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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근거가 나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과세 시효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자료다. 이미 20여년전 대법원은 이와 유사한 내용에 대해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부정한 방법을 통해 세금을 내지 않을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과세를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99년 대법원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세금 납부를 피하는 것이 법에서 말하는 '부정행위'라는 판결을 내렸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 A씨는 청탁을 받으면서 활동비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받았고, 이를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하는 방식으로 자금세탁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여러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하는 등 적극적 은닉의도가 나타난 경우에는, 조세의 부과징수를 불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만든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피고인의 자금임을 알 수 없도록 여러 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은닉행위를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 본 원심의 조처는 정당하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차명계좌는 내 돈을 숨겨놓기 위해 만든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이다. 그렇다면 과세당국에서도 돈의 실제 주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세금을 매길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세금 탈루 목적으로 여러 개의 차명계좌에 돈을 숨긴 행위 자체가 조세포탈죄의 부정행위로 보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 판례를 이 회장 차명계좌의 경우에 적용해보면, 이 회장은 청탁을 받으며 얻은 돈이 아닌 상속을 통해 얻은 돈을 차명계좌에 숨긴 것으로, 방법상의 차이는 있지만, 세금 탈루 목적으로 부정행위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 판례, 이 회장 사례에 정확히 부합... 90% 과세 가능"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종합감사에서 삼성 차명계좌와 관련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종합감사에서 삼성 차명계좌와 관련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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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판례에 대해 조세전문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회계사)은 "여러 개의 차명계좌에 돈을 분산 입금하는 행위는 적극적인 (재산) 은닉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부정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내용의 대법원 판례는 정확히 이 회장 사례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이를 적용하면 이자•배당소득의 90%를 과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우선 (이 회장이) 본인의 재산을 은닉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권 변호사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해 차명으로 (돈을) 분산시킨 자체도 재산을 은닉하려는 부정행위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지난 2008년 조준웅 삼성 특별검사팀에서 찾아낸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무려 1199개(4조5373억 원)였다. 특검이 알아내기 전까진 과세당국도 이 돈이 이 회장의 것이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회장이 여러 개의 차명계좌에 돈을 숨겨뒀고, 이런 행위가 명확히 조세포탈 부정행위라는 정부의 판단이 나오면 어떤 처벌이 떨어질까. 이 회장은 그 동안 차명계좌로 벌어들인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의 9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통상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기간은 5년인데, 사기나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 그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다. 삼성 특검팀에서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밝혀낸 시점이 2008년이므로 징수 시효를 10년으로 적용하면 내년까지 과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차명계좌'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었다. 금융위원회는 실존 인물의 통장이라면 차명계좌로 볼 수 없다고 했고, 일부에선 실존 인물이라도 타인 명의의 통장이라면 차명계좌라고 맞섰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 때 정무위원회 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결국 금융위는 꼬리를 내렸다. 지난달 30일 국감에서 특검 등이 차명계좌라고 인정한 것은 명확히 차명계좌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동의한다"고 한 것이다. 또 이런 차명계좌에 붙은 이자소득 등에는 세율 90%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금융위는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세금징수 시효 문제 대법원 판례 파악여부 묻자, 국세청은 묵묵부답

하지만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에도 금융위는 과세당국의 유권해석 요청만 기다리며 시간을 끌어왔다. 결국 지난 16일에서야 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이 회장 차명계좌를 차등과세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을 국세청에 전달했다. 보통의 계좌에는 예금 금액에 따라 15.4~38%의 이자소득세를 부과하는데, 이와 달리 실명에 의하지 않고 거래한 금융자산에는 90%의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선 금융당국이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해 차등과세 대상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이미 시효가 지나 세금 징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세금징수 시효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 알지 못했을 뿐, 이미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대법원 판례에 있었다.

최종 판단은 국세청이 내리게 된다. 이 회장이 사기나 부정행위로 세금 납부를 피한 것으로 보고, 세금징수 시효를 10년으로 적용할지를 국세청이 결정하게 된다는 얘기다. 국세청이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파악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국세청 원천세과 관계자는 "현재 이 회장 차명계좌와 관련한 진행상황은 알려줄 수 없다"며 "판례와 관련한 것은 법령해석과에 문의하라"고 했다. 하지만 국세청 법령해석과 관계자는 "이 회장 차명계좌와 관련해선 원천세과에서 총괄하고 있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태그:#이건희, #차명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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