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쏘 포스터

▲ 직쏘 포스터 ⓒ (주)코리아스크린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속편이 나온 영화는 무엇일까. 할리우드 공포물에서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 제임스 완의 <쏘우>는 이 분야에서 최고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이 유명한 시리즈는 이달 2일 여덟 번째 영화 <직쏘>를 내놓으며 반년 앞서 일곱 번째 속편이 나온 <분노의 질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 2004년 첫 편이 나온 지 13년 만의 일로, <분노의 질주> 첫 편이 2001년 가을 개봉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척 빠른 기록이다.

<쏘우>로 그해 가장 놀라운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제임스 완은 이후 <컨저링> <인시디어스> 시리즈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공포물의 대가로 자리잡았다. 그는 자신과 친분이 있거나 함께 영화를 만든 스태프들에게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거로도 유명한데 뛰어난 기획력과 폭넓은 인맥으로 감독뿐 아니라 제작·기획자로도 높은 명성을 쌓았다. 그는 할리우드 거대 제작사 워너 브러더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공포영화를 여럿 기획하는 한편, <분노의 질주> 일곱 번째 시리즈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직접 감독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인으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직쏘>는 제임스 완의 눈에 든 재능 있는 감독 스피어리그 형제의 작품이다. 2010년 일곱 번째 <쏘우> 시리즈 <쏘우 3D> 이후 7년 만에 제작되는 속편 연출을 누가 맡을지는 공포영화 팬에겐 커다란 관심거리였다. 그리고 <데이브레이커스> <타임 패러독스>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관심을 붙잡아 두는 데 재능을 보인 스피어리그 형제가 제임스 완에게 낙점됐다는 소식은 이 모든 관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2004년 이후 쉼 없이 달려온 시리즈가 무려 7년간의 공백을 갖게 된 건 영화가 마주한 난관의 탓이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캐릭터 직쏘(토빈 벨 분)가 사망한 뒤 시리즈를 이끌어갈 동력을 상실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을 찾지 못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영화는 등장인물의 상상 등의 수법으로 직쏘를 거듭 소환했으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야기는 난해해졌고 캐릭터는 설득력을 잃어 시리즈 본연의 매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죽은 직쏘가 산 자들을 희롱한다

직쏘 <직쏘>는 이번에도 시리즈의 상징인 직쏘인형을 등장시키며 죽은 직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 직쏘 <직쏘>는 이번에도 시리즈의 상징인 직쏘인형을 등장시키며 죽은 직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 (주)코리아스크린


일명 직쏘라 불리는 존 크레이머는 매 시리즈에서 일반인 희생자들을 납치해 밀실에 감금하고 일명 '직쏘 게임'을 강요해 살해하는 인물이다. 그는 불행한 개인사를 겪은 뒤 직쏘게임을 설계해 실행하는데 그 대상은 삶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나 삶 속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직쏘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선택을 강요하고 그 선택에 삶을 향한 절실함이 없거나 거짓이 섞여 있으면 자신이 제작한 기구를 통해 죽음을 맞도록 한다.

하지만 직쏘는 수사기관의 포위망이 좁혀오는 가운데 3편에서 끝내 사망한다. 본래 나이가 들고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후계자들마저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생긴 결과다. 이후 속편은 크레이머를 도운 적이 있는 호프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는 시리즈를 지탱할 만한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구나 반전과 짜임새 있는 설정, 기괴한 장치 등 시리즈를 상징해온 특징 역시 한계에 부닥쳐 시리즈의 수명이 다한 게 아니냐는 비난까지 터져 나왔다.

<직쏘>는 제작진이 7년의 장고 끝에 죽은 직쏘의 부활이란 카드를 다시금 꺼내 들어 만든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직쏘의 이름만 넣은 만큼 시작부터 과거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업고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찰은 이미 사망한 존 크레이머의 관까지 파헤치지만 그의 시체는 오간 데 없다. 영화 내내 죽은 직쏘가 산 자들을 희롱한다.

<쏘우> 아홉번째 시리즈를 볼 수 있을까?

직쏘 밀실에 피해자들을 감금한 채 위기상황을 제공한다는 설정은 기존 시리즈와 동일하다.

▲ 직쏘 밀실에 피해자들을 감금한 채 위기상황을 제공한다는 설정은 기존 시리즈와 동일하다. ⓒ (주)코리아스크린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기존의 한계를 다시 드러낸다. 과거 직쏘가 진행한 게임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시험과 장치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직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직쏘가 없는 밀실에서 긴장감을 자아낼 수 없으니 카메라는 밀실 밖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과거의 실수가 되풀이된다.

<직쏘>는 다시 한번 직쏘를 불러내 그가 이미 죽었음을 재확인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이미 알고 있던 사실, 먼저 쓰였던 설정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몇 편의 속편에서 그랬듯 영화는 이번에도 직쏘의 후계자를 지명하지만 관객의 동의까지는 끌어낼 수 없는 일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철저히 직쏘의 존재감에 의존해 진행되며 그가 정말 죽어버렸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에 모든 동력을 잃어버린다. 제임스 완이 직접 감독하지 않는 한 <쏘우>의 아홉 번째 시리즈는 나올 수 없을지 모른다.

<타임 패러독스>로 할리우드 거대 제작사의 눈길을 받은 스피어리그 형제는 제임스 완이란 튼튼한 줄을 붙잡는 데는 성공했으나 제 발로 우뚝 서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의미에서 <직쏘>는 실패작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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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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