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손흥민이 계속되는 슛이 골대를 빗나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손흥민이 계속되는 슛이 골대를 빗나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10일과 14일 2번의 평가전을 치렀다. 오랜 암흑기를 지나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은 축구팬들이 다시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몇몇 스포츠 전문 언론사들은 조 추첨식과 죽음의 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죽음의 조 이야기를 하는 기사가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와 그간 매체들이 대표팀에 끼친 영향을 이번 글에서 이야기 해야할 것 같다.

한국은 어느 조에 속해도 '죽음의 조'다

월드컵에서 최정상급 실력의 팀들이 같은 조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그 조를 '죽음의 조'라고 부른다. 누가 이길지 예측이 힘들 뿐더러 어느 팀이든 16강 진출의 자격을 갖춘 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조'는 지켜보는 이들에게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정상급 실력의 팀이 아니라 전력이 비교적 약한 팀에게는 어떨까? 결론만 말하자면 약팀에게 '죽음의 조'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열세에 있다면 그건 '죽음의 조' 논란을 이야기 하기 전에 스스로의 경기력을 키우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몇 언론은 여전히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조 편성을 '행운의 조'라 칭하고, 그와 반대되는 경우를 '죽음의 조'라 칭하고 있다.

단언컨데 우리 대표팀에게 이런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지금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경기하느냐를 생각해야하는 시기다. 이런 불필요한 상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는 있어도 대표팀이 월드컵을 대비하는 데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스페인을 만나면 최악'이라 언론들은 말했지만 2포트에서 스위스를 만나도, 잉글랜드를 만나도, 페루를 만나도 우리가 열세인 것은 변함이 없다. 12월 1일 조추첨식의 의미는 7개월 뒤 맞붙게 될 상대를 얼마 만큼 철저히 분석하는 데 있다. '누구를 만나야 쉽고, 어렵고'의 이야기는 우리 대표팀이 생각할 부분이 아니란 것이다.

협회가 논란을 만들면 글로 논란 키운 언론들


조 추첨식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언론이 대중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은 일들은 많다.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후 히딩크 감독의 부임 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논란을 더 크게 만든 것은 언론이었다.

논란의 시작점은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의 이야기가 기사를 통해 나오면서부터였다. 물론 문제의 시작점은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노제호 사무총장의 이야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서 벌어졌지만 이 논란을 대중이 관심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언론의 보도부터였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전 2002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9월 14일 낮 암스테르담 한 호텔에서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히딩크 감독의 복귀 이야기는 자연스레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한국축구의 가장 빛났던 시절을 만들어낸 감독의 복귀 의사에 대중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관건은 이 복귀의사가 히딩크 감독의 진심이었느냐다.

기사로 보도된 내용은 히딩크 감독과 인터뷰를 나눈 것이 아니라 노제호 총장을 통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마치 히딩크 감독의 의중인 것처럼 보도가 되었고, 논란은 점점 커졌다. 결국 히딩크 감독이 자리를 고사하고 나서야 논란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이 사태에 언론의 문제점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언론은 히딩크 감독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 때까지 누구도 논란의 당사자 히딩크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 물론 히딩크 감독이 접촉이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기사를 쓰기 전 팩트체크를 위해 당사자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건 기자로서의 본분을 잊은 것이다. 심지어 직접 자리를 마련한 기자회견장에서 히딩크 감독은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지도 않았다.

결국 이 문제는 국정감사에도 등장했다. 정작 국민이 알아야 할 대한축구협회의 더 큰 문제인 임원진 비리혐의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 복귀에 대한 진실공방은 조중연 전 회장 등 11명이 저지른 비리혐의와 신뢰할 수 없는 현재 협회의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집어 삼켰다. 언론이 주목한 무역업계 종사자 노제호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대한축구협회의 뿌리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날려먹게 만들었다.

언론은 대중이 필요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복귀 이야기도, 러시아 월드컵 조편성의 대한 이야기도 결국은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다. 언론은 대중이 관심을 가지는 소재로 글을 쓰길 바라고 본인들의 글이 더 많이 읽히길 바란다. 하지만 진짜 언론이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필요한 정보를 써야 한다.

'죽음의 조' 이야기는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그 말은 곧 대중이 월드컵을 앞두고 관심을 가지는 소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죽음의 조' 이야기가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 지난 월드컵을 통해 이미 깨달았다. 지난 월드컵 조편성이 끝난 이후 벨기에, 러시아, 모로코와 같은 조가 된 것에 대해 걱정하는 언론은 없었다.

그 당시에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조편성이라고 연일 기사를 써냈다. 하지만 이후 언론은 가장 중요한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과 준비 상태를 보도하지 않았다. 월드컵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대표팀의 결과는 당연스레 처참했다. 그리고 언론은 조편성에 대한 자신들의 기사는 잊은 채 대표팀을 비난하는 기사들로 얼굴을 바꿨다.

언론이 써야 할 것은 기사 조회수가 높을 것 같은 소재가 아니라 대중이 알아야 할 소재다. 지난 기간동안 언론이 대표팀을 흔든 것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면 보다 정확하고 대중이 알아야 할 글을 써야 한다. 월드컵마다 '죽음의 조' 이야기를 꺼내는 당신들을 기억하겠다. 그리고 명심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당신들의 악습에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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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easteminence의 '잔디에서 관중석까지'에도 연재되었습니다.
월드컵 조추첨식 죽음의 조 히딩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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