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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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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노동행위 같은 중대한 범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할 정도로 잘못된 노동관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지난 노조선거 개입 사태의 모든 정황을 봤을 때,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윤 회장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묻자 주저 없이 그가 답했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힘이 있었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아래 국민은행 노조) 위원장.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두 달 전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기운이었다. 사측과 노조의 갈등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박 위원장은 "1차 (노조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사측이) 후보자들에게 점심을 사면서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잘못은) 잊고 은행의 발전을 위해 일해달라'고 말한 것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등을 봤을 때 (그렇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해임된 임원의 증언이 담긴 녹취 파일을 가지고 있다며 그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윤 회장은 노조위원장 당선이 무효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인사관리(HR)본부 임원에게 물었고, 노조가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하자 "하고 싶은 것을 그때 다 해치우자"고 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것이 직접적인 (선거 개입) 증거는 되지 못하더라도, 윤 회장이 얼마나 잘못된 노동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7월 국민은행 노조는 사측이 올해 초 진행된 노조위원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8월 국민은행은 HR본부장과 경영지원그룹 부행장 등을 해임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조는 이 사건에 윤 회장이 깊이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윤 회장은 국민은행장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부행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 국민은행 노조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월 노조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윤 회장 연임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사측이 이에 개입해 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꺼낸 것. 이어 노조는 윤 회장을 업무방해죄 및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지난 3일 KB금융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HR본부장 사무실의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관련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민은행 노조는 오는 20일 열리는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에 앞서 회장의 이사회 참여를 배제하는 안건과 사외이사 추천 안건을 제출했다. 더불어 노조는 주총에서 윤 회장 연임과 관련한 안건에 반대할 예정이다.

"소액주주 추천 사외이사 반대한 자문사...결론 정해놓고 보고서 쓴 듯"

- 경찰의 압수수색도 있었는데, 추가로 밝혀진 것이 있는지.
"지난 14일 HR본부장이 경찰에 출두해 피고발인으로 조사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저희는 HR본부장과 윤 회장을 고발했는데, 본부장만 조사한 것 같다. 사이버수사대의 수사 결과가 이번 주 정도에는 나온다는 얘길 들었다. 사측에서 (결과 발표를) 지연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정황도 있다. 경찰에서 조사하는 것은, 지난 설문조사 때 17개 기기에서 쏟아진 4200여 건의 연임 찬성표에 대한 것이다. (특정 직원들이) 인터넷 쿠키삭제 설정을 해놓고, 중복 투표한 것을 밝히려고 하는 것 같더라. 과거 통합진보당 사태 때 경찰이 비슷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노하우가 쌓여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에서 이번에 노조가 주주제안 안건으로 올린 하승수 변호사의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권고안을 냈다.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하 변호사에 대한 평가가 바뀐 것이 눈에 띈다.
"과거 ISS는 하 변호사를 현대증권 사외이사 선임에 찬성했었다. 하 이사가 지배구조 개선에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를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언론에 제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다. (ISS가 하 변호사 선임을) 반대하기로 답을 내놓고 논리를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희 자문 변호사가 ISS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데, 이번 보고서를 ISS가 신참 직원들에게 맡겼다고 하더라. 저희는 소액주주 운동을 계속 하려고 한다. (ISS와 노조가) 매우 확실한 갑을관계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들이지 못한다. 내년 3월 정기주총 때는 다른 인물을 사외이사로 추천할 예정인데 또 안 좋은 보고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ISS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주주총회 안건 분석과 관련해 전세계 6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기관투자자들과 이곳 회원으로 돼있는 기업들은 ISS가 낸 의견에 반대 표결을 하려면 그 사유를 별도로 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웬만한 기업들은 다 ISS에 따른다. 반대하기 쉽지 않다고 보면 된다. ISS 하나로 사실상 승부가 끝이 난 거다."

- ISS가 답을 정해놓고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어떤 점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나.
"저희 자문 변호사가 ISS 쪽과 만나 사외이사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ISS는 한쪽 말만 듣진 않는다. KB금융 사측과 접촉했을 거다. 보고서를 보면 사측에서 현재 지배구조와 관련된 설명자료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들이 따로 만났다는 내용은 없고 자료만 제공했다고 돼있다. '어떤 안건에 대해 회사가 의견을 주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준 자료를 보면 우리는 이렇게 판단된다'고 기술돼있다. ISS가 노조 쪽과 미팅할 때만 해도 사외이사 선임에 긍정적이었는데, 어느 시점 이후 바뀌었다. 저희 변호사와 1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는데 미팅 때와 달리 굉장히 부정적으로 나오더라."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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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가 한쪽에 너무 치우친 보고서를 낸 적이 있었나.
"지난 2013년 당시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본인 연임에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사외이사 2명을 찍어, 주총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작업을 벌인 적이 있다. ISS도 잘 알고, 국내에서도 기억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당시 사측이 ISS 쪽과 만나고, ISS가 편중되게 보고서를 썼다. 금융지주의 회장이 ISS를 동원해 연임을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어 전 회장이 중간에 낙마했다. 2013년에만 해도 ISS가 담당하는 한국 쪽 물량이 꽤 돼서, 한국지사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 일로 무산됐다고 한다."

"자본주의 원리 제대로 지키라는 것...노조 폄하 안타까워"

- 지난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했었다. 회장이 직접 이사회 의장으로 참여해 본인의 연임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었다. KB금융도 회장의 '셀프 연임'이 가능한 구조라는 이야기인가.
"회장 재임기간 중 만 70세를 넘지 않도록 하는 규정만 있다. 윤 회장은 1955년생이므로 연임을 3번 할 수 있는 구조다. 또 이건 규정이기 때문에 본인이 바꿀 수도 있다. 어쨌든 저희 노조는 매우 우파적이고, 매우 자본주의적으로 투쟁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온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그 원리라도 제대로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그걸 두고 '노조가 계속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이 없는 일이다.

저희는 노동이사제를 주장하지 않았다. 주식회사는 회장, 은행장 이런 경영진들을 주주들의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주주들이 대리인 감시를 위해 사외이사에 감시, 견제 기능을 위임시키는 거다. 힘 센 사람들이 윤 회장을 추천하니, 노조가 추천하는 사람들을 받지 않고 힘 센 사람들이 추천하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받는 것일 뿐이다. 실제 법에서 정해놓은 주주제안 형태로 사외이사가 되신 분은 없다. 누군가가 추천하는 것은 받아주고, 누군가가 추천하는 것은 받아 주지 않는 것뿐이다."

- 토론회 때 다른 발제자나 토론자들은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노동이사제'를 주장했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공공분야에 대해 노동이사제를 의무화하자는 내용을 발의 한다는 얘기도 일부에서 나온다.
"(노동이사제를 반대했지만) 최근 생각이 바뀌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주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신력은 없지만 영향력이 큰 어떤 기관의 장난질에 의해 폄하되는 부분들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노동이사제를 법제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주주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 주주들이 우리나라 보수 언론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노동조합들의 활동에 대해 분명 안 좋은 시각을 갖고 있다. 갑자기 노동이사제로 간다고 하면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와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주주 중에서 외국인 비중이 70% 수준이다. 법제화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밀어붙였던 성과연봉제 문제는 잘 마무리됐는지.
"그렇지 않다. 관련 결의가 은행마다 조금씩 달랐을 텐데, 저희 결의 내용은 올해 1분기 중 노조와 협의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2월12일에 은행들이 동시에 결의했었다. 공기업들의 경우 성과연봉제를 다 폐기했다. 민간기업들도 이사회에서 그 결의가 무효라고 하면 깔끔할 텐데, 아직 이사회에서 관련 논의를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일종의 휴화산 같은 거다.

성과연봉제 도입의 전제조건이 노조와 협의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감히 도입을 시도하겠나. 사측에선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봉제에 큰 문제가 있다면 노사간 협의할 수는 있는데, 한꺼번에 모두 직무급제로 바꾸자고 할 수는 없다. 꼭 바꿔야 할 부분인지 노사가 같이 연구 용역을 발주해 장기간 논의해야 한다. 일본 기업들이 직무급제로 바꾸면서 10~20년 걸린 사례도 참고해야 한다."

"사회개혁 속도 느린 건 부역자들 남아있기 때문...속도 붙었으면"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묻자 박 위원장은 고개를 떨구고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신 그는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만큼 유지되는 것을 보면, 다수의 국민들은 이번 정부의 활동에 대해 큰 반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개혁의 속도가 늦다고 국민들도 느끼고, 해외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주체들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였던 공무원들이 금융위원회에 다 남아있습니다. 금융지주회사의 회장과 임원들은 마치 본인들은 (지난 정부 적폐세력에) 부역한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자꾸 옷을 갈아입고 그 자리에 버티려 합니다.

(적폐청산에) 속도가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활동에 동참해 힘을 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배구조라는 것이 조금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이게 핵심입니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게 굳어지면 다른 지주회사처럼 (회장이) 계속 연임을 하고, 예전에 회장으로 있다 퇴직한 인물이 계속 영향을 미치게 되죠. 정당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고치려는 노력이 설령 한 번에 잘 되지 않더라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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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KB금융, #사외이사, #ISS,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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