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앙코르 무대. 관객과 배우는 마주 보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작은 듯 또박또박 배우의 목소리 위에 관객들의 목소리를 입혔다. 그 노래가 흐르는 시간 동안 헤드윅과 우리는 '하나'였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가 붙은 모습이었다. 하나로 된 머리 안에 두 개의 얼굴, 그들은 한 번에 세상을 보고 읽고 말하며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하나 됨'을 질투한 신이 이들의 몸을 잘라 분리시켜버렸다. 그후 잘려진 반쪽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사랑, 반쪽을 찾아간다.

이 이야기가 관객과 배우가 함께 부른 뮤지컬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라는 곡 가사이며 <헤드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주인공 헤드윅은 동독 출신의 트랜스젠더 록 가수다. 그는 본인의 반쪽이라 생각했던 유명 록스타 '토미'에게 버림 받은 후 그를 쫓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이야기는 토미의 야외 특설 콘서트장 옆 자그마한 공연장에서 헤드윅이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시작한다.

헤드윅, 당신은 누구세요?

 뮤지컬 <헤드윅>의 한 장면

<헤드윅>에서 배우 오만석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쇼노트


화려한 금발 헤어스타일에 굵은 웨이브. 한껏 치솟은 속눈썹과 펄을 얹어 반짝 반짝 빛나는 입술. 세련된 패션 센스까지 갖춘 헤드윅은 '꾸밀 줄 아는' 사람이다. 헤드윅 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가 '금발'과 '진한 메이크업'이라면 다음으로는 헤드윅의 성격일 것이다. 이츠학에게 소리를 꽥꽥 지르고 앵그리인치 밴드를 마음대로 다루는 모습. 여기에 항상 손에서 놓지 않는 위스키가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헤드윅은 모기 한 마리 죽이지 못하고, 관객의 호응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한없이 마음 여린 사람이다.

헤드윅의 반쪽

어린 한셀(헤드윅의 본명)이 엄마에게 'The Origin Of Love' 이야기를 들은 밤, 날을 지새우면서 반쪽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 동쪽에서 반쪽을 찾는데 실패한 한셀은 장벽 밖 세상을 꿈꿨고, 그 곳으로 데려다 줄 큰 권력의 '슈가대디' 루터를 만났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한셀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자 성전환 수술을 권유했고 결과는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한셀의 살덩이는 잘못 잘려져 앵그리인치를 남겼다. 성 전환 수술이 잘못돼 괴로워하는 모습은 극 중 'Angry Inch' 노래에서 나온다. 본인의 몸에 벌어지는 일들에 절규하며 고통스러워한 헤드윅. 하지만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낫다"며 웃었다.

헤드윅은 루터에게 끝내 버림받았다. 그는 헤드윅의 반쪽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토미가 헤드윅의 반쪽일까? 헤드윅은 노래에 자신없어 하는 토미에게 "걱정 마 내가 저 아래 아무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대신 불러줄게"라고 말한 적이 있다. 헤드윅은 반쪽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하고자 했지만 반쪽이라 확신했던 토미에게도 버려지고 만 것이다.

작품을 채운 노래들

 뮤지컬 <헤드윅>의 한 장면.

<헤드윅>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 정문성. ⓒ 쇼노트


헤드윅이 만든 노래들을 빼앗아 발표한 토미가 세계적인 록스타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헤드윅은 천재적인 작곡가이자 록 가수다. '가장 세련된 록 뮤지컬'이라는 수식어답게 공연은 파워풀한 록 음악들이 주를 이룬다.

그 중 헤드윅의 에너지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은 'Tear Me Down'이다. 도입 곡으로, 당차고 살짝 제멋대로인 헤드윅의 성격을 초반부에 잘 설정했다. 또한 갈라진 베를린 장벽 사이, 여자와 남자, 속박과 자유라는 이념 속에 등장하는 헤드윅을 잘 설명한다. 온 몸을 휘황찬란한 망토로 감싸고 무대 뒤에서 등장해 관객들 사이로 나오는 헤드윅. 윙크를 날리며 잔망을 떨기도 하고 관객의 무릎에 털썩 앉았다 가기도 한다. 무대로 올라간 헤드윅의 망토가 펼쳐지며 강렬한 비트가 흘러나올 때면 그 장면만 100만 번 보고 싶을 정도다.

남들에게 사랑을 주기만 하고 본인은 친구 하나도 없는 헤드윅의 처지를 가슴 아프게 표현한 곡은 'Wig In A Box'다. 루터에게 버림받은 그 날, 야속하게도 TV에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 화면이 나온다. 전화 할 애인도 엄마도 친구도 없는 헤드윅은 밤이 될 때까지 울다가 긴 밤을 보내기 위해 또 다시 '우는 것 보다 웃는 것'을 택한다. 곱슬머리, 단발머리, 핀컬 파마, 숏 컷 등 다양한 가발을 쓰고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채 춤춘다. 'Wig In A Box'는 도입의 고요한 아픔에서 시작해 후반부 미친 듯이 신나는 음악으로 끝난다. 혹시 헤드윅 객석에서 이 장면에서 울고 있는 관객을 발견한다면 그는 헤드윅의 아픔을 공감한 친구일 것이다.

헤드윅에는 수많은 명곡들이 나온다. 저절로 몸이 들썩이는 멜로디의 'Sugar Daddy', 외롭고 방황하는 영혼을 이끌어주는 'Wicked Little Town', 헤드윅이 본인의 정체성에 괴로워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강렬한 록 'Exquisite Corpse', 헤드윅과 이츠학이 본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Midnight Radio'. 헤드윅의 노래들은 솔직한 가사와 강렬한 음악 덕에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뮤지컬 <헤드윅>은 한국에서 2005년 초연 무대를 선보인 후 십수 년이 지나도록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신이 만든 신비한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번 시즌 남아있는 지방 공연을 추천한다. 어린 한셀처럼 내 반쪽을 생각하며 며칠 밤을 지새우게 될 것이다. 당신은 헤드윅보다는 덜 아프게 반쪽을 찾았으면 한다. 반쪽을 찾아 신들도 두려워했던 '하나 됨'을 완성하길. 뮤지컬 <헤드윅>의 지방 공연은 이달 23일 안동 공연을 시작으로 부산 등에서 연말까지 열릴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채효원 시민기자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글쓰기 콘텐츠 동아리 Critics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Critics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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