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 판씨네마(주)


영화관에 앉아 있었는데 마치 미술관에 다녀온 느낌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림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랄까. 지난 11월 9일 개봉한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에 대한 소감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는 <러빙 빈센트>는 제작 기간만 10년, 4천 명이 넘는 화가들이 지원을 했고, 그 중 107명이 6만2450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영화라기보다 실로 거대한 미술 프로젝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제20회 상하이국제영화제 금잔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는 등 <러빙 빈센트>는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았으며, "2017년 IMDB 선정 반드시 봐야만 하는 영화"에 뽑히기도 했다.

고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별이 빛나는 밤(Starry starry night)>의 별빛들이 뱅글뱅글 회오리치며 시작하여, 돈 맥클린(Don Mclean) 원곡의 'Starry starry night'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130여 점의 고흐 작품들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다.

죽음에서 삶으로

영화는 빈센트 사후 1년 뒤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뒤늦게라도 전해주려는 우편배달부 조셉 룰렝의 아들 아르망 룰렝의 여정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지만 어느새 아르망은 빈센트의 편지를 손에 들고 그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추적하게 된다.

통설은 빈센트가 권총 자살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빈센트가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자살할 뚜렷한 동기가 없었다는 증언들이 나오면서 아르망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빈센트를 기억하고 평가하는 사람들. 빈센트는 정말 어떻게 죽었을까. 자살일까, 타살일까? 빈센트의 죽음을 꼬치꼬치 캐고 다니는 아르망에게 빈센트의 주치의였던 가셰 박사의 딸 마르그리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 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마르그리트의 이 한 마디는 마치 '삶도 아직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빈센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삶에 대해 온전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죽음에만, 죽음의 방식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빈센트는 정말 불행했을까?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영화 <러빙 빈센트>의 한 장면 ⓒ 판씨네마(주)


흔히들 빈센트를 일컬어 고독한 천재라고 표현한다. 스물여덟 나이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빈센트는 서른여덟 나이로 죽을 때까지 약 10년 동안 2천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살아생전 팔린 그림은 그 중에서 딱 한 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 빈센트는 고통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빈센트의 삶이 정말 고통스럽기만 했을까? 빈센트가 죽기 전 지냈던 오베르의 라부여관집 딸 아들린은 다르게 말한다.

"빈센트는 어떤 날씨에도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고 혼자 있는 걸 더 즐겼어요. 길고 긴 편지를 썼고, 항상 두꺼운 책을 읽었죠. 그는 행복해했어요."

만약 빈센트의 삶이 처참함 속에 던져진 고통스런 삶이었다면 그의 그림이 그토록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생동감과 불멸의 생명감이 전해지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나는 무엇일까. 아무도 아니다. 별 볼일 없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절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없는 바닥 중의 바닥. 그럼에도 이 모든 얘기가 진실이라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이 보잘 것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 바닥 중의 바닥이라고 고백하지만, 가슴에 희망을 품고 강한 의지를 가졌던 그가 불행했을까? 창작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예술혼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이 정말 불행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을까?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들 말한다. 아르망의 여정은 빈센트의 죽음을 좇았지만 정작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고,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살아 있는 빈센트를 우리는 만나고 있다.

거리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이 감성을 한창 자극하는 계절이다. 누렇게 익은 밀밭 위를 힘차게 날아오르는 까마귀들이 있고 눈에 익숙한 노란 카페 테라스의 별이 반짝 반짝 빛나는 밤풍경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다면 <러빙 빈센트>는 그야말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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