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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남자1호, 남자2호가 산다.

남자1호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뭔가 해결할 과제가 생기면 최대한 빨리 끝내고 잊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판단이 빠르고 결단력이 있다. 빠른 결정으로 추진력과 실행력이 장점인 반면, 뭐든 빨리 처리하기 때문에 꼼꼼하지 못하고 마무리가 완벽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매사에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하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기특하게도 돈을 벌어오고 집안일을 자주 도와준다. 요즘은 일을 하며 공부도 병행하느라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담배와 라면을 즐겨먹고 과자를 좋아한다. 몸에 안 좋은 것들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2호는 성격이 느긋하다. 남자1호에 비해 친절하고 상대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며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있다. 좀 덜렁대는 습관이 있어 물건을 종종 잃어버린다. 챙겨야 할 물건을 제때 못 챙겨서 몸이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남자1호와는 달리 조곤조곤 설득하면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직업은 학생이고 밥 먹고 돌아서면서 다시 냉장고를 뒤지는 신기함을 보여주며 소소한 재미를 준다. 어수선한 방은 기본이고 약속시간을 항상 상기시켜 줘야 하며, A에서 Z까지 챙겨줘야 하는 경향이 있다. 잔소리를 자동 플레이 하게 만들지만 뭔가를 계속 해주고 싶게 한다.

처음 인터뷰 대상으로 남자1호를 선택했으나 글이 재미없어질 우려가 있고 거절의 가능성이 농후했다.

"돈 주는 거야?"

가족끼리 지인할인이 된다 해도 인터뷰를 위해 돈을 지불할 생각은 없다. 거절이다. 차선으로 남자2호에게 조심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했고 생각보다 쉽게 승낙을 받았다.

아들을 인터뷰하다
 아들을 인터뷰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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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지를 뽑을 차례다. 익히 알고 있는 대상을 인터뷰 하려니 고민이다. 첫 인터뷰. 질문의 내용에 따라 글의 편차가 클 것 같아 부담이 많이 되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설렘과 시행착오를 동시에 갖고 있다. 어색함과 쑥스러움을 뒤로하고 시작하기로 한다.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의 만남이다.

약간 늘어진 느낌의 편안한 흰색 면티를 입고, 역시 편안해 보이는 추리닝을 입고 식탁 앞에 털썩 마주 앉는다. 안경을 착용했고, 크지 않은 얼굴과 약간 통통하지만 둔해 보이지 않는 체형, 귀여운 남학생이다. 앳된 얼굴이지만 변성기를 맞은 목소리는 검은색 수염이 자라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이다.

"저 공부 잘 못해요"... 첫 질문부터 당황 

수원에 있는 A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허군. 가족은 부모님과 셋이고, 아파트에 거주한다. 아침 8시 기상을 시작으로, 학교 정규수업을 마치고 5시쯤 귀가해서 씻고 먹을걸 좀 챙겨먹고 학원에 간다. 학원에서 일과를 마치고 저녁 10:30분쯤 집에 도착한다. 집에 와서 자기 전까지가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란다.

취미는 핸드폰 게임이다. 최근에 '클래시오브클랜' 이라고 TV광고까지 하는 게임에 빠졌다고 한다. 취침 전까지 두어 시간 게임을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본다. 요즘 일본 애니에 빠져서 하나씩 하나씩 섭렵 중이다. 일본 애니에 대해 추천을 요구했지만 '비밀'이라고 한다. '비밀'이라는 게 이상한 애니를 보는 것 같지는 않고, 길게 말하기 귀찮은 투다.

Q :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는데, 자신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A : 잘못 들으셨습니다. 공부 잘 못해요. 성적 별로 안 높아요. (질문자 당황) 공부 별로 안 합니다. 게임과 일본 애니를 좋아하고 즐겨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게임과 일본애니를 즐기지만 수학은 특기라고 답할 정도로 자신감을 비쳤다.

"엄밀히 말하면, 수학을 좋아한다기 보다 재미있는 문제 푸는걸 좋아합니다." 

어떤 문제가 재미있냐는 질문에 부스럭 부스럭 초콜릿을 까먹으며, "승부욕을 불러 일으키고, 풀고 나면 성취가 느껴지는 문제를 좋아합니다"라고 덧붙인다. 과제 집착력이 있어 보였고 그 특성이 승부욕을 자극하는가 보다.

"문제를 이해만 하면 대부분 풀 수 있어요. 문제에 모르는 기호가 있으면 못 푸는 거지만 오래 생각하면 대부분 다 풀려요." 

진지한 대답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인 건 없지만 '농-생명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농생명공학은 생명공학의 한 부류인데 앞에 '농'자가 붙은 걸 보면 농사나 작물과 관련이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랑 함께 한 게임이 있었는데, '패밀리팜'이라고 사이버상에서 농사를 하는 게임이었어요. 그때부터 식물이나 농사에 관심이 생겼던 거 같습니다." 

온라인 말고 실제로도 식물을 키워본 적이 있는데, 그 중 기억나는 건 단풍나무다. 수목원에서 단풍나무 씨앗을 얻어와 화분에 심은 적이 있었는데 한 뼘 정도까지 자랐다. 꽤 더딘 시간이었지만 나무가 자란다는 게 신기했다. 아쉽지만 그 이후에 물을 잘 안 줘서 죽어버렸다.

"딱히 농부가 되고 싶은 건 아니고 농사도 아니에요. 식물유전자 분야, 생명공학이 정확한 표현이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본다면 농부를 생각하면 노랗고 초록색이고 황금빛 물결 이런 걸 생각할 수 있는데, 농생명공학자를 생각하면 새하얀 가운에 연구실에서 뭔가 새로운 걸 개발하는 그림이 그려져요. 엄밀히 말해 농사와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아요. 

식물이나 달팽이도 키워봤는데, 음... 식물보단 생명에 관심이 있는 거 같네요. 생명공학에도 수많은 분야가 있는데 예를 들면 우주선에 쓰이는 생명유지장치를 만드는 것도 생명공학 기술이 쓰입니다. 제가 배우고 싶은 건 식물 유전자변형 그런 쪽이죠. 폭이 넓어요. 아는 것도 많이 없고 하나하나 배워가야 하는 부분이라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농생명공학, 낯선 단어여서 이해하려고 한참을 시도하지만 워낙 관심 없는 분야라 막연하게 그림만 그린 정도로 마무리 했다. 학생 자신도 아직은 머릿속에서 되고 싶은 이미지가 계속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답변을 하면서 정리해 가는 느낌이었다. 다만, 큰 방향은 세운 것 같고, 시간을 들여 구체적으로 알아가면서 정해도 될 것 같다.

옛날과는 학교가 많이 바뀌었다. 방송매체나 신문 기사로 접하는 학교폭력, 왕따가 궁금했다. 학교라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는 1인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요즘 정부에서 활동을 많이 하더라고요. 캠페인도 벌이고, 선생님들도 TV에 나와서 자주 말씀도 하시는데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관심은 없는데 잘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우리 학교에도 왕따가 있기는 한데 그냥 무시하는 수준이에요. 욕도 잘 안하고. 친구가 많고 적고의 차이인 거 같아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수원이 깡촌이라 애들이 순박해요."

깡촌이란 표현이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심한 건 아닌 거 같아 마음이 놓이면서도 '자체필터'로 걸러진 표현인가 의구심도 들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이 주제에 대해 더는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좋아하는 유형의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친구들은 다들 노는데 형들 보면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확실하고 학자금 대출, 이런 어려운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게 신기하고 멋져 보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요. 아인슈타인은 천재죠. 말도 안 되는 천재라서 존경합니다." 

학자금대출? 중고생이 이런 고민을 하나? 처음 듣는 낯선 이야기였다.

반면에 싫어하는 스타일은

"나태해서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면서도 오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 10대에는 생각보다 많아요. 물론 40대에도 많을지 모르지만 없길 바라야죠." 

오히려 잘난 척 하는 사람은 싫어하지 않는단다. 자신감이 충만한 게 나쁘게 보이지 않는단다.

16년 인생, 가장 행복했던 기억 세 가지

16년을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언제인지 물었다.

"힘들었던 거는 별로 없어요. 어릴 때 만화책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아직 없었다'고 말하는 70대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어요. 물론 힘들었던 때가 있었겠죠. 그 당시엔 힘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다 쓸데 없는 걱정, 그런 게 많죠. 하찮게 느껴지는 거죠." 

게임과 애니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책이라고 한다. 인상 깊었던 문장을 들려줄 정도로 책과의 애정이 남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좋았던 기억을 물었다. "6살 때의 기억인데 졸려서 초저녁부터 잤더니 너무 배가 고파 새벽에 깼어요. 새벽4시에 엄마가 떠먹여주던 카레라이스가 정말 맛있었어요. 되게 좋은 기억으로 평생 갈 기억 중 하나인 거 같아요"라고 한다.

행복이란 다소 추상적인 질문에는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세 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아까 얘기한 새벽 4시에 카레 먹었던 일로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꼈고요. 또 한번은 여행을 갔는데 감기에 걸려서 저 혼자 숙소에 있었고 부모님은 마트에 가신 적이 있었어요. 침대에 누워서 노래를 듣고 있었고, 침대 옆 창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어요. 그때 참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마지막 세 번째는 최근에 학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이었어요.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는데 그때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어요. 제 자신이 열심히 사는 사람인 거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의 포부나 하고 싶은 걸 물었는데 무턱대고 '세계정복'이란다. 앞, 뒤 설명 없이 "그냥 세계정복이요" 한다. 3차 세계대전이냐 물었더니 범죄자는 아니란다. 뽑아놓은 질문 리스트는 끝이 보였고, 짧은 30여분의 인터뷰인데도 대답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인터뷰를 끝내야 할 시간인가보다. 마지막으로 지금 제일 하고 싶은걸 물었더니
"침대에 누워서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한다.

마음은 좀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벌써 밤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즐기도록 놔주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좀 아쉬웠다. 묻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는데, 아들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었다. 이성친구에 대해 물어볼 걸 제일 많이 후회됐다. 역시 인터뷰는 준비를 많이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인터뷰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태그:#인터뷰, #아들,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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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지만, 매번 바른생활의 삶.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 하고 싶은게 뭔가는 아직도 찾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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