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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면 발암물질이 생긴다?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을 식물에 주면 10일 이내에 말라 죽는다?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소문을 접해 봤을 것이다. 정말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 전자레인지부터 가져다 버려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맞을까? 그래서 '팩트 체크'를 해봤다. 진짜 전자레인지는 위험한 물건일까? - 기자 말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전자레인지 괴담'.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전자레인지 괴담'.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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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에서 접한 하나의 괴담. 바로 '전자레인지에 관한 무서운 사실'이라는 블로그의 글을 공유한 게시글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게시글은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잠잠하더니 최근 사드 기지의 전자파 논란과 함께 또 한 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페이스북만 보더라도 최근 공유된 것만 수백 건이다. 이번에는 예전에 떠도는 소문을 조금 고치고 다듬어 구체적인 문헌과 사진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게시글은 '문명의 이기인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을 알린다'는 전제하에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전자레인지는 생명을 파괴한다.

(1) 전자레인지에 데운 물고기 밥을 금붕어에게 주면 금붕어가 죽는다.
(2)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을 식물에 계속 주면 10일 내에 말라 죽는다(가스 불에 끓인 물을 주면 안 죽는다).
(3)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에 매일 커피를 타서 마시면 서서히 죽게 된다(전자레인지로 음식을 계속 덥혀 먹으면 뇌 조직이 파괴되고 호르몬분비가 멈추게 된다).

※소련에서는 1976년에 전자레인지의 제조·사용을 법으로 금지

페이스북에 링크로 연결된 실제 블로그 게시글.
 페이스북에 링크로 연결된 실제 블로그 게시글.
ⓒ 블로그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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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 황당하다 못해 두려움까지 엄습한다. 이 내용이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무시무시하다. 그동안 전자레인지에 냉동 피자를 해동하고 즉석밥은 물론 우유까지 데워서 먹었는데…. 구체적인 문헌으로 제시한 영어원문과 우리말 해석까지 곁들인 게시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위에 두 개의 멀쩡한 식물 사진이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것은 앞으로 전자레인지에 끓인 물을 식혀서 10일 동안 줄 식물이고 오른쪽은 그냥 가스 불에 끓여서 식힌 물을 줄 것입니다. 생수가 아닙니다. 가스 불에 끓인 것입니다. 9일 뒤에 다음과 같이 변합니다.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을 준 식물은 작살났습니다. 전자레인지가 DNA를 파괴시켰기 때문이죠."

게시글은 이어 전자레인지에 데운 먹이를 먹고 금붕어가 죽는 현상을 예로 들며, 사람도 전자레인지에 끓인 물로 커피를 타 마시면 천천히 죽는다고 설명한다. '너무도 무서운 사실이지만 이것은 입증된 사실'이라는 보충설명까지…. 그리고는 이렇게 죽게 되는 가장 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간의 생체조직들과 뇌 조직은 전기적 성질 및 자기적 성질을 띠는 자석성을 가지고 있는데 전자레인지를 거친 물은 우리 몸의 그러한 '생체성(=전기성, 자기성)'을 없애 버린다는 의미다."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을 식물에 주면 10일 내에 말라 죽는다는 증거로 블로그에 제시한 사진.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을 식물에 주면 10일 내에 말라 죽는다는 증거로 블로그에 제시한 사진.
ⓒ 블로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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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수혈할 혈액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가 수혈받은 환자가 즉각 죽었다거나, 전자레인지로 데운 음식에서 콜레스테롤이나 발암물질이 엄청 증가했다는 사례까지 제시한다. 특히 전자레인지로 데운 우유를 아이가 마시면 신경계와 신장에 영향을 준다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사례가 있지만, 이 게시글의 핵심은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가 음식의 온도만 상승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유전적 변이까지 유발한다는 것이다. 음식에 전자파가 가해지면 분자가 정신없이 움직여 마찰열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음식의 분자구조가 바뀐다는 것.

요약해보면 '전자레인지로 데운 물을 사용하면 생명체가 죽는다', '음식을 데울 경우 콜레스테롤이나 발암물질을 만든다'로 요약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우유를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행위다. 아이의 신경계와 신장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데, 이건 정말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게시글을 정독했다. 그런데 자세히 구체적인 증거로 제시한 영어원문은 출처가 불분명했다. 그리고 전문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작성한 내용 대부분은 구체적인 실험시기와 수치 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일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의 지침이 있나 찾아봤다. 세계보건기구는 별도의 안내페이지에 '전자레인지의 전자기장 및 공중 보건(Electromagnetic fields & public health: Microwave ovens)' 지침을 만들었다.

세계보건기구의  ‘전자레인지의 전자기장 및 공중 보건(Electromagnetic fields & public health: Microwave ovens)’ 지침 일부.
 세계보건기구의 ‘전자레인지의 전자기장 및 공중 보건(Electromagnetic fields & public health: Microwave ovens)’ 지침 일부.
ⓒ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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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는 해당 지침을 통해 "잠재적 노출에 관련한 몇 가지 예방 조치만 취한다면 전자레인지는 다양한 음식을 데우고 조리하기에 매우 안전하고 편리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전자레인지의 도어만 제대로 닫고 조리한다면 유리도어를 통한 마이크로파 에너지 누설은 국제 표준에 의해 권고되는 수준 이하라고 했다. 이 지침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이번에는 국내의 지침을 살펴봤다. 전파환경 연구와 정보통신기술의 기준을 연구하는 국립전파연구원의 누리집에도 '전자파 오해와 진실'이라는 메뉴에는 전자레인지에 관련된 소문의 진실을 다루고 있었다. 물론 세계보건기구의 지침과 거의 같았다. 전파연구원도 전자레인지에 데운 음식을 먹으면 암을 유발한다는 소문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전파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국립전파연구원의 전자레인지 전자파 측정결과. 기준치 이하로 안전하다.
 국립전파연구원의 전자레인지 전자파 측정결과. 기준치 이하로 안전하다.
ⓒ 국립전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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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레인지에 음식물을 조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전자레인지의 전자파는 음식물을 조리하는 2.45GHz의 주파수와 전자레인지를 작동시키기 위한 60Hz의 주파수에서 발생한다. 특히 60Hz의 전자파는 일부 외부로 방출되기도 하나, 음식물을 조리하는 2.45GHz의 전자파는 전자레인지 외부로 방출되지 않는다.

전파연구원에서 전자레인지의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두 종류의 전자파 모두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인체에 해를 가하지 않았다(실험결과는 지난 2012년 3월 30일 채널A의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8회분)>을 통해 방송). 전파연구원의 실험을 통해 전자레인지로 데운 물로 식물을 키우거나, 채소를 데치고, 우유를 데우는 등 음식물을 조리하고 영양소를 분석한 결과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즉, 전자레인지를 사용해도 음식물의 영양소 변화나 파괴가 발생하지 않으며, 조리하는 음식에 어떤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다만 전자레인지는 2.45GHz의 전자파를 발생시키기 위해 마그네트론이라는 부품이 필요한데, 이를 구동시키기 위한 높은 변압기가 내장되어 있다. 변압 되는 과정에서 60Hz 전자파가 평소보다 높게 발생할 수 있어, 될 수 있으면 조리 중에는 30cm 이상 떨어져서 있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

전자레인지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전자레인지의 우측면(마그네트론과 변압기가 위치한 부분)에 밀착하여 측정한 경우 일반적인 가전제품보다는 큰 자기장이 발생(인체보호 기준보다는 낮은 값)했고 30cm 정도 떨어져 측정한 경우 그 값이 1/10 정도 수준으로 낮아졌다.

전자레인지는 그릇이나 주변의 온도를 덥혀서 열을 전달하지 않고, 음식에 직접 열을 전달한다. 아무리 요리를 많이 한다고 해도 전자레인지 자체가 뜨거워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조리해도 발암물질은 발생하지 않으며 조직파괴 등으로 인한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루머 대부분은 전자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자레인지는 단순히 분자의 진동을 이용해 데우는 기능만 있을 뿐 분자의 구조를 바꾸는 등의 이변을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도 있다. 가끔 조리되는 과정이 신기해 전자레인지 가까이에 눈을 대고 조리과정을 지켜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 사람의 인체 중 가장 약한 부분 중 한 곳이 안구인데, 잘못하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파 분야 전문가인 김윤명 단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전자레인지에 대한 괴담은 엄청나게 많다"며 "결론적으로 전자레인지에 의한 가열에서 분자구조가 바뀔 수 있느냐인데,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가 답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의 대부분은 존재하지 않는 연구기관이나 연구결과를 창작해 만든 것들이 많다. 특히 전자레인지에 관련된 괴담의 많은 부분은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와 같이 근거 없는 내용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이다. 근거와 출처가 빈약한 정보는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


태그:#전자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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