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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를 중비하고 있는 전교조대전지부장 출신 성광진(60)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2018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를 중비하고 있는 전교조대전지부장 출신 성광진(60)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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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명이 나 있었다. 대전교육감 출마를 결심한 후 대전교육을 어떻게 바꿀까를 고민하는 일 자체가 "즐겁다"고 했다.


성광진(60) 대전교육연구소장의 교사 생활은 대부분 전교조 대전지부 또는 전교조 대전지부의 전신인 대전교사협의회 활동과 관련돼 있다. 학교장의 부당한 지시에 불응해 55분 수업을 50분으로 바꾸고, 자율학습비를 없애기도 했다. 뜻을 같이 하는 동료 교사들을 규합해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교사된 교사를 돕는 일도 벌였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이 해직될 때에는 학원생을 가르치며 생계를 꾸려야 했단다.

그는 32년간의 교사생활 중 보람 있었던 일을 묻는 질문에도 "'성적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보자'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연대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라며 "그것이 전교조였다"고 밝혔다. "교사로서 양심을 지키며 살아온 점"도 그가 꼽은 보람 중 하나다. '정말 잘 가르치는 교사였는가'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돈 받지 말자', '아이들을 때리지 말자'는 초심을 지킨 데 대한 자부심이었다.

성 연구소장은 교육감 출마 이유에 대해 "지금 대전교육은 지나치게 학교장 중심으로 관료적이고 권위적, 수직적, 비민주적"이라며 "학교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고, 민주적인 운영이 살아 있는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성 연구소장은 충남 홍성 출생으로 1985년부터 대전북고, 대전북중, 대전중, 대전여자정보고, 대전국제통상고, 대전고, 대전복수고 등에서 32년 간 국어교사를 역임하다 지난 2월 퇴임했다.

대전양심수후원회 운영위원장, 전교조 대전지부장, 대전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대전운동본부 공동대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 등으로 일했고, 현재는 (사)대전교육연구소 소장, 대전지역공동체활성화포럼 공동대표, 대전마을교육공동체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다음은 지난 10일, 대전교육소에서 가진 성 소장과의 주요 인터뷰 내용이다.

- 걸어온 삶을 짧게 소개한다면?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고 9살 때 대전으로 이사했다. 자식 교육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님이 농사지어서는 자식 교육이 어렵다고 생각하셨는가 보다. 그 당시 아버님 소원은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교사에 대해 꿈이 없었다. 진짜 되고 싶은 것은 기자였다. 그래서 모 지방일간지에 지원했는데 최종면접에서 불합격했다. 이후 이 일 저 일을 하던 중 사립인 대전 북고등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줄곧 교사로 일해 왔다."

-교직은 적성에 맞았나?
"재미있었다. 첫 교사생활을 하던 때가 1985년이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교사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교사들은 다 '꼰대'이고, '고루하고' 그렇게만 보였다. 그래서 교사가 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생활해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았다."


 2018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를 중비하고 있는 전교조대전지부장 출신 성광진(60)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2018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를 중비하고 있는 전교조대전지부장 출신 성광진(60)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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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학교 전체 교무회의 석상에서 학교 방침에 처음으로 항의한 교사로 알고 있는데?
"교사생활을 한 지 일 년 정도 지나면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 의사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당시 학교장 지시로 55분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교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다음날부터 50분 수업으로 바꾸었다. 이 일로 동료 교사들이 굉장히 고무됐다. 10년, 20년 동안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교무회의 석상에서 학교의 방침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첫 사례라고 했다. 선생님들과 함께 좀 더 노력하면 더 많이 바꿔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이후 교사생활이 순탄했나?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저에게 담임을 주지 않았다. 교사 3년 차에 2학년 4반 담임을 처음 맡게 되었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담임으로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수업료'였다. 학교는 수업료를 빨리 걷기를 바랐다. 부모님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부담되는 액수였다. 그런데 우리 반이 항상 제일 늦게 냈다. 자율학습비 걷는 것도 그랬다. 그러다 보니 학년 부장이나 교감에게 혼나고, 교장실로 불려가고 그랬다. 한 번은 교장이 중고등학교 전체 조회석상에서 우리 반을 딱 찍더니, 학교에 협조 안 하는 나쁜 반이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참담했고, 이건 너무 심하다, 이건 아니다 생각했다. 그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 그 다음에 대전 북중에서 근무했는데 그때는 어땠나?
"중학교에 가서도 학교와 계속 갈등을 빚었는데, 그래도 거기에서는 조직적이었다. 호응하는 선생님들을 모아서 모임을 만들고, 공동행동을 했다. 수업료 내는 것도 서로 비슷하게 내고, 자율학습비나 보충학습비를 내는 것도 그랬고... 특히 선생님들끼리 주도해서 자율학습비 걷는 것은 없애기도 했다."

- 전교조 활동은 언제 시작했나?
"그렇게 북중에 있을 때 87년 민주항쟁을 겪었다. 그때 우리 사회에 교사협의회가 생겨났다. 저도 자연스럽게 교사협의회에 눈이 갔고, 88년 대전교사협의회 발기인대회에 제가 참가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교육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저는 당시 사립중등교사협의회 조직부장을 맡았었다. 당시 사립교사협의회 인원이 300명 정도였다. 정말 엄청난 숫자였다. 대전교사협의회는 이후 전교조로 전환했다."

- 전교조 대전지부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89년 9월, 10월 그때 대전에서 12명이 해직됐다. 저는 사립지회 조직부장을 맡아 비공개로 조합원을 복원하는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50~60명 정도를 복원했던 것 같다. 또 해직교사를 돕는 후원회를 만들어 해직교사 생계지원을 했다. 당시 후원교사들이 월 1만 원씩을 냈었는데, 당시 월급이 40-50만 원이었으니까 굉장히 큰 돈이었다. 그렇게 매달 400만 원 정도를 걷었던 것 같다. 그 일을 2년 가까이 했다."


 2018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를 중비하고 있는 전교조대전지부장 출신 성광진(60)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2018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를 중비하고 있는 전교조대전지부장 출신 성광진(60) 대전교육연구소 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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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해직됐나?
"92년 전교조가 '교육대 개혁'과 '해직교사 원상회복' 투쟁을 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대정부 투쟁에 나서면서 전교조 명단을 '선언'을 통해 전면공개했다. 대전에서도 80여 명의 현직교사 명단이 공개됐다. 명단공개 바로 다음 날 학교에서는 제가 맡고 있던 담임 자격을 박탈시켰다. 곧이어 93년 해직됐다. 출근투쟁도 하고, 시위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 해직 이후는 어떻게 지냈나?

"해직되고 전임으로 전교조 대전지부에서 사립지회 조직부장을 맡았다. 생계를 위해 8개월 정도 학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 그럼 대전 북중학교로 복직한 것인가?
"아니다. 재단에서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대전중학교로 일반복직됐다. 98년 3월에 복직했으니 5년 만의 복직이었다"

- 올해 2월, 정년을 3년 남기고 명예퇴직을 했다. 32년 간의 교사의 삶을 평가한다면?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게 행복한 교사,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쉬움이 크다. 가르치는 것이 행복한 교사로서 퇴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 보람 있었던 일 3가지를 꼽는다면?
"첫째는 나와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을 만난 것이다. 전교조를 통해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함께 생각하고 연대한다는 것이다. '입시경쟁 교육',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것', 이러한 '성적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보자'는 게 제 꿈이었는데,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연대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전교조였다. 그 사람들을 만난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기억하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다. 나머지 하나는 교사로서 양심을 지키며 살아온 점이다. 다만 '초심'을 다 지키지 못했다. 제가 교사를 하면서 마음먹은 것은 '돈 받지 말자', '정말 잘 가르치자'였다. 그런데 '정말 잘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돈을 받은 적은 없었다."

- 내년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출마 이유는?
"대전교육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대전교육은 지나치게 관료화되어 있다. 그리고 권위적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전혀 맞지 못했다. 특히 학교문화를 바꿔야 한다. 지금 대전의 학교문화는 너무 수직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에 참여하고, 민주적인 운영이 살아 있는 학교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수직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가?
"대전에 있는 모든 교사가 '대전은 학교장 중심의 학교운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시대는 과거처럼 학교장 중심, 학교장 위주의 경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반영되어야 한다. 지금 대전교육은 그런 것이 완전히 막혀 있다. 꽉 막힌 곳을 나서서 뚫겠다."

- 교육감이 바뀌면 그런 문화가 바뀔 것으로 보나?
"당연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 기사 이어집니다: "설동호 대전 교육감, 자기 철학, 관점 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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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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