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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프랑스라는 것만 알았을 뿐 프랑스 어디쯤인지, 그곳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심지어 최근 방영된 드라마의 배경이 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아무 것도 몰랐지만, 그곳이 찍힌 사진 한 장을 봤을 때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강렬하게 끌렸다. 마음속에 간절한 등불 하나가 밝혀졌다. 꼭 가 보고 싶었다.

 몽생미셸 수도원 야경
 몽생미셸 수도원 야경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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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돌섬. 그 돌섬의 중앙에는 뾰족한 첨탑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믿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올곧게 뻗어 있었다. 지상의 풍경이 아니라 천상의 풍경을 닮은 듯한 이곳의 이름은 몽생미셸.

파리 현지에서 진행하는 자유여행 투어에 몽생미셸투어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을 했다. 신청자들은 오전 6시 개선문 앞에 집결을 했다. 같은 목적으로 모인 한국인들은 모두 30여 명. 파리에서 자유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4시간 거리인 몽생미셸까지 혼자 갈 수는 없으니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11월 하순에 접어든 파리는 밤이 길었다. 개선문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고. 주변은 캄캄했다. 버스에 올라 수신기를 하나씩 받았다. 외국에서 진행되는 현지투어는 전부 이렇게 진행된다. 수신기에 이어폰을 끼워서 귀에 꽂으면 가이드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이크를 이용해 큰 목소리로 진행하는 설명이 아니어서 부담감이 덜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싶지 않으면 수신기를 뺄 수 있는 자유도 있어 한결 마음이 편하다.

 해설을 듣는 수신기
 해설을 듣는 수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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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랍게도 이어폰을 귀에 끼자 부드럽고 달콤한 샹송이 흘러나왔다. 이 팀은 여행에 대해 안내를 하면서 투어 지역과 관련이 있는 음악을 함께 들려주며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특히 이번 투어에 동행한 가이드는 자신의 별명이 '샹송 읽어주는 남자'라면서 익히 아는 유명한 샹송들의 가사를 음악과 함께 읽어줬다.

새벽빛이 감싼 프랑스 거리를 달리며 듣는 샹송과 한국말 가사 번역이라니. 달리는 버스는 순식간에 음악감상실이 됐다. 묵직하고 달콤한 이브 몽탕의 고엽을 들려주며 시인 자크 프레베르를 소개하고, 에디트 피아프와 이브 몽탕의 사랑이야기까지 들려주니 수준 높은 프랑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도 켜 놓은 듯했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자 녹색 양탄자를 펼쳐놓은 듯 목가적인 프랑스의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샹송 읽어주는 남자'의 샹송을 들으면서 달리다 보니 마치 달콤한 연인과 함께 여행하는 듯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파리에서 출발한 지 4시간여, 차가 들녘 한쪽의 코너를 돌자 멀리 사진 속에서 본 풍경이 훅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땅속에서 불쑥 솟아오르기라도 한 듯,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들녘에 당당히 서 있는 성, 몽생미셸이었다.

 바위섬 위에 세워진 몽생미셸 수도원
 바위섬 위에 세워진 몽생미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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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델이라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섬이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의 한 장면이 현실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듯하다. 몽생미셸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15m나 되는 심해다. 수도원은 밀물 때면 완벽한 섬이 된다. 썰물이 돼야 비로소 육지로 향하는 길이 생긴다.

수도원 첨탑 위 금빛 조각은 미카엘 대천사다. 이 수도원은 서기 800년경 건너편 아봉슈 마을에 살던 대주교 오베르의 꿈에 미카엘천사가 나타나 수도원을 지을 것을 계시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바위섬을 깎아 교회를 짓는 일은 미카엘 대주교도 엄두가 안 나지 않았을까? 3번이나 계시를 묵살했다가 3번째 경고를 받은 후 비로소 공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미카엘 대천사에게 계시를 받는 장면
 미카엘 대천사에게 계시를 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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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몽은 불어로 '산', 생은 '성인', 미셸은 '미카엘 대천사'의 불어식 발음이다. 그러니까 몽생미셸이라는 이름은 '성 미카엘 대천사의 산'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수간만이 15m가 되는 바다 한가운데 외떨어져 있는 돌섬에서 수도원을 건축할 자재는 어떻게 확보했을까? 수도원 바닥 돌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표시가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건축돌을 옮긴 석공들의 임금증서 같은 것이다.

자재는 40km가 떨어진 또 다른 섬에서 채취해 밀물을 이용해 이곳까지 옮겨왔다. 옮기기 전 석공들은 숫자나 기호로 자신이 캐낸 돌임을 표시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돌에 새긴 기호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석공들의 임금증서는 선명히 남아 있다.

 성벽돌에 새겨진 기호들, 석공들의 자신이 캔 돌임을 나타내기 위해 새긴 것이다
 성벽돌에 새겨진 기호들, 석공들의 자신이 캔 돌임을 나타내기 위해 새긴 것이다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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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으로 들어서면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중세의 마을 같다. 지금은 대부분 기념품 가게나 호텔로 변해 있는 이 마을은 원래는 수도원 밑에 형성돼 있던 일반인 마을이다. 이 마을 길을 따라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을 30여 분쯤 오르면 돌섬의 중간부터 수도원이 시작된다.  
 수도원 밑 옛 마을, 지금은 호텔이나 기념품 가게로 변해 있다
 수도원 밑 옛 마을, 지금은 호텔이나 기념품 가게로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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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은 베네딕토 수도회 신부들이 수도를 하던 곳이다. 베네딕토 수도회의 모토는 '일하고 기도하라'다. 절대 놀고 먹지 않으며, 기도하지 않을 때는 일했다고 한다.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한 이들은 어디를 가나 몸을 움직여 일하는 작업장을 제일 먼저 만들었다.

빛이라고는 검소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하늘빛뿐. 햇빛이 없는 날에는 더 어두웠을 작업장에서 이들은 세계 각지의 언어로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 했다. 차가운 돌이 뿜어내는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서 추위에 곱은 손을 펴가며 성경을 필사하는 일은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까?

 묵언수행하던 수행자들만 건너다니던 통로
 묵언수행하던 수행자들만 건너다니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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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가톨릭 신자들이 평생 한 번은 가 보고 싶어 하는 순례지가 됐다. 순례자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무려 400km가 떨어져 있는 이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순례의 길을 나섰다. 몇 달동안 이어진 순례길 끝에 수도원이 보이는 아봉슈 마을에 도착하면 하룻밤을 묵으면서 목욕재계를 했다. 그리고 썰물 때를 기다려 수도원을 향해 마지막 순례길을 나섰다.

수도사들이 건너야 하는 길은 7km. 그러나 아봉슈마을에 머물면서 물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미처 듣지 못한 순례자들은 바닷길을 건너는 동안 밀물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조수간만이 15m에 달하는 바닷물, 바다 한가운데 갇힌 순례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되돌아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던 그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슨 기도를 했을까? 그렇게 죽어간 순례자들이 많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들이 택한 길은 죽음의 길이었을까? 영원의 길이었을까?

 외부와 차단된 수도원의 성벽
 외부와 차단된 수도원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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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수도원 주변 풍경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수도원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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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돌섬 위에 지어진 요새 같은 성은 변혁의 시기에는 용도가 변모되기도 했다. 영국과의 백년 전쟁 중에는 요새로 사용되기도 했고, 프랑스 혁명 때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버려진 채 잊혀 가던 성의 가치를 다시 발견한 이는 빅토르 위고다. 위고가 대대적으로 보존운동을 펼치면서 보수공사가 진행돼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만약 눈 밝은 세계적인 대문호가 수도원을 가치를 알아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성은 어떻게 됐을까? 몽생미셸은 1978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감옥으로 쓰였을 만큼 세상과 단절된 수도원에서 오로지 하느님을 바라보며 수도생활을 했던 수도사들. 그들은 왜 스스로 그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하고 감수했을까? 어쩌면 일반인들은 보지 못한 삶의 다음 페이지를 엿보았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감수할 용기가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이 거대한 수도원에는 12명만이 수도생활을 한다고 한다. 신부와 수녀 외에 일반인도 있는데, 그중 한 명은 프랑스의 유명한 제과업체 창업주로, 은퇴를 하고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것을 가졌을 그가 은퇴 후에 왜 이런 금욕적인 생활을 선택한 것일까?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신비는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멀리서 보기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수도원.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직접 차가운 돌바닥을 걸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슬픈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아름다운 풍경이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까지 울릴 때, 풍경은 팍팍한 우리 삶에 뭉클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멀리 보이는 몽생미셸 수도원
 멀리 보이는 몽생미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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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상의 스위치가 꺼지면 그때까지 잊고 있던 또 다른 세상의 스위치가 켜진다. 좋은 여행이 그런 역할을 한다. 하나의 스위치를 끄고 또 다른 스위치를 켜는 것, 자신의 삶에 또 다른 스위치를 켜고 싶은 사람들에게 몽생미셸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매시간 수도원 전체를 울리는 종소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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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작가 협회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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