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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무인 김환호가 11월 30일 자신의 전안에서 맞이굿을 하고 있다
▲ 굿을 하는 김환호 강신무인 김환호가 11월 30일 자신의 전안에서 맞이굿을 하고 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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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0월이 되면 신을 모신 무격(巫覡)들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수양부리)들을 위한 맞이굿을 연다. '진적굿'이라고도 하는 맞이굿은 하늘에 있는 신령을 맞아들여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수명장수 등을 축원하는 굿으로 '천궁맞이'라고도 부른다.

경기도 강신무계열의 굿은 많은 문서(무가)와 춤(거성), 예능, 음악(장단 및 소리) 등 뛰어난 재능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강신무들이 경기도 굿을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한때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한 '미신(迷信)'이라는 해괴한 억누름과 개신교의 우상숭배라는 배척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전승되었다.

맞이굿을 하기 위해 전안에 차려놓은 굿상의 상차림
▲ 전안에 차린 굿상 맞이굿을 하기 위해 전안에 차려놓은 굿상의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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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신무들의 수난은 그런 외형적인 것보다 오히려 조선조 말에 재인들의 집단인 재인청(才人廳) 소속의 세습무계열인 화랭이들에게 더 많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화랭이들은 강신무들의 굿 행위를 막기 위해 굿으로 번 돈을 모두 압수하는가하면 심지어 곤장을 치기도 해 강신무들은 조선조 말부터 일제치하까지 지하실 등에 숨어서 굿을 행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온 굿이 바로 경기도굿이다. 화려한 소리와 춤, 재담 등으로 이루어진 경기도굿은 음악과 춤, 많은 국문학적 자료인 무가 등 종합예술로 가장 훌륭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지만 아직도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한 종합예술인 경기도굿으로 이루어지는 맞이굿판을 찾아가보았다.

굿판을 정화시키기 위한 앉은부정굿을 하고 있다
▲ 부정굿 굿판을 정화시키기 위한 앉은부정굿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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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서도 자릴 비우지 않아

11월 30일,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20번길18 2층. 앞으로는 수원매산시장 거리이고 좁은 뒤편으로 돌아가면 2층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이곳 2층에는 '연천암'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이곳에서 무업을 시작한 지 30여년이 지난 김환호(남, 55세)의 맞이굿이 열린 것이다.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재래시장의 2층이기 때문에 장소가 넓지 않아 신령을 모신 신당을 제외하면 2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도 비좁은 제장이다.

그런 곳이지만 단골들은 자리를 비우지 않고 모여서 거리마다 진행되는 굿을 보며 혹 자신에게 공수(공수는 '신탁信託)'이라는 신의 이야기를 무격이 대신 전해주는 것을 말한다)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굿판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굿은 '주당물림'이라고 해서 장고, 징, 바라 등 타악기소리를 크게 울려 굿판에 접근하는 사악한 것들을 쫓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부정굿을 하는데 부정굿은 앉은부정으로 굿판과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부정을 가시는 의식을 진행한다. 이날 부정은 경기도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이 맡아했다. 고성주와 김환호는 한 사람의 동일한 강신무를 신아버지로 둔 신형제이다. '마도박수'라는 별호를 가진 신이버지는 근동에서 가장 잘 물리는 강신무로 명성을 얻었던 사람이다.

맞이굿을 연 김환호가 신복을 갈아입으며 천궁맞이를 진행하고 있다
▲ 천궁맞이 맞이굿을 연 김환호가 신복을 갈아입으며 천궁맞이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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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궁맞이로 본격적인 맞이굿 시작

연천암 김환호의 천궁맞이는 신계에 있는 모든 신령들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그런 후에 경기도굿 12거리를 차례로 신복을 갈아입으며 진행한다. 천궁맞이를 하는 중에 무격이 물동이를 타는 의식이 있는데 이를 '용사슬 탄다'고 하여 무격이 자신을 신령에게 받치는 의식이다. 이때 굿판에 모인 단골들에게 공수를 준다.

이날 굿판에는 고성주 회장을 비롯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도당굿의 이수자인 승경숙, 수원 영화동에서 무업을 하는 맹아무개(여)와 고성주 회장의 신딸인 서유리(여, 27세) 등 무격 5인과 피리를 부는 악사 한 명이 함께했다.

좁은 실내에는 그 외에 단골 20여 명이 함께 자리했기 때문에 발조차 제대로 뻗을 수가 없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굿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굿판에서 나누어주는 '복을 받아간다'는 산을 받기 위함이다.

천궁맞이를 굿판의 주인인 김현호가 마치고 나면 산거리부터 강신무의 선굿 12거리를 맞이굿에 초대되어 온 무격들이 돌아가면서 한다. 굿을 '열린 축제'라고 한다. 하루 종인 흥겹게 뛰고 놀며 준비한 많은 음식을 먹는 굿판은 예전 '맞이굿'의 형태를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훌륭한 종합예능이다.   

이날 굿판에 참여한 서유리가 대신거리를 진행하고 있다
▲ 대신거리를 하는 서유리 이날 굿판에 참여한 서유리가 대신거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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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뒷전' 한 거리만으로도 뛰어난 기능 보여

경기도굿은 뛰어난 재능을 요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해학적인 굿거리 제차는 바로 굿의 끝에 행해지는 '뒷전'이다. 뒷전이란 굿판의 끝에 굿판에 모인 모든 잡귀와 집신들을 잘 먹여 보내는 의식으로 뒤탈이 없게 만드는 굿거리이다. 예전에는 '뒷전무당'이라고 해서 뒷전만 전담하는 무격이 별도로 있어 굿을 다 마칠 무렵인 다음날 아침 굿판으로 찾아왔다. 

이날 뒷전은 고성주 회장과 승경숙이 맡았다. 경기굿의 뒷전은 장고 역시 아무나 맡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단을 필요로 한다. 하기에 예전에 뒷전무당들은 자신이 뒷전을 할 때 전용 장구잽이를 대동하고 나타나고는 했다. 굿은 '열린 축제'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뒷전에서는 맹인타령 등 수비에 해당하는 각종 귀신들이 들어와 그들의 흉내를 무격이 그대로 내면서 굿을 이끌어간다.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이 뒷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장단은 승경숙이 맡았다
▲ 뒷전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이 뒷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장단은 승경숙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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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전을 보면서 사람들은 웃느라고 정신이 없다. 해학적인 각종 잡귀들의 흉내를 내며 굿을 이끌어가는 고성주 회장의 굿은 그야말로 굿판을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뒷전만 갖고도 충분히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을 한다.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이날 김환호의 맞이굿에서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온종일 즐기며 먹고 마시고 즐겁게 웃어가면서 하루를 보낸 맞이굿. 굿을 '열린 축제'라고 한 이유를 이날 비로소 알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티스토리 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맞이굿, #김환호, #수원, #매산동, #매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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