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화순 적벽 풍경.
 화순 적벽 풍경.
ⓒ 윤광영

관련사진보기


적벽(赤壁)이라 했지만 붉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과 강물은 푸르고 서늘하여 차라리 마음이 후련하였다. 그리고 절벽은, 강물 따라 은막처럼 펼쳐졌다. 그 은막 위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영화를 틀었다. 영화는 기쁘거나 슬펐고, 아름답거나 아련했다. 매우 절제된 대사들이 나오곤 했는데 바람이 모두 삼켜 버려 들리지 않았다.

화순 적벽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동복천 상류 약 7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동복으로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중국 양쯔강(楊子江)의 적벽에 버금가는 천하절경"이라고 감탄하며 붙인 이름이다.

사화에 분통이 터진 그는 술로 소일하는 날이 많았다. 술은 근심을 잊게 해주는 '망우물(忘憂物)'이라 했던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좋았던 그는 만취하면 운명의 역린을 배설하듯 시를 읊었다.

화순 적벽 건너편엔 '물염정'이란 정자가 있다. 물염공 송정순(1521~1584)이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없이 살겠다(勿染)"라며 지은 띠집이 정자가 되었다. 이곳에도 최산두가 남긴 시 두 줄이 또 하나의 적벽처럼 남아 있다.

"백로가 고기 엿보는 모습, 강물이 백옥을 품은 듯 하고
노란 꾀꼬리 나비 쫓는 모습, 산이 황금을 토하는 것 같네."

원래 사절 시를 썼는데 두 절만 남아 있는지, 처음부터 두 절만을 썼는지 알 길이 없다. 물염정에 앉아 화순 적벽의 빼어난 풍광을 노래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 보이는 그대로 노래했지만 그 어디에도 '나'는 없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의도적으로 '나'는 배제해 버린 두 절 짧은 시가, 사화로 허망하게 끝나 버린 조광조와 최산두 등의 젊은 사대신진이 못다 그린 개혁청사진처럼 슬프다.

길이만 7Km에 달하는 경관이라 동복천 물길이 굽이치는 곳에 따라 적벽의 이름도 다르다. 물염정 맞은 편으로 보이는 물염적벽, 창랑리에 있는 높이 40여m에 길이가 100여m가량의 창량적벽, 투어신청을 해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경관이 빼어난 노루목적벽과 그 앞에 작은 병풍처럼 펼쳐진 보산적벽.

화순 적벽은,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동복으로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중국 양쯔강(楊子江)의 적벽에 버금가는 천하절경”이라고 감탄하며 붙인 이름이다.
 화순 적벽은,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동복으로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중국 양쯔강(楊子江)의 적벽에 버금가는 천하절경”이라고 감탄하며 붙인 이름이다.
ⓒ 윤광영

관련사진보기


사랑의 면적을 생각케 하는 화순 적벽.
 사랑의 면적을 생각케 하는 화순 적벽.
ⓒ 윤광영

관련사진보기


사람들이 많이 찾는 노루목적벽은, 동복댐 건설로 물이 차올라 그 형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수심이 30-40미터 아래로 더 내려가야 노루목적벽의 온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물 아래 잠긴 풍경, 물 아래 잠긴 마을. 적벽은 본래 풍경을 잃었고, 사람들은 고향을 잃었다.

광주와 화순의 고질적인 식수난을 해결하겠다며 동복천 상류 협곡에 동복댐을 처음 건설한 해는 1970년이었다. 광주의 인구가 늘어 안정적인 식수 공급이 어려워지자 1984년에는 동복댐 확장공사를 했다. 그렇게 더 많은 마을이 물에 잠겼고, 그렇게 더 많은 이들이 고향을 잃었다.

아름다웠던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경산, 월평, 장원, 난산, 보암, 노루목, 전도, 석복, 석림, 학당, 사천. 동복댐 건설로 완전 수몰된 11개 마을 이름이다. 서리, 창량, 와천, 물염. 마을 일부가 수몰된 곳이다. 약 5700명의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이주했다.

마을을 잃은 대가로 이웃이 마실 물을 만들어 주었다. 집을 잃은 대가로 옆 동네 사람들에게 살아갈 물을 보내 주었다. 5700명의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난 대가로 150만 광주시민들이 물 걱정 없이 광역도시 생활을 즐기고 있다.

화순 적벽 앞에서 '사랑의 면적'을 생각한다. 살아온 세월의 이끼만큼 짙은 미련을 남기고 보금자리를 떠난 15개 마을 5700명 주민들의 사랑의 면적은 얼마나 넓을까. 사랑의 면적을 재는 게 유치하다고? 사랑은 원래 유치할 정도로 구체적인 것이다. 남을 위해 내 집을 내놓고, 우리를 위해 내 땅을 내놓고, 남 좋으라고 나의 이익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구체적인가. 내 사랑의 면적은 얼마나 되는가.

마을을 내주고 생명수를 건넨 5700명의 주민들처럼 매우 넓게 깊은 사랑. 물속에 몸의 절반을 담그고서 의연하게 여행객들의 눈과 눈을 마주하는 노루목적벽처럼 매우 이기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아름다운 사랑. '희생'과 '이타'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면적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어느 좋은 날, 화순 적벽에서 영화를 상영할 것이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면적을 남기고 기꺼이 고향을 떠난 15개 마을, 5700명의 얼굴 하나하나를 상영할 것이다. 세상 때 묻지 않은 물염정이 영사기를 돌리면 노루목적벽은 은막이 되어 얼굴 하나하나를 비출 것이다. 동복천은 살랑거리며 효과음을 낼 것이고, 잔별들 우수수 조명을 치겠지.

사랑하려거든 이들처럼 매우 구체적으로, 사랑하려거든 이들처럼 측량할 수 없는 면적으로. 

망향정에서 바라다보이는 화순적벽 가운데 노루목적벽. 동복댐 건설로 30-40미터 잠겨있다.
 망향정에서 바라다보이는 화순적벽 가운데 노루목적벽. 동복댐 건설로 30-40미터 잠겨있다.
ⓒ 마동욱

관련사진보기




태그:#적벽, #사랑, #화순 여행, #동복댐, #식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