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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렇겠지만, 특히 글을 쓸 때에는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귀찮거나 깜박했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한 번 지나치는 일이야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고... 그러다 보면 "에잇,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중도에 글 쓰는 일을 포기한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새해를 맞아 담배를 끊는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계획을 거창하게 세웠다가 작심삼일이 되었던 경험. 마찬가지다. 글쓰기도 습관이 붙어야 탄력이 생기고 속도가 난다.

글쓰기 책이나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코칭을 보면 '매일 규칙적으로 써라'라는 꼭지가 꼭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이나 한국 소설가 이승우 등 유명인의 글쓰기 책을 펴서 확인해보라. '매일 습관적으로 쓰라'는 내용 반드시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학창시절 방학숙제로 일기 쓰기를 해본 사람을 알 것이다. 방학 초기에는 굳게 의지를 다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방학에는 일기만큼은 밀리지 않고 매일 매일 쓰겠다. 그런데 결과는 아마 들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런 점에 비추어 글쓰기를 매일 습관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상적인 에세이라면 한 편을 쓴다면 앉은 자리에서 후딱 다 쓸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맘먹고 두서너 번 쓰면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주제에 대해 호흡이 긴 글을 쓰거나 나아가 책을 쓴다고 할 경우엔 한 꼭지의 글을 쓰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아리랑>, 최명희의 <혼불> 같은 열 권짜리 작품들을 흔히 '대하소설(大河小說)'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대하(大河)'는 중국의 장강(長江, 양쯔강)을 의미한다.

장강은 중국의 중앙을 가르는 강으로 나일 강과 아마존 강에 이어 길이가 세계에서 세 번째, 아시아에서 최고로 길다. 대하소설의 작업은 그만큼 긴 강을 항해하는 일과 같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프로작가들도 함부로 대하소설에 도전하지 못한다. 성실함과 지구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글쓰기를 소설가의 대하소설 쓰기에 비유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한 권짜리 대 열 권짜리. 그렇지만 분량이 아닌 글쓴이의 기술로 비교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아마추어가 온몸으로 한 장을 써나가는 것이 프로의 한 권 쓰는 것과 비슷한 공력이 아닐까. 이 무의미한 비유는 그만큼 독하게 맘먹고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즐기는 사람은 얼굴에 나타난다. 그러니 싫은 걸 억지로 하지 말란 얘기다.
 즐기는 사람은 얼굴에 나타난다. 그러니 싫은 걸 억지로 하지 말란 얘기다.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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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한두 꼭지 아니면 서너 꼭지의 글을 쓰는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쉽게 자서전을 쓴다고 해보자. 흔한 말로 누구나 자신의 삶을 소설로 쓰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만큼 쓸 말이 많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자서전 쓰기는 하루 이틀에 끝날 작업이 아니다. 글을 늘 쓰는 프로작가라 해도 적어도 두세 달은 족히 걸린다.

하물며 글쓰기 초보자인 우리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6개월은 걸린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 아닐까. 글쓰기가 아직 낯설기도 하거니와 기술도 생각보다 서툴기 때문에 이보다 더 걸린다고 하는 게 맞을 듯싶기도 하다.

이후 초보자가 어떻게 명문을 구사하며 자유자재로 글을 쓰게 되는지 그 진화과정은 면허를 막 딴 초보운전자가 최고 드라이버가 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1단 기어를 넣고 조심조심 서행하고, 조금 익숙해지면 백미러를 통해 좌우 정도는 살펴가며 2~3단 기어로 달릴 수 있게 되고, 더 익숙해지면 백미러는 기본이고 룸미러까지 보며 전후좌우를 확인하면서 5단 기어를 넣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최고 속도로 달린다.

그런데 장기전인 글쓰기는 성실함과 지구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끝까지 완주하기가 힘들다. 몸에 습관화시키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중의 하나가 되어야 끝까지 써낼 수 있다.

하루 중 특별한 시간을 정해서 반드시 쓴다는 원칙을 세워라.

나는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에 주로 글을 쓴다. 고요할 뿐만 아니라 전화나 일상적 일들이 일어나기 전이어서 방해하는 일들이 전혀 없어 몰입하기에 최상이다. 출근이나 일 때문에 새벽이나 일과시간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기 쓰듯 쓰는 것도 좋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하루에 쓸 일정량을 정해놓을 것인가 아니면 양을 상관하지 않고 일정 시간 동안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많은 사람이 일정량을 정해놓고 작업하려고 하는데 프로작가들도 사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정량을 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전업 작가는 글 쓰는 일이 직업이기 때문에 이런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글 쓰는 일만 하는 경우라면 감당할 수 있는 하루 목표량을 정해놓고 실천하면 된다. 그런데 글쓰기 초보자인 우리는 프로작가처럼 할 수 없다. 분량 채우는 데에 목적을 두면 일상의 일정에 영향을 미친다. 정한 분량을 채우려면 대부분이 예정한 시간을 훌쩍 넘길 것이고, 결국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다 삶의 질을 좋게 하려고 하는 일인데 스트레스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양보다는 시간을 정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단 한 줄을 쓰던 한 장을 쓰던, 아니면 아무것도 쓰지 못하던 일정 시간 동안 반드시 글쓰기와 씨름하도록 한다.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습관적으로 글을 써나가면 자신의 글쓰기 속도가 감지될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한 줄 쓰기가 버겁고, 이틀 사흘, 아니 한 달이 지나도 늘 제자리걸음이어서 답답할 것이다. 당연하다. 글쓰기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는다면 직업을 작가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대부분 조급해서다.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 글쓰기를 반드시 끝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가. 아니다. 시쳇말로 내가 끝내고 싶을 때 끝내면 된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즐겨라. <논어> '옹야편'에 보면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즐기는 것은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매일 새롭다. 지루할 틈이 없다.

즐기는 사람은 얼굴에 나타난다. 그러니 싫은 걸 억지로 하지 말란 얘기다. 다만 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약간 소극적으로라도 시작하고, 시작하고 보니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싶으면 애당초 그만두는 것이 낫다. 싫은 걸 억지로 하려고 하면 힐링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러나 소극적이지만 조금씩 써나가는 것이 재미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 이틀 반복되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한 권의 책을 자신에게 선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태그:#글쓰기, #규칙적으로 써라, #매일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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