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히딩크 감독 기자회견 스페인과의 한일 월드컵 8강 결전을 하루 앞둔 지난 2002년 6월 21일 오후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구장적응훈련을 마친 히딩크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월드컵 축구 히딩크 감독 기자회견 스페인과의 한일 월드컵 8강 결전을 하루 앞둔 지난 2002년 6월 21일 오후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구장적응훈련을 마친 히딩크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자타공인 '한국축구의 영웅'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부터 어느덧 15년이 흘렀지만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한국축구의 최고 황금기를 선물한 명장으로부터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축구의 월드컵 본선이 확정되고 난 후 난데없이 쏟아진 '히딩크 복귀설'에 수많은 팬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도, 여전히 한국에서 히딩크 감독의 녹슬지 않은 인기를 증명한 장면이다.

2002년의 영향으로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에서 존경받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신격화'된 경향도 있다. 히딩크 감독이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지도자'였으며 한국축구가 거둔 놀라운 성공도 온전히 히딩크 개인의 능력 덕분이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야 당연히 히딩크 신드롬이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지만, 심지어 15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이러한 환상은 어느 정도 남아있다. 최근 히딩크 복귀설 당시의 광풍에서 보듯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히딩크만 데려오면' 한국축구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척척 해결해줄 구세주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대표적이다.

물론 히딩크 감독의 능력과 업적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특정인에 대한 과도하고 맹목적인 '영웅주의' 판타지가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합리적인 비판의 여지마저도 차단하여 오히려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히딩크 감독 개인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한국축구의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접근방식이다.

당연하게도 히딩크 감독은 결코 완전무결한 인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름의 흠결과 공과가 엇갈리는 인물이며 이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4강 신화라는 눈부신 태양이 그 과정에서 있었던 작은 그늘을 모두 덮었을 뿐이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축구를 향한 추억과 애정은 물론 진심이겠지만, 그와 별개로 히딩크 감독은 커리어 내내 개인의 야망과 현실적 이해득실을 주도면밀하게 계산하여 움직이는 냉철한 승부사였다. 한국 팬들의 환상 속에 남아있는 히딩크와, 현실 속의 히딩크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히딩크 감독에 관한 평가, 여전히 2002년에 머물러 있진 않나

많은 국내 팬들에게 히딩크 감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2002년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을 떠난 이후에는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거의 어느 팀의 지휘봉을 잡고 어느 정도의 결과를 냈다는 단편적인 정보 위주로만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5년이 넘는 지도자 경력 동안 히딩크 감독은 화려했던 순간만큼이나 많은 부침과 굴곡과 함께 겪었다. 우리가 히딩크 감독에 대하여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대표팀을 맡았던 1년 반의 인연보다 훨씬 길었던 그의 지도자 인생 전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히딩크 감독의 전성기는 1980~1990년대 PSV 아인트호벤과 네덜란드 대표팀 등을 이끌었던 1기와, 2000년대 한국대표팀을 맡은 이후의 2기로 나뉜다. 히딩크 감독은 자국 명문인 아인트호벤을 이끌고 1988년 트레블을 달성하며 세계적인 명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1998년에는 자국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을 5-0으로 대파하며 한국축구와 첫 인연을 맺었고 팀을 4강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 등의 사령탑을 맡았지만 모두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조기에 경질되고 한동안 하향세를 겪었다. 히딩크가 한국축구 대표팀에 부임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에 유럽에서는 사실상 '한물간 감독' 취급을 받으며 주가가 많이 내려간 덕분이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에게도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 감독직은 비록 위험부담은 있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당시 한국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에게 역사상 유례없는 '제왕적 권력'을 보장하며 히딩크호의 성공을 위한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히딩크 감독은 그 기대에 부응하면서 본인도 감독 인생의 재기는 물론,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는 전환점이 된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 감독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으로 다시 한번 부임하며 4년간 팀을 3번이나 정상에 올려놓았고 2005년에는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성과도 올렸다. 2006년에는 호주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32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독일월드컵 16강을 이뤄냈으며, 2008년에는 러시아 대표팀을 맡아 유로 2008 본선 4강이라는 또 한 번의 쾌거를 일궈내며 '히딩크 매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9년에는 러시아대표팀을 겸직하면서 잉글랜드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아 FA컵 우승을 견인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면서 히딩크 감독의 신화는 서서히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러시아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했고, 이후 터키와 네덜란드 대표팀, 러시아 안지 마하치칼라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모두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2016년 첼시에 임시 감독으로 두 번째 지휘봉을 잡았으나 2009년 만큼의 성공을 재현하지 못하고 물러난 것을 끝으로는 1년째 야인으로 머물고 있다. 사실상 최근 7~8년간은 지도자로서 별다른 성과를 낸 기록이 없다. 자고 일어나면 흐름이 바뀐다는 현대축구에서 강산이 몇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다.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는 시기에 히딩크 감독에 대한 현지의 전반적인 평가는 어떠했을까. 러시아와 터키 대표팀 시절에는 '능력은 있지만 이기적이고 불성실하다'는 비판이 꽤 많았다. 사실 이런 지적은 한국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종종 거론되었던 문제인데, 당시 히딩크 감독은 잦은 휴가나, 대표팀 전지훈련에 여자친구를 동행시키는 등 상식에 어긋나는 처신으로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러시아 대표팀 시절에도 첼시 감독직을 겸임하는 문제로 대표팀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으며, 남아공월드컵 본선진출을 걸린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 기강과 관리가 엉망이었다는 논란이 불거지며 자국리그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터키 대표팀 시절에도 잦은 외유와 첼시행 루머 등이 계속되면서 자꾸 한눈을 판다는 이유로 터키 축구협회로부터 "여기가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살벌한 경고를 받은 일도 있었다. 터키는 유로 2012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크로아티아에 졸전 끝에 완패하면서 히딩크도 불명예 사임했다. 러시아 안지 감독 시절에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파격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리그나 유럽대항전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고, 몇 차례나 거취 문제를 두고 입장을 번복하다가 결국 사퇴하여 좋지 못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네덜란드 대표팀 2기 시절에는 전임 루이스 판할 감독이 브라질월드컵 3위에 올려놓은 팀을 물려받고도 불과 1년만에 유로 2016 예선탈락의 위기로 몰아넣은 끝에 낙마했다. 후임인 다니 블린트가 지휘봉을 물려받았지만 네덜란드는 끝내 유로 2016 본선진출에 실패하며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네덜란드 축구계와 언론의 반응은 실질적으로 히딩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하는 분위기였다. 네덜란드 축구 자체의 전반적인 하락세도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 역시 확실한 색깔 없는 경기력과 약팀에게도 고전하는 등 지리멸렬한 경기력으로 현대축구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한물간 지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 '히딩크 판타지' 아니라 그가 남긴 '유산' 계승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유럽 빅리그의 몇몇 팀의 감독직이 공석이 될 때마다 종종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전성기에 비하여 주가는 확연히 떨어진 모습이다. 히딩크 감독이 과거에 성공을 거뒀던 한국이나 호주 대표팀 감독 후보로 다시 거론되고, 본인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듯한 모호한 태도를 보였던 데는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지휘봉을 처음 잡았던 2001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히딩크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명예회복을 갈망하고 있으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팀을 맡는 것만큼 좋은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의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 기회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에 기여하고 싶다던 선의를 굳이 삐딱하게 볼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막연한 한국축구에 대한 사명감이나 희생정신의 발로 같은 순진한 발상으로 이해하는 것도 착각에 불과하다. 대가 없는 희생은 없다. '지금의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를 위하여 뭘 해줄 수 있었는가'와 '한국 감독직으로 인하여 히딩크 감독이 뭘 얻을 수 있었는지'를 모두 냉철하게 판단해야 최근 히딩크의 모호한 행보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대표팀 감독직이 멀어진 지금, 히딩크 감독은 이번엔 호주 대표팀 감독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돌연 사임하며 호주는 현재 사령탑이 공석이다. 여론조사에서도 히딩크 감독이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에서도 히딩크 감독의 국민적 인기는 여전히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히딩크 감독이 다시 호주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게 된다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한국은 히딩크 대신 신태용 감독을 선택했다. 물론 호주와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히딩크라는 묘한 연결고리로 얽힌 두 팀이 러시아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게 될지 간접비교만으로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한국과 호주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히딩크가 설사 호주의 지휘봉을 잡는다고 아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히딩크 감독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한국축구의 레전드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다만 '히딩크 매직'이 아직도 유효한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있다면 차라리 히딩크 감독의 호주행을 응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지금의 한국축구에 필요한 것은, 아직도 히딩크의 판타지에 연연하는 것보다 그가 한국축구에 남긴 유산과 교훈을 더 발전적으로 계승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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