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이민 온 프랭크는 뉴욕에서 이발사로 일을 했다. 프랭크는 러시아-프랑스계 여인 재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들은 결혼을 하여 뉴욕의 빈민가 헬스 키친에 정착했다. 그리고 프랭크와 재키는 1946년 7월 6일 첫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가난했던 부부는 산부인과가 아닌 공공의료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출산과정에서 의사는 겸자로 아이를 꺼내다가 실수로 아기의 왼쪽 눈 아래 부분에 상처를 낸다. 아이는 그 의사의 실수로 안면마비장애을 안고 만다. 안면장애로 아이는 왼쪽 뺨과 입술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다.

훗날 이 아이는 '슬라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슬라이는 어눌한 말투와 루니툰에 나오는 고양이와 이름까지 같아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고 학교에서 왕따로 지내게 되었다. 게다가 9살 때는 부모님이 이혼까지 했다

그런 슬라이는 학창시절 폭력적인 행동으로 숱하게 사고를 쳤고 슬라이는 13살이 되기도 전에 무려 14번이나 퇴학을 당했다. 심지어 15살 땐 동급생이 뽑은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할 사람' 투표에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슬라이는 학창시절 친구도 없이 외롭게 공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영화 <록키> 스틸컷

영화 <록키> 스틸컷 ⓒ (주)영화사 오원


자꾸만 엇나가던 슬라이에겐 어머니가 있었다. 슬라이는 10대 시절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필라델피아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여성체육관을 운영하던 어머니 재키는 슬라이에게 꾸준히 운동을 하게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도 어려워 보이던 슬라이는 어머니의 교육열 덕택에 체육특기생으로 스위스의 명문 로잔 아메리칸 스쿨을 졸업했다. 로잔에 머물던 당시 슬라이는 배우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고 마이애미 대학에서 문학사를 전공하였다

꿈에 도전한 슬라이는 1969년 < The Square Root >란 영화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첫 주연작은 소프트 코어 포르노영화 < The Party at Kitty and Stud's(1970년) >였다. 당시 슬라이는 이틀치 출연분 200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슬라이는 줄기차게 오디션을 봤지만 안면신경장애와 어눌한 말투를 지닌 그에게 돌아오는 배역은 별로 없었다. 단역이나 조연배우에 머물렀던 그는 당연히 생활고에 시달렸고, 나이트클럽 문지기, 영화관 안내인,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까지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생활고에 지쳐 모든것을 포기하려 할 때 즈음, 슬라이는 시나리오를 독학하여 수백 편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실제 TV시리즈에 각본을 쓰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75년 3월 우연히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도전자 척 웨프너의 경기를 보게 된다. 당시 척 웨프너는 세계 챔피언인 알리를 상대로 3라운드로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척 웨프너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15라운드까지 버텼으며, 챔피언을 한 차례 KO시키기도 했었다. 이를 지켜본 슬라이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웨프너의 투지에 영감을 얻어 3일 만에 한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28일 만에 완성된 영화, 바로 실베스터 스탤론의 데뷔작

각본을 쓰면서 꾸준히 배우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슬라이는 배우 오디션에 탈락하여 돌아서던 중에 자신은 배우기도 하지만 각본가이기도 하다며 그 복싱영화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 그 각본에 반한 영화제작자 어윈 윙클러와 로버트 샤토프가 슬라이에게 당시로선 전례가 없는 36만 달러에 각본을 사려고 제안했다.

당시 슬라이의 아내는 임신중이었고 그의 통장에는 겨우 106달러 밖에 없는데 그가 살던 집의 월세가 70달러였다. 이런 생활고 속에서도 슬라이는 자신을 출연시켜 주지 않으면 팔수 없다며 버텼다. 그는 배우에 대한 자신의 꿈을 거금 36만 달러에도 팔지 않은 것이다.

결국 어윈과 로버트는 슬라이에게 주연배우를 허락했지만 각본 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어윈과 로버트는 2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하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란 영화제작사을 찾아갔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또한 각본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슬라이에게 주연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로버트 레드포드나 라이언 오닐같은 배우를 원했다. 어원과 로버트는 이 각본을 손에 넣으려면 슬라이를 출연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가까스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설득했지만 예산은 반토막이 나서 100만 달러가 되고 말았다.

존 G. 아빌드센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고 영화는 10만 달러의 예산을 초과해 총 제작비 110만 달러로 불과 28일 만에 만들어졌다. 영화는 1976년 11월에 개봉했는데 무명복서가 뜻밖에 챔피언과의 대전기회를 잡고 15라운드까지 대등하게 싸운다는 스토리는 미국의 '아메리카 드림'을 상징하며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게 스포츠영화라는 틀안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와 러브스토리는 평단과 관객들로 부터 호평을 받았고 북미에서만 제작비의 100배가 넘는 1억 1723만 달러의 극장수입을 기록하며 1976년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영화 제작기간동안 실비만 지급받았던 슬라이는 후에 흥행수익의 10%를 받아 부와 명성을 거머쥐며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다.

그렇게 배우로선 치명적인 안명신경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졌었고, 생활고 속에서도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단역배우.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 매김한 슬라이의 진짜 이름은 바로 '실베스터 스텔론'이다. 그리고 그가 각본, 주연을 맡은 작품의 이름은 그 유명한 복싱영화의 클래식 <록키>이다.

존 G. 아빌드센의 흡입력있는 연출과 실버스터 스탤론의 혼신의 연기가 잘 어울러진 <록키>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에는 가슴 뛰게하는 OST가 포함되어있다. 빌 콘티가 작곡한 'Gonna Fly Now'와 'Going The Distance'가 큰 사랑을 받았었는데, 특히 'Gonna Fly Now'는 역동적인 비트로 영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영화의 촬영감독은 스테디 캠을 발명한 가렛 브라운인데 <록키>는 최초로 '스테디 캠'이 쓰인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흥행기록은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이 작품은 다음해 미국 아카데미에서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아카데미 작품상과 편집상 그리고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주역인 슬라이 또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 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인생작 <록키>, 국내서 40년 만에 재개봉

<록키>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삶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1946년생의 이탈리아계 무명복서'록키 발보아'가 결국에 꿈을 이뤄낸다는 스토리는 직업적인 차이만 있을 뿐 배우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자신의 열망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난 보잘 것 없는 인간이야. 하지만 상관없어. 시합에서 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아폴로가 내 머리를 박살내도 별로 상관이 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끝까지 가진 못했거든. 내가 그때까지 버티면,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내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거야."

영화 속 록키의 이 대사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영화 <록키> 스틸컷

영화 <록키> 스틸컷 ⓒ (주)영화사 오원


실제 영화 속에는 실버스터 스탤론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록키의 연인 에드리안은 자신의 첫 아내 사샤가 모델이며, 록키가 키우던 개는 한때 생활고로 팔아버리려고 했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반려견이다.

극중에 록키의 어린시절 사진 또한 모두 실베스터 샡론의 어릴적 사진들이다. 극중에 록키가 계란 여섯 개를 깨뜨려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당시 실베스터 스탤론은 아침마다 계란 여섯 개를 깨서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가족도 등장한다. 바로 아버지와 동생이 엑스트라로 출연한 것이다. <록키>라는 영화 자체가 실베스터 스탤론인 셈이다.

누군가 나에게 '실베스터 스탤론의 인생영화를 한편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그의 인생냄새가 자욱하게 묻어나는 <록키>를 추천할 것이다.

국내엔 1977년 6월에 개봉해 당시 서울관객 35만 명을 동원했던 그 <록키>가 오는 29일 무려 40년 만에 재개봉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록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