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향하는 과정부터 험난했다. 우리는 월드컵 본선과 거리가 먼 중국과 카타르 원정에서 무너졌다. 홈경기를 치를 수 없었고, 제대로 된 훈련조차 힘든 시리아도 압도하지 못했다. 이란과 격차는 더 벌어졌고, 우즈베키스탄은 더 이상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본선 무대에서 요행을 바라는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크렘빈궁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 추첨에서 스웨덴, 멕시코, 독일과 함께 F조에 편성됐다. 대표팀은 내년 6월 18일 스웨덴과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르고, 24일 멕시코, 27일 독일과 차례로 만난다.

첫 상대인 스웨덴은 북유럽의 강호다. 스웨덴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A조에서 프랑스를 홈에서 잡아내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2014 브라질 월드컵 3위를 차지한 강호 네덜란드에 예선 탈락이란 굴욕도 안겼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이탈리아에 6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란 아픔을 전했다.

스웨덴은 '슈퍼스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유로 2016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지만, 더 단단해진 전력을 구축했다.

스웨덴은 예선 10경기에서 26골을 터뜨렸고, 9실점밖에 하지 않았다. 득점력은 호화군단 프랑스(18득점)보다 뛰어났다.

마루쿠스 베리가 8골을 몰아치며 이브라히모비치의 공백을 메웠지만, 그에게만 의존하지 않았다. 올라 토이보넨, 에밀 포르스베리 등 공격진의 역할 분담이 확실했고, 조직적인 플레이를 앞세워 득점을 만들어냈다. 중원에서는 세바스티안 라르손, 수비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빅토르 린델로프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끈끈한 모습을 보여줬다.

멕시코는 매번 16강에 올라서는 팀이다. 1994 미국 대회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6회 연속 본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우리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겼고, 네덜란드, 벨기에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며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멕시코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북중미 예선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예선 10경기에서 6승 3무 1패 승점 21점을 기록하며, 북중미 1위로 러시아행을 확정지었다. 2위 코스타리카와 승점 차는 5점이었다. 

멕시코의 강점은 탄탄한 조직력이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치차리토)란 슈퍼스타가 있지만, 한 선수에 크게 의존하는 팀이 아니다.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주역 오리베 페랄타와 라울 히메네스,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 등이 건재하고, 디에고 레예스와 카를로스 살세도가 이끄는 수비도 안정적이다.

멕시코는 한때 신체 조건에 약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레예스(189cm)와 살세도(188cm), 히메네스(187cm), 페랄타(179cm) 등 개인기와 조직력, 신체 조건까지 고루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다.

독일은 말이 필요 없는 세계 최고의 팀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 2006 독일 월드컵 3위, 2010 남아공 월드컵 3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우승을 차지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C조에서는 10전 전승을 기록했다. 북아일랜드와 체코, 노르웨이 등 만만찮은 상대들이 버텼지만, '43득점 4실점'이란 기록이 증명하듯 압도적이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어린 선수들의 경험을 쌓기 위해 2진급을 내세운 대회였지만, '전차군단'의 상승세는 거침이 없었다.

독일은 우승 후보 0순위다.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은퇴한 이후 최전방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문제가 없다. 월드컵에만 나서면 폭발력을 보이는 토마스 뮐러가 건재하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윙어로 성장한 르로이 사네가 공격에 포진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주역 마리오 괴체, 괴물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티모 베르너, '축구 천재' 율리안 드락슬러 등도 출격을 준비한다.

메수트 외질이 공격을 지휘하고, 토니 크로스가 중원의 중심을 잡는다. 마츠 훔멜스가 수비의 안정을 꾀하고, 마누엘 노이어가 골문을 지킨다. 독일은 대표팀을 둘로 나눠 본선에 나선다면, 두 팀 모두 결승 진출이 가능할 정도로 전력이 막강하다.

우리의 조 추첨 결과만 놓고 보면,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3전 전패를 당할 확률이 매우 커 보인다.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1, 2차전에서 맞붙는 스웨덴과 멕시코도 우리보다 두 수는 위다.

하지만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 져도 그만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방심이었다. 우리는 4년 전, 월드컵 본선 조 추첨 이후 16강 진출을 확신했다. 개최국 브라질,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 등을 피해 벨기에를 만났고,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러시아, 알제리와 한 조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특히, 확실한 1승 제물로 여긴 알제리전은 조별리그 3경기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한 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조에 속했다.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가 철저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 48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 첫 승을 바라보고, 16강 진출을 목표했던 2002 한-일 월드컵의 초심을 되찾을 기회다. 

언론과 팬들의 기대치도 낮아졌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16강 진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안다. 힘겨운 목표 달성보다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부담이 없다. 본선에서 3전 전패를 기록해도 뭐라 할 사람은 많지 않다. 11월 A매치 2연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한 발 더 뛰는 마음으로 본선에 임한다면, 박수 받을 수 있다.

신태용호는 조 추첨 전이나 후나 '도전자'다. 요행은 없다.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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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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