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두산 선발 니퍼트가 1회말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두산 베어스의 니퍼트(자료사진) ⓒ 연합뉴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인연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지만, 이별하는 순간마저 아름답기 어렵다는 것은 약간의 씁쓸함마저 느끼게 한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는 지난 11일 롯데 출신 우완 투수 조쉬 린드블럼의 영입을 전격 발표했다. 두산과 롯데 팬들에게 모두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두산에게 린드블럼의 영입은 지난 7년간 에이스로 활약한 더스틴 니퍼트와 최종 결별을 의미했다.

니퍼트는 지난 2011년부터 7년 간 두산에서 뛰면서 통산 94승 43패 평균자책점 3.48의 성적을 남기며 KBO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군림했다. 2016년에는 28경기에서 22승 3패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 시즌을 보내고 MVP까지 수상했다. 6승을 그친 2015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즌은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승리를 기록할 만큼 꾸준함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이며 2010년대 두산의 4회 한국시리즈 진출과 2회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종전 다니엘 리오스가 가지고 있던 외국인 선수 최다승(90승)을 넘어 외국인 투수 최초로 100승까지 6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니퍼트+하느님을 의미하는 '니느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2017시즌에도 니퍼트는 14승 8패 평균자책점 4.06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기록과 내용에서 모두 하락세를 보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3경기 16.2이닝 16실점(15자책)으로 부진했다.

두산은 고심에 빠졌다. 올시즌 니퍼트의 연봉은 210만 달러였다. 두산이 니퍼트와 재계약을 원할 경우 규정상 해당 연도 계약 보너스와 연봉을 합친 금액의 최소 75% 이상에 해당하는 최소 157.5만 달러(약 17억 원)를 보장해줘야 했다. 두산은 30대 중반을 넘긴 니퍼트의 나이와 높은 몸값을 감안할 때 전성기가 지났다고 판단하고 장고 끝에 결국 재계약을 포기했다. 아무리 팀을 위해서 헌신하고 오랫동안 꾸준한 성적을 올렸어도 활용도가 떨어지면 결국 '용병'일 수밖에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 장면이다.

두산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지만 니퍼트가 아직 KBO를 완전히 떠날지는 확실하지 않다. 니퍼트는 비록 노쇠했지만 여전히 10승은 충분히 보장하는 카드로 평가받는다. 경험많은 베테랑 외국인 투수들을 원하는 팀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하다.

두산이 니퍼트의 대체자로 선택한 린드블럼은 신장 195㎝, 몸무게 105㎏의 당당한 체격을 자랑하는 정통파 투수다. 2015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하여 KBO리그에 뛰어든 린드블럼은 3시즌 동안 통산 74경기에 등판, 28승 27패 평균자책점 4.25를 기록했다.첫 해 32경기에서 13승11패 평균자책점 3.56을 기록하며 총 210이닝을 책임지며 '이닝이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린드블럼은 딸의 건강 문제로 2017년 초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올해 7월 롯데와 다시 계약하며 KBO리그로 돌아왔다. 후반기에는 12경기에서 5승 3패 평균자책점 3.72(72.2이닝 30자책)를 기록하며 여전한 구위를 뽐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준플레이오프 2경기에 등판해 1승 평균자책점 1.93(14이닝 3자책)의 위력적인 투구 내용으로 롯데의 에이스 역할을 해냈다. KBO무대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는 않지만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고 최동원에 빗대어 '린동원'이라는 별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던 선수였다.

두산으로서는 니퍼트 못지않은 건장한 체격에 훨씬 젊은 나이(니퍼트 81년생, 린드블럼 87년생), 위력적인 구위 등 모든 면에서 린드블럼이 니퍼트의 대체자로서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 두산 팬들로서는 구단에서 그동안 눈부신 헌신을 보여준 니퍼트를 잃은 대신 KBO무대에서 검증된 또 다른 에이스를 얻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아쉬운 결별 과정, 바라보는 팬들은 씁쓸하다

공교롭게도 두산과 롯데는 과거에도 핵심 선수들의 이적으로 얽힌 인연이 많다. 홍성흔(은퇴)은 두산을 대표하는 레전드로 꼽히지만, 2009년 FA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후 자신의 가장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4년을 부산에서 보내며 '부전드'(부산의 레전드)로 등극한바 있다.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장원준은 2015년 FA로 두산 유니폼을 입고 팀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공헌하며 두산의 토종 에이스이자 FA의 모범사례로 자리잡았다.

장원준에 이어 또다시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를 두산에 빼앗긴 롯데 팬들의 심경은 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린드블럼이 롯데를 떠나면서 구단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폭탄발언까지 터뜨리며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린드블럼은 두산과 계약이 사실상 합의하고 공개되기 직전에 자신의 SNS를 통해 돌연 롯데에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린드블럼은 "구단에 FA 조항을 요구한 것은 딸의 건강 문제나 돈 문제하고는 무관하다. 롯데 구단이 오랜 기간 정직하지 못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태도로 대응했다"라고 주장했다.

린드블럼의 주장에 따르면 "롯데는 진정으로 협상 의지를 보이지도 않았다. 언론에 딸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며 내가 롯데로 돌아오지 않을 핑계를 댔다고 하는 부분은 정도가 지나쳤다. 롯데는 한 번도 내게 딸의 건강상태를 물어본 적이 없었고 사실을 왜곡되는 발언으로 언론 플레이를 이어갔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외국인 선수가 전 소속팀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드러낸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린드블럼처럼 직설적인 표현과 구체적인 내용까지 일일이 폭로하며 비난을 쏟아낸 것은 드문 일이다. 린드블럼이 다른 리그로 떠난 것도 아니고 같은 KBO리그에 남아 다음 시즌 롯데를 적으로 마주쳐야 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욱 이례적이다. 롯데 구단은 일단 린드블럼의 발언에 대하여 '사실과 다르다'라며 당혹스러운 반응을 드러냈다.

린드블럼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팬들의 반응은 하루종일 극명하게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린드블럼의 발언을 지지하며 이번에도 구단 측이 협상 과정에서 무언가 선수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장원준, 강민호, 황재균 등 한때 롯데를 대표하던 간판 선수들도 구단과의 관계가 틀어지며 롯데를 떠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차피 협상이 결렬되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팀으로 떠나는 것 뿐인데, 구태여 전 소속팀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을 드러낸 것은 린드블럼이 프로답지 못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다음 시즌 두산 유니폼을 입은 린드블럼과 롯데의 재회가 상당히 묘한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니퍼트와 린드블럼 외에도 올겨울 KBO리그를 빛내던 '장수 외인'들이 하나둘씩 소속팀을 떠나고 있다. 이미 넥센이 앤디 벤헤켄과 결별했고, NC 다이노스가 창단 멤버인 에릭 해커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모두 30대 중반 이상을 바라보는 베테랑들이다.

기량 저하나 부상, 몸값에 대한 이견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단순한 외국인 선수이기 전에 한때 팀내에서 웬만한 국내 선수나 프랜차이즈스타 이상의 사랑을 받던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팬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더구나 린드블럼처럼 깔끔하지 못한 결별 과정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좋지 못한 추억을 남겨버린 케이스는 팬들에게도 씁쓸함을 남긴다. 최근 KBO를 강타하는 세대교체와 팀 개편의 칼바람 앞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외국인 선수들도 자유롭지 못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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