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골 이끌어낸 진성욱 12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2차전 한국 대 북한 경기. 한국 진성욱이 리영철과의 경합 상황에서 자책골을 이끌어낸 뒤 이창민과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다.

▲ 자책골 이끌어낸 진성욱 12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2차전 한국 대 북한 경기. 한국 진성욱이 리영철과의 경합 상황에서 자책골을 이끌어낸 뒤 이창민과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다. ⓒ 연합뉴스


다행히도 이겼지만 이번에도 개운한 승리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무실점 경기를 했고, 전술적 실험과 새 선수 발굴이라는 나름의 의미도 있었지만 신태용호에 대하여 여전히 풀리지않는 의문은, 과연 '내년 월드컵을 향하여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하는 불안감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12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2차전에서 북한을 1-0으로 제압하고 첫승을 신고했다. 1차전에서 중국과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던 대표팀은 북한을 제물로 힘겹게 첫 승을 따내며 1승1무로 우승에 대한 가능성을 살렸다. 하루 전 여자대표팀이 북한에 0-1로 패했던 아쉬움도 설욕했다. 한국 남자축구는 북한과의 역대 전적에서 7승 8무 1패의 우위를 이어갔다.

신태용호로서는 지난 11월 콜롬비아전(2-1)에 이어 두 번째 승리를 거두며 통산 전적은 2승 4무 2패가 됐다. 최근 5경기에서 무려 11실점을 허용하며 흔들렸던 수비는 6경기만에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다.

북한 당황하게 한 전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신태용 감독은 이날 북한전에서 몇가지 중요한 변화를 단행했다. 중국전과 비교하여 선발멤버가 6명이나 바뀌었고 전술도 4-2-3-1에서 3-4-3으로 바뀌었다. 진성욱(제주)이 최전방에 배치되고 김민우(수원 삼성)와 이재성(전북 현대)가 좌우 측면 공격수로 나섰다. 중앙에는 기존에 정우영(충칭 리판)에 이창민(제주)이 새로운 파트너로 기용됐고, 김진수(전북)와 고요한(FC서울)이 양 측면 윙백 역할을 맡았다.

스리백은 권경원(텐진 취안젠) 장현수(FC도쿄) 정승현(사간 도스)이, 골문은 조현우(대구FC)가 지켰다. 신태용호가 다시 스리백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은 지난 러시아-모로코와의 10월 유럽 원정 평가전 이후 두달만이다. 이날 베스트 11중 1988년생으로 29세인 고요한이 최고참일 만큼 20대의 젊은 선수들로 라인업을 채운 것도 눈에 띄었다.

신 감독의 전략은 한국이 포백 전술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을 북한의 허를 찌르겠다는 포석이었다. 젊고 기동력이 있는 선수들 위주로 선발명단으로 북한의 빠른 역습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구상도 엿보였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나름 성공했다. 북한은 경기 초반 갑작스러운 한국의 전술 변화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경기운영에 애를 먹었고, 한국은 승리와 무실점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목적을 달성했다.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진성욱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성과였다. 진성욱은 후반 20분 김신욱과 교체되기 전까지 왕성한 활동량과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으로 상대 수비를 괴롭혔다. 이날의 결승골이 된 후반 19분 북한의 자책골도 진성욱의 적극적인 문전경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왼쪽 측면에서 김민우가 올린 낮은 크로스를 올렸고 문전에서 쇄도하는 진성욱을 저지하기 위해 다급하게 몸을 날린 리영철의 몸에 맞고 공이 굴절되며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운이 따라주기는 했지만 진성욱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득점 장면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긍정적으로 봐줄 만한 장면은 딱 여기까지였다. 신태용 감독은 "북한이 우리의 변화에 애를 먹었을 것이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잘되어가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내용면에서 과연 그 정도로 자화자찬할 만한 경기였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세계적인 강호 상대로도 통할 전술을 찾아야

신태용호는 이번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이라는 결과물과 내년 월드컵을 대비한 '실험'이라는 목표 사이에서 확실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모습이다. 신 감독은 북한전에서 지난 유럽원정 당시 실패했던 스리백 카드를 다시 들고 나왔는데 분명히 월드컵 본선을 염두에 둔 실험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공격력이 약한 북한은 애초에 신태용식 스리백의 진짜 경쟁력을 점검하는 데 적합한 대상이 아니다. 고작 북한을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했다고 해서 독일, 스웨덴, 멕시코같은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도 스리백이 통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온전히 북한전의 결과만을 끌어내기 위한 변칙적인 선택으로 이해해야 할까. 어쨌든 '이겼으니 성공'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북한은 애초에 수비에 치중하는 '지지 않는 축구'에 대한 컨셉이 명확한 팀이었다. 한국으로서는 동아시안컵 우승을 목표로 했다면 반드시 이겼어야 할 북한을 상대로, 덩달아 수비적인데다 선수들에게 익숙하지도 않은 스리백 전술을 또다시 들고 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신 감독은 자신의 전술에 북한이 당황했을 것이라며 자화자찬했지만 정작 한국의 공격도 시종일관 제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했던 장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스리백 전술도 물론 운용하기에 따라 충분히 공격적일 수 있지만 이날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북한의 두터운 협력수비에 막혀 한국은 이날 유효슈팅이 단 3개에 불과했고 심지어 전반까지는 아예 한 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의 경기운영 능력과 플랜 B에 대한 불안감도 여전했다. 신 감독은 지난 중국전에서 후반 우리 선수들이 체력이 떨어지며 중국이 스리백 전술과 선수교체 카드로 변화를 주는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동점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볼경합 12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2차전 리영철의 자책골로 한국이 1-0으로 앞서는 상황에서 김신욱과 북한 리영철이 볼경합을 하고 있다.

▲ 점점 더 치열해지는 볼경합 12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남자부 2차전 리영철의 자책골로 한국이 1-0으로 앞서는 상황에서 김신욱과 북한 리영철이 볼경합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공격에서 부지런한 모습을 보였던 진성욱을 교체하고 장신 공격수 김신욱과 공격형 미드필더 이명주를 투입했는데 정작 선수만 바꿨을뿐 그에 따른 팀플레이의 변화가 사실상 보이지 않았다. '조커'로서 김신욱의 제공권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측면에서 상대 수비를 흔들고 예리한 크로스를 올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이날 이미 전반부터 좌우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가 대부분 북한의 수비에 먼저 차단당하거나 부정확한 성공률로 행운의 자책골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김신욱을 투입하고 나서 오히려 한국의 공격력은 진성욱이 뛸 때보다 더 무기력해졌다. 오히려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진 한국 선수들의 수비라인이 또다시 벌어지며 북한 선수들의 스피드와 투지에 위험한 장면이 계속 연출되기도 했다. 

감독의 머릿속에 아무리 아름다운 축구가 펼쳐지고 있어도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이 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신태용 감독은 항상 자신의 구상대로 월드컵 준비가 잘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오히려 경기를 거듭할 때마다 불안감과 불신 여론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신태용호로서는 이제 최종전이 된 한일전의 결과가 매우 중요해졌다. 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감독 개인만을 위한 '정신승리'가 아니라 한국축구가 앞으로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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