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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미용실에 밀려 갈수록 사라져가는 이발소... 남녀노소 미용실을 선호하는 이유로 이발소는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지만 최고급 미용실 못지않게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이발소가 있다. 무려 57년째 가위를 잡아온 달인급 이발사에 인정 넘치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곳. 무궁화 이발소의 박기택 이발사를 만나본다.- 기자 말

청기와 지붕이 인상적인 당진시 무궁화 이발소 전경
▲ 무궁화 이발소 (당진) 청기와 지붕이 인상적인 당진시 무궁화 이발소 전경
ⓒ 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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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시 채운동의 한 골목에 자리잡은 '무궁화 이발소'.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있는 키 낮은 청기와집이 바로 박기택 이발사의 일터다. 청기와집의 옛날식 지붕 아래에는 편의점 간판과 이발소 사인볼이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독특한 외관의 무궁화 이발소. 이곳에 유쾌하기로, 사람좋기로 소문난 이발사가 있다. 바로 3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박기택(75) 이발사다.

57년째 이발사의 길을 걷고있는 박기택(75)이발사
▲ 이발중인 박기택 이발사 57년째 이발사의 길을 걷고있는 박기택(75)이발사
ⓒ 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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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에서 나고 자란 박기택 이발사는 18살 어린나이에 이 일을 시작해 올해 일흔 다섯의 나이까지 가위를 놓지 않고 있다. 이곳 청기와집에서만 무궁화 이발소를 운영한 지 30년이 넘어 손님들도 대부분 기본 20~30년의 단골들이라고 한다.

도란도란, 할아버지들의 사랑방

이발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담한 실내가 나이 지긋한 손님들로 북적였다. 미용실에서는 보기 힘든 점잖은 할아버지들이 이곳의 손님이란 걸 알 수 있었다. 2개의 이용의자에는 이미 면도와 염색을 하는 손님이 있었고 3개의 대기석은 만석이었다. 염색을 하다가도 아는 사람이 오면 서로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할아버지들의 사랑방
▲ 악수를 나누는 손님들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할아버지들의 사랑방
ⓒ 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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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뿐만 아니라 면도를 하러 온 손님, 염색을 하러온 손님, 그냥 지나다 들른 손님까지 줄을 이었다. 기다리는 이가 많아도 급한 사람은 없었다. 점잖은 대화속에서도 유쾌한 입담과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 온 탓인지 박기택 이발사와 손님들은 익숙한 친구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들은 무궁화 이발소가 단순히 이발만 하는 공간이 아닌 사랑방 같은 곳이라고 했다.차를 마시러 왔다는 한 노신사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여기 오면 재미도 있지, 머리 잘 자르지, 사람도 좋지, 그러니까 자주 오지"라며 호탕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사람 좋은 이발사, 박기택"

모범충남인상(2016) 당진군민대상(2002)
▲ 박기택대표가 수상한 각종 상패 모범충남인상(2016) 당진군민대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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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의 '사람 좋다'는 말은 바로 박기택 이발사의 헌신적인 봉사를 두고 한 말이었다. 무궁화 이발소 곳곳에서 박기택 이발사의 상패와 상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각종 감사패부터 당진군민대상 서산장학재단 대상, '모범충남인상'까지 40여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온 이발봉사와 이웃사랑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어려운 이들을 모른 체하지 않았던 박기택 이발사에 대해 단골들은 열마디 말대신 그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1971년, 이발사를 시작할 무렵
▲ 29살의 청년 박기택 1971년, 이발사를 시작할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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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택 이발사가 봉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군 제대 후 스물 아홉의 나이였다고 한다. 당시 친한 친구의 형이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을 할 수 없게 됐고 그것이 안타까웠던 박기택 대표는 이발소를 갈 수 없는 형을 위해 이발을 해주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자 소식을 듣고 한 사람 두 사람 봉사를 부탁해왔고 그렇게 시작한 봉사로 인해 이발소까지 차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중 노인복지시설인 평안실버에는 17년째 이발봉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한달에 한번씩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평안실버를 찾아간다는 박기택 이발사, 어르신 수십 명의 머리를 혼자서 손질하고 온단다.

17년을 한결같이 다녔다고 하니 그 뚝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아흔 살까지 봉사할 거라며 힘들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손만 안 떨리고 눈만 밝으면 할 수 있을 때까지 봉사할 거라며 그는 오랜 세월 다져온 주름으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건강한 삶의 비결, 노래

안주머니에 갖고 다니는 애창곡 수첩
▲ 이발사의 애창곡 수첩 안주머니에 갖고 다니는 애창곡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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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0년 봉사인생도 건강이 허락해야 가능했을 터. 박기택 이발사는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픈데 하나 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비결이 뭘까?

궁금해하는 기자를 위해 박기택 이발사는 손때 묻은 작은 수첩을 하나 꺼내왔다. 수십 곡의 노래 제목이 적힌 수첩이었다. '꽃피고 새울면'부터 '마지막 잎새'까지 박기택 이발사의 애창곡과 함께 숫자도 같이 적혀있다. 노래방에서 사용하는 곡번호라고 했다.

노래 얘기가 나오자 함께 있던 손님들이 가수보다 잘 부른다며 그의 노래실력을 인정했다. 노래대회에서 수상 경험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실력뿐 아니라 그 애정 또한 남달라 보였다.

75년 인생을 살면서 어찌 평탄하기만 했을까? 굴곡도 있고 아픔도 있었을 것이다. 아내와 사별하고 삼남매를 키우면서 힘겨운 시절도 있었다. 그럴 때 노래가 그에게 힘이 돼 줬다고 한다.

노래대회에서 가수 태진아와 함께
▲ 박기택 이발사의 노래대회 참가 당시 모습 노래대회에서 가수 태진아와 함께
ⓒ 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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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권유로 노래방을 가기 시작했다는 박기택 이발사는 지금도 스트레스를 풀고싶을 때 노래방을 찾는다고 한다. 혼자서 노래방을 가면 이 수첩에 적힌 노래들을 한번씩 다부르고 나온다고 한다. 세 시간이 걸린 적도 있지만 부르고 나면 머리가 개운하단다.

힐링이 되는 노래가 있다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래돼서 더 좋은 보물 같은 곳

무궁화 이발소에는 최신식이라고는 없었다. 빛바랜 요금표와 낡은 의자, 손잡이가 닳은 면도기가 단정하고 점잖게 나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30년 전 추억처럼 청기와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 좋은 이발사도 있었다.

헤어드라이어, 면도거품솔, 40년 된 면도기와 바리캉
▲ 손때묻은 이발소의 집기들 헤어드라이어, 면도거품솔, 40년 된 면도기와 바리캉
ⓒ 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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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를 나서기 전, 오래된 바리깡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흔 살이 넘었단다. 박기택 이발사는 사용하지 않아도 장식해 두며 보고 있단다. 나이 많은 물건이지만 박기택 대표에겐 고물이 아닌 보물같은 물건이란다.

그렇다. 오래됐다고 고물이 아니다. 오래돼서 더 좋은 것들이 무궁화 이발소에 가득했다.
오래될수록 보물처럼 남을 바리깡처럼 무궁화 이발소와 인정 넘치는 이발사가 이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서산당진태안 지역 매체인 라이프뉴스에 출고한 기사입니다



태그:#이발소, #사랑방, #바리캉, #당진시, #무궁화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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