녁 8시 30분경 YTN은 '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사망'이라는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메르스 감염 사망자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기에 젊은 의사의 사망 소식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러나 YTN의 뉴스 속보는 오보였습니다.

YTN보다 먼저 오보를 낸 언론은 <한국일보>입니다. <한국일보>는 오후 6시 33분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고 보도했습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8시 10분 해명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런데도 YTN은 검증 없이 8시 30분에 오보를 냈습니다.

2016년 <연합뉴스>는 강원도 횡성에서 6.5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속보를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지진은 횡성이 아니라 에콰도르에서 발생했습니다. 기상청 직원이 실수로 보낸 통지문을 검증하지 않고 보도해서 난 오보입니다.

포털사이트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서 먼저 속보를 내는 언론사는 수십 만의 조회수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검증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무조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배치될 수 있고, SNS에 공유될 수 있다면 오보라도 괜찮습니다. 이제 언론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클릭 수 '장사를 하는 인터넷 회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오보

해외 언론은 오보를 낸 기자에게 징계를 내리고, 방송사 사장 등은 오보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했다.
 해외 언론은 오보를 낸 기자에게 징계를 내리고, 방송사 사장 등은 오보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했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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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조선일보>는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을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종편을 운영하는 <조선일보> 입장에서 광고가 지상파에 몰린다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이 기사는 자사 언론사를 보호하기 위한 오보였습니다.

오보를 낸 기사의 지면을 보면 대문짝만합니다. 그러나 정정 기사는 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나옵니다. 왜 정정기사는 오보의 크기만큼 나오지 않을까요? 자신들의 실수를 드러내기 싫다는 언론의 오만함입니다.

트럼프 관련 오보를 낸 미국 ABC방송은 담당 기자 브라이언 로스에 대해 1개월 정직 징계를 내렸습니다. 일본 니혼TV 사장은 허위 증언에 따른 단 한 건의 오보에 책임지고 사퇴를 했습니다. 정치인 성범죄 오보를 보도한 영국 공영방송 BBC 사장 조지 엔트위슬은 "방송국의 최고 편집권자로서 '뉴스나이트'가 보여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unacceptable) 언론 보도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명예로운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라며 사퇴했습니다.

오보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언론은 오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누구도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기자들은 처벌도 없고 징계도 무겁지 않으니 오보를 내도 무감각해집니다. 당연히 오보가 사라지지 않고 또 나옵니다.

과거에는 오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민들은 캡처 또는 특정 사이트의 페이지를 영구 저장하는 방식 등을 통해 오보를 기록하고 공유하기도 합니다. 가짜 뉴스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뉴스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과 판단력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사는 '저널리즘'의 원칙과 기본을 지키기보다 '클릭 장사'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오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수록 신뢰도는 떨어지며, 생존을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정치미디어 The 아이엠피터 (theimpeter.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오보, #언론, #재난 보도, #왜곡 보도, #오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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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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