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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출범 기자회견
 9월 26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출범 기자회견
ⓒ 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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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2017년의 여름, 어느 공공기관에서 열린 공청회, '만 18세 선거권, 만 16세 교육감 선거권'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너댓 명의 어른들이 "청소년은 미성숙해서 참정권을 주면 안 된다" "당장 내 아이만 봐도 얼마나 철이 없는데 애들이 투표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며 청소년을 폄하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자 어느 청소년이 손을 들고 발언을 신청했다. 그의 발언. "성숙하고 뛰어난 사람들끼리만 정치에 참여할 거면 과두정 해야죠. 민주주의를 왜 하나요?"

#장면 둘.
그로부터 몇 달 뒤.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의 시작으로부터 1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서울에서 열리던 날이었다. 그날 인권단체들은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전집회를 진행했다. '촛불혁명' 이후에도 소수자들의 삶이 나아지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을 담아 기획한 집회였다. "이 나라는 저를 시민으로 대접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박근혜 퇴진 촛불에 함께했습니다. 청소년도 같이 만든 촛불대선인데 청소년은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탄핵은 같이했는데 선거에서는 배제됐습니다." 그 집회의 무대에 올라선 한 청소년의 발언이었다.

#장면 셋.
부산의 어느 고교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뉴스에 올랐다. 교사들이 일명 '교내 연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해당되는 학생들을 체벌한 사건이었다. 해당 교사는 커플 중 남학생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 여학생에게 그것을 지켜보도록 했다. '연애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체벌이 이어졌다. '엎드려뻗쳐' 체벌을 당한 학생 외에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학생들은 교사에 의해 머리 등 신체부위를 폭행당했다.

'미성숙하다'는 형용사는 청소년에 대한 다양한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왔다. 청소년이 과연 미성숙한가-또는 비청소년들은 성숙한가-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들은 많다. 첫째로 결정할 자유, 책임질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미성숙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머리카락, 옷차림조차 학교에 의해 통제받는 한국 청소년들은 '성숙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둘째로 청소년의 '미성숙함'은 미디어와 담론에 의해 과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를 보도할 때면 언론은 유독 나이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범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연령대는 40대이다. 청소년의 '음란물' 이용이 유독 문제시되지만, 연령별 평균 음란물 노출 횟수를 조사한 결과 가장 높게 나타난 연령대 역시 40대이다. 같은 행동이더라도 행위자가 청소년이라면 그 행동은 청소년 집단 전체의 '미성숙함'을 증명하는 근거처럼 활용되곤 한다.

셋째로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더라도 그 나이는 다양하고, (열아홉과 스물이라는)한 살 차이로 인해 개인의 본질적 특성이 크게 달라지기 어려우며, 같은 나이더라도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가진 능력이 다른데 국가에 등록된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된 생물적 나이에 따른 일괄적 권리 박탈이 타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는 주장에 반박하기 이전에, 과연 '미성숙'은 인권을 박탈하거나 유예하는 정당한 근거인지를 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과거의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꿈을 이어가는 우리가 발 디디고 서야 하는 전제는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가정하여, 인권에 자격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너는 그러한 존엄을 누릴 만큼의 쓸모가 있는 인간이냐 묻지 않는 것. 어떠한 상황에도 불가침한 인권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글 읽는 능력,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 윤리적 성숙도를 측정하지 않은 채 동등한 시민으로 서로를 대우하는 것. 민주주의 할 거라면, 보장해야 한다. 청소년에게도 참정권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투명인간이 되지 않을 권리를.

☞2018년 지방선거는 청소년과 함께! 촛불청소년인권법 지지 서명하기 : youthact.kr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쥬리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입니다.



태그:#촛불청소년인권법, #청소년참정권, #청소년인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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