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를 통해 문수빈은 육체뿐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과 강한 정신력까지 얻게됐다.

격투기를 통해 문수빈은 육체뿐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과 강한 정신력까지 얻게됐다. ⓒ 맥스FC


입식 격투단체 맥스FC 여성부 페더급(-56kg)에서 활약 중인 '슈슈' 문수빈(18·목포스타)이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오는 11월 25일(토) 안동에서 개최되는 '맥스 FC'11 여성부 챔피언십 4강전이 그 무대로 상대는 최은지(24·대구피어리스짐), 남성부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펀치와 강한 체력을 인정받고 있는 강자다. 두 선수의 승자는 반대편 블록에서 경기를 가질 강스타' 강예진(22·마산팀스타)-'신블리' 신미정(25·대구무인관) 승자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된다.

문수빈과 최은지의 대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한 대립구도가 연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다이어트 더비'로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둘은 다이어트와 밀접한 인연을 갖고 있다. 문수빈은 데뷔 당시부터 '다이어트 여신'으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주목을 받았다. 최은지 역시 30kg 이상의 감량을 통해 파이터로 거듭나며 그러한 스토리로 인해 공중파 방송까지 출연했다.

거기에 비록 데뷔 초창기이기는 하지만 문수빈은 과거 타 대회에서 최은지에게 패배를 당한 바 있다. 어찌 보면 당시보다 부쩍 성장해 복수에 나서는 성격도 가지고 있는 시합이다. 현재 사는 지역이 목포와 대구로 갈리는지라 선의의 영호남 라이벌 구도도 만들어지고 있다. 둘 다 묵직한 타격 파워를 자랑하는지라 실질적 결승전이라는 평가도 많다. 그런 만큼 제대로 만났다 할 수 있다.

파이터는 꿈도 꾸지 않았던 문학소녀

지금은 173cm·56kg으로 시합에 참여하는 멋진 체형의 여고생 파이터지만 문수빈에게도 이른바 흑역사(?)는 있었다. 지금에서야 "막 먹을 때니까 살이 찔 수도 있죠"라고 웃으면서 회상하지만 당시 본인으로서는 사뭇 심각했다. 골격이 큰 데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몸무게가 80kg을 훌쩍 넘어갔다.

물론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운동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성적이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여중생 문수빈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이른바 문학소녀였다. 현실에서는 뚱뚱한 소녀였지만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멋진 세상도 여행하고 아름다운 그림도 많이 그려보았기에 책 속의 세계가 너무 좋았다. 장래희망 역시 소설가였다.

문수빈은 무엇보다 체육 시간이 두려웠다. 체중이 많이 나갈 뿐 아니라 운동에 도통 흥미도 없었고 그로 인해 자신감도 하락한 상태였다. 왠지 다들 자신만 쳐다보는 듯한 생각까지 들어 자꾸 주변을 의식하게 됐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소 내성적이었던 문수빈은 운동을 시작한 이후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다소 내성적이었던 문수빈은 운동을 시작한 이후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 파이터 문수빈 제공


사춘기 소녀에게 뚱뚱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처도 안겨줬다. 그렇지 않아도 의기 소침해있는 상태에서 짓궂은 남학생들에게 수시로 놀림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상처가 쌓여갔다.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남자 노이로제'에 걸려 남자동급생들을 보기가 두렵고 싫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문수빈은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신체적인 부분도 그렇거니와 원만한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이 일어나 자칫 정신까지 피폐해질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태권도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은 문수빈은 그보다 더 격렬하고 운동량이 많을 것 같은 킥복싱 체육관을 찾았다. 실제로 어떤 것이 운동량이 더 많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 여학생의 눈으로 볼 때 킥복싱은 굉장히 거칠어 보였다. 당시 여중생 문수빈이 얼마나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운동을 안 하다 해서일까. 킥복싱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 몇 킬로그램이 금세 빠졌고 "바로 이거야!" 하는 마음으로 문수빈은 바로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무엇보다 가장 절실했던 체중에 변화가 왔던 이유가 가장 크다.

하지만 운동에 익숙지 않은 문수빈에게 킥복싱의 세계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또래의 보통친구들과 비교해도 체력이 좋지 못한 편이었던지라 조금만 뛰어도 헉헉대기 일쑤였다. 몸 따로 마음 따로는 기본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살이 빠져가며 달라지는 자신을 느꼈기에 견딜 수 있었다. 현재의 모습에 가깝게 외모가 달라지는 데까지 1년 정도가 걸렸으며 그 뒤로도 꾸준히 2년간은 다이어트 반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사실 파이터는 꿈도 꾸지 않았다. 열심히 운동하며 몸과 마음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본인이 생각할 때 운동신경 같은 부분에서 뒤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겸손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저는 정말 운동신경이 쾅이에요. 그나마 지금의 운동신경도 만들어진 부분이 커요. 똑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남들 백 번 할 때 저는 이백 번을 해야 감이 오고 시간 역시 두세 배가 걸리는 것 같아요. 물론 워낙 많이 하니까 한번 동작이 익숙하게 되면 온몸이 받아들이는 기분을 느끼기도 해요."

 신장의 이점을 살린 문수빈의 원거리 킥은 매우 위력적이다.

신장의 이점을 살린 문수빈의 원거리 킥은 매우 위력적이다. ⓒ 맥스FC 제공


운동을 통해서 또 다른 나를 찾게 되다

문수빈이 킥복싱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달라지는 자신을 보며 매사에 더 적극적인 스타일로 바뀌었고 성격 역시 밝아졌다. 뚱뚱했던 과거의 일들 역시 이제는 웃음으로 추억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평생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는 기억이 많았으나 그러한 부분을 털어버리고 외려 그 자리에 긍정적인 자신감을 채워 넣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이제 문수빈은 예전처럼 남학생들을 피하지 않는다. 외려 같이 어울려 농구도 하는 등 여장부로서의 포스(?)도 뽐내는지라 털털한 성격으로 인해 친구도 부쩍 늘어났다. 중학교 때 많이 못 찍었던 사진도 실컷 찍는 등 하루하루가 즐겁다.

자신감이 부쩍 늘어나기는 했으나 문수빈은 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뚱뚱해서 놀림도 많이 당해봤고 상처를 받았을 때의 기분도 충분히 잘 아는지라 괜스레 거만해지고 그러기보다 타인의 마음을 더 배려하려 애쓴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잠자리에 들 때면 한 번씩 되돌아보는 습관을 지니게 됐다.

어쩌면 처음부터 매력이 넘쳐 사랑받았던 케이스보다 아팠던 경험을 많이 겪은 것이 인생 전체에서는 플러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문수빈은 체육관을 찾은 많은 초보 관원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김소율 선수가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탱크가 되고 싶어요."

인간 문수빈은 항상 겸손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링 위에서 상대와 대결을 벌일 때만큼은 겸손해지고 싶지 않다. 안면이 있는 선수와 붙게 될 때는 치고받는 것이 미안해질 때도 있으나 그럴수록 최선을 다해 힘껏 싸우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탱크가 되고 싶다는 바람(?)처럼 문수빈은 자신의 화력에 자신이 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게 나와도 같이 맞불을 펼치는 데 주저하지 않으려 하며 점수에서 앞서고 있다고 시간을 끌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녹아웃을 노리고 싶다. 상대의 펀치 타이밍에 맞춰 들어가는 오른발 미들킥은 문수빈의 필살기다.

가장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문수빈은 "제 키가 체급 내에서 큰 편인데 신장의 이점을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한 부분을 잘 활용한다면 더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실제로 문수빈은 키가 큰 만큼 원거리에서 킥을 차게 되면 상대가 매우 곤혹스러워하는데 근거리 펀치 대결에서는 외려 약점이 되어 곤란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제대로 된 타이밍을 잡았다 싶어서 펀치를 날렸는데 클린치 상황이 되어버리는 웃픈(?) 상황도 종종 있었다. 좀 더 자신의 거리를 잘 살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이유다.

격투기를 통해 자신을 바꾼 당찬 여고생 문수빈의 끝없는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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