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애 후 결혼을 했더니 마지막 이별의 감각은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그 전에는 나도 몇 번의 이별을 겪었고, 그중에는 몸속의 수분을 다 짜내 토해내듯 서럽게 울었던 날들도 있었다. 결혼은 (이혼하지 않는다면) 내 삶에 더 이상 이성과의 사랑에 의한 이별이 없으리라는 뜻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랑의 연장과 증폭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결혼한 후에 우리는 연애할 때보다 훨씬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싸우는 날들도 있었다. 각자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결혼을 기점으로 둘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바로 습득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가끔은 결혼이라는 선택 때문에 더 외로워질 때도 있었다. 다른 선택지를 버리고 나는 스스로 고립되었는데, 그 유일한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따른 외로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한 유부녀가 이별 노래를 들으며 너무 감정이입을 하는 건 좀 이상할 것 같지만... 윤종신의 '좋니'의 답가라 할 수 있는 민서의 '좋아'를 듣고 모처럼 마음이 짠했다.

세상에 딱 맞지 않는 사랑 퍼즐 조각을 들고 좌절해본 경험이 없는 이가 몇이나 있으랴. 그건 사실 사랑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어긋나는 타이밍과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는 건 물론, 가끔은 부서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사랑의 순간을 겪는다. 그 탓인지, 이별에 대한 두 남녀의 회상은 둘 다 남일 같지가 않다.

사랑을 보내고, 사랑을 시작하며

 11월 '월간 윤종신'을 통해 '좋니'의 답가 '좋아'를 발표한 가수 민서

11월 '월간 윤종신'을 통해 '좋니'의 답가 '좋아'를 발표한 가수 민서 ⓒ 민서페이스북


윤종신의 '좋니'는 모처럼 가사가 쏙쏙 들어오는 애절한 곡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별 후 겪는 평범한 후유증이기도 했다. 떠난 그녀는 아마 그와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그랬듯 반짝반짝 예쁜 모습으로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 뒤에 남겨진 남자는 혼자 이별을 곱씹으며 아파한다. 벌써 다른 사람을 찾아 사랑하는 그녀가 원망스럽고, 나만 혼자 힘들어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11월 '월간 윤종신'을 통해 '좋니'의 후속곡으로 민서의 '좋아'라는 곡이 발표됐다. 담담한 듯, 하지만 한편으론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애써 미련을 거두려는 듯한 깊이 있는 음색이 인상적이다. 이 노래를 들으니 이 사랑은 누군가로 인해 '끝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고 어쩌면 두 사람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동안 그녀는 외로웠을 것이고, 어쩌면 그동안에 더 많이 울었을 것이다. 홀로 괴로웠던 시간의 기억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지금도 종종 그녀를 날카롭게 찌른다.

'뒤끝 있는 예전 남자친구'는 결국 그녀의 행복을 빌지만, '뒤끝 없는 예전 여자친구'는 자신을 잊어 달라 말한다. 그래서 나는 '좋아'를 듣고서야 이 사랑이 정말 끝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헤어진 상대가 아주 오랫동안 나를 떠올리며 괴로워하기를 바라본 적도, 내가 미안한 일이 많으니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길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각자의 긴 이별도 끝이 나면 결국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더 이상 어떠한 감정도 부여되지 않는 존재가 된다. '딱 잊기 좋은 추억 정도'로 남는 것이다.

조금 더 솔직했다면 

어쩌면 이 사랑은 이별 후에는 남자를, 사랑하는 동안은 여자를 힘들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솔직하게 외로움을 고백했다면, 서로의 다름을 견디지 않고 함께 다루었다면, 그리고 후회 없이 충분히 사랑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애절하게 이별하는 두 사람의 고백을 엿들은 입장에서 감히 위로하자면, 행복했던 만큼 시리고 아픈 이별을 겪으면서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지난 사랑을 마음속 저편에 차곡차곡 개어 넣고, 그들은 그만큼 성숙해진 새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내가 선택한 사랑이 가끔은 속상하고 힘들어도 우리는 다시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랑을 지켜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몇 번의 이별을 거치며 배웠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 실제로 이별을 한 연인들에게는 '좋니'와 '좋아'가 아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음악 차트에 가사를 곱씹어 들을 수 있는 곡이 많지 않은 요즘, 이별 후 공감하며 들을 만한 좋은 노래가 등장한 것도 윤종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대중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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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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