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빙의 <잠자리의 눈>(2017)은 중국 전역에 설치된 CCTV 영상으로 만들었다.

쉬빙의 <잠자리의 눈>(2017)은 중국 전역에 설치된 CCTV 영상으로 만들었다. ⓒ 서울독립영화제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설치미술가 쉬빙은 오래전부터 CCTV 영상들을 활용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CCTV 영상들을 추출할 방법이 없어 희망 사항으로만 남던 중, 최근 중국 전역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영상들이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아카이빙 되고 있고, 심지어 온라인에 스트리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바란 대로 100% CCTV 영상들을 활용한 영화를 만들게 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쉬빙의 첫 장편영화 <잠자리의 눈>(2017)은 100% CCTV 영상들을 활용한 일종의 파운드 푸티지(이미 찍힌 기존의 영상들을 가져와 작가의 의도대로 편집하여 만든 영상작품) 영화다.

100% CCTV 영상'만'으로 만든 파격

 CCTV 영상 위에 더빙을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CCTV 영상 위에 더빙을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 서울독립영화제


어떻게 CCTV 영상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아카이브 푸티지(영상)를 재활용해 새로운 영화를 만든 사례는 꽤 있다. 영화사에서 손꼽는 걸작으로 꼽히는 브루스 코너의 <영화, A movie>는 영화, 다큐멘터리, 뉴스 등 다양한 아카이브 영상들을 편집하여 그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화 형태를 만들어 냈으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는 <영화사>(1997)를 필두로 <필름 소셜리즘>(2010), <언어와의 작별>(2013) 등 아카이브 영화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자화상>(2003)를 만들며 주목을 받았던 톰 앤더슨은 기존의 영화들을 인용한 영화 비평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동안 미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쉬빙이 CCTV 영상을 활용한 독특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2013년 우연히 한 치안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CCTV 영상들을 보게 된 쉬빙은 인위적으로 찍히는 요즘 영상들과 달리 찍히는 사람이 자신이 카메라 찍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오는 CCTV 영상에 매료된다. 하지만 CCTV 영상만 계속 보여주면 지루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쉬빙 감독은 통속적인 성격을 가진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더빙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쉬빙이 CCTV 화면에 덧입힌 스토리를 말하자면 대강 이러하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절에서 수행하고 있던 젊은 여성 칭팅은 세속적으로 변하는 절에 실망하고 속세로 돌아와 목장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운명론을 들먹이며 칭팅에게 접근하는 커판 때문에 여러 가지 곤란한 일을 겪게 된 칭팅은 현실에서 잘 살려면 빼어난 미모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신 성형 수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칭팅은 어떻게든 커판을 떼어놓고 싶어 했지만 칭팅에 대한 집착으로 똘똘 뭉친 커판은 칭팅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삼류 막장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칭팅과 커판의 이야기도 기가 막히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지탱하게 하는 CCTV 영상들은 더욱 충격적이다. 식당, 세탁소, 의류점, 공장 등과 같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각자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지만, 차마 제대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각종 사건·사고 재난 현장들이 관객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잠자리의 눈>은 불안과 위험을 주제로 만든 영화다. 우리의 삶은 실시간 CCTV에 의해 감시되고 있고 현실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있는 그대로 찍어내는 감시카메라는 그 어떤 가상 이미지가 쉽게 만들 수 없는 충격 요법을 선사한다.

우리가 보는 건 진짜인가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영상들을 모아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영상들을 모아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 서울독립영화제


<잠자리의 눈>에 등장한 화면들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찍은 영상이고 쉬빙은 그 영상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과연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하여 물신화되어가는 아시아의 현실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우리의 일상에 숨겨진 "비가시적"인 위기를 밝히고,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불가해한 사건들의 순서 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거짓이 참이 되면, 참도 거짓이 된다."는 대사를 빌러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위험이 참과 거짓을 쉽게 분별할 수 없는 현대의 삶을 꼬집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CCTV를 비롯한 여러 카메라를 통해 무수히 많은 푸티지가 만들어지고 있고, 계속 아카이브 영상으로 쌓이고 있는 이미지들은 <잠자리의 눈>처럼 별도의 촬영 없이 기존의 아카이브 푸티지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CCTV 영상 인용과 스토리 구성에 있어 장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지만, 영화 제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하는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43회 서울독립영화제 해외 초청작으로 선보이게 된 쉬빙의 <잠자리의 눈>은 12월 7일(목) 18시 10분,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에서 한 차례 상영을 앞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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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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