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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공화국 내각상(제1열 좌측부터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정준택, 부수상 겸 산업상 김책, 부수상 홍명희, 수상 김일성,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 민족보위상 최용건, 문화선전상 허정숙, 제2열 보건상 리영남, 국가검열상 김원봉, 교육상 백남운, 교통상 주녕하, 상업상 장시후, 재정상 최창익, 내무상 박일후, 제3열 농업상 박문규, 무임소상 리극로, 도시행정상 리용, 체신상 김정주, 사법상 리승엽, 로동상 최성택)
 조선민주주의공화국 내각상(제1열 좌측부터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정준택, 부수상 겸 산업상 김책, 부수상 홍명희, 수상 김일성,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 민족보위상 최용건, 문화선전상 허정숙, 제2열 보건상 리영남, 국가검열상 김원봉, 교육상 백남운, 교통상 주녕하, 상업상 장시후, 재정상 최창익, 내무상 박일후, 제3열 농업상 박문규, 무임소상 리극로, 도시행정상 리용, 체신상 김정주, 사법상 리승엽, 로동상 최성택)
ⓒ NARA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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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보다 값지다

나는 30여 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두시언해'(杜詩諺解)를 수십 번은 가르쳤다. 두시언해는 중국 당나라 때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시집인데, 고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돼 있었다. 나는 고교시절 이 두시언해를 배울 때도, 교사가 돼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칠 때도, 그리고 지금도 틈틈이 이 시를 읽을 때면 만년 두보의 애틋하고도 그윽한 시 세계에 침잠(沈潛, 깊이 빠짐)하곤 한다.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나라가 패망하니 산과 강만 남았고
성안에는 봄이 찾아오니 풀과 나무만 우거졌도다.
전쟁으로 어지러운 시국을 한탄하니 꽃에도 눈물을 뿌리게 하고,
새 소리에도 마음을 놀라게 한다.
봉화(전쟁)는 석 달이나 이어지고 있으니,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보다 값지다.
하얗게 센 머리는 긁으니 자꾸 짧아져서,
남은 머리를 다 모아도 비녀를 꽂지도 못할 듯하다.

위는 두보의 오언율시 <춘망>(春望)이다. 나는 이 시에서 경련(頸聯, 5, 6구) 중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보다 값지다"는 부분이 절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만년의 두보가 피란지에서 가족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나의 이번 4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의 한국현대사 자료 검색·수집 작업은 이전보다 기간이 짧았지만 의외로 소득은 컸다. 가장 큰 이유는 그곳 사정을 잘 아는, 고맙고도 귀한 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의 안내자 박유종 선생은 틈틈이 NARA를 드나들었기에 그곳 직원들이 다 알아보시고, 인사를 했다. 정문 수위에서부터 아키비스트(Achivist, 문서관리자)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박 선생은 사교의 폭이 넓었다. 게다가 이즈음 NARA에는 한국인 전문 리서처(Researcher, 연구사)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그분들은 박유종 선생이 나타나자 찾아와 인사를 했다.

인민군 전사통지서 1950. 8. 15.
 인민군 전사통지서 1950. 8. 15.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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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귀인을 만나다

그분들은 수 년째, 또는 수십 년 째 NARA를 드나들었기에 서고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는 재미동포로 NARA 터줏대감 방선주 박사 곁에서 함께 일하셨던 윤미숙 전문 리서처와 워싱턴의 인터내셔널 센터 KISON(Korean Information Service on Net) 편집위원 이흥환 리서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흥환씨는 NARA에 10여 년째 드나들면서 <부시 행정부와 북한> <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현대사 35장면>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대통령과 욕조> 등 귀중한 저서를 펴낸 저술가다. 나는 그분과 2004년 NARA 첫 방문 때 만나 함께 식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은 나의 고교(중동) 후배인데다가 내가 모교에 재직할 때 고3 학생이었다. 특히 그분 고1 때 담임 선생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홍준수 선생님이라고 해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홍준수 선생님은 사회과 교사로, 사회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당시 홍 선생님은 학교 신문과 교지 편집도 맡았는데, 그때 나는 학생 기자였다. 그래서 홍 선생님 어깨 너머로 기사 작성과 편집기술을 배웠다. 아마도 그런 전력 탓으로, 나는 일흔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도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나 보다.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삼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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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흥환씨의 저서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를 이미 감명 깊게 읽었으며, 내 서가에 소장하고 있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는 1950년 당시 조선인민군 군사우편함의 편지들로 누렇게, 퍼렇게 혹은 거무튀튀하게 색 바랜 편지들이다.

인민 군대에 나간 남편에게 쓴 편지, 인민군 여전사가 고향 어머니한테 쓴 편지, 아내에게 세간에 미련을 두지 말고 빨리 피란을 떠나라고 다그치는 남편의 편지, 월북해 인민군이 된 아들이 전라도 고향의 어머니에게 소식도 못 드리고 입대해서 죄송하다는 편지…. 남에서 북으로 올라간 편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편지 등, 대부분 편지들이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인민군 아내의 편지
 인민군 아내의 편지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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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 편지들은 끝내 수취인이 받지 못했다. 편지의 팔자가 기구해 여태 먼 이국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서고에 보관돼 있다. 나는 독자로서 저자에게 몇 가지 질문했다.

- 이 책을 펴내게 된 계기는?
"편지는 한 개인이 개인에게 보낸 사신(私信)이다. 하지만 이 편지들은 사신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현대사를 조명하는 1차 사료(史料)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이 편지들을 원래 수취인에게 돌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얘기했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곳 NARA 서고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노획해온 문서 상자가 수천 개나 된다. 벌써 수년 째 그 문서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 기록이란?
"잘한 일뿐 아니라, 잘못한 일도 적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 사람들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써 놓은 것은 보관해야 한다. 보관하지 않는 자료는 기록물이 아니다."

이씨는 내가  NARA에 머무는 동안 미군이 북한 측으로부터 노획한 기록물 상자에 관한 귀한 정보를 귀띔해 줬다. 그리고 마지막날 그의 최근 저서 <대통령의 욕조>에도 서명해줬다. 이 책은 NARA에 대한 입문서로, 문서 연구자들이 NARA 찾기 전에 미리 읽으면 큰 도움이 될 책이었다. 나는 귀국 비행기 속에서 줄곧 이 책의 책장을 넘겼다.

이번 회에서는 주로 이번 제4차 NARA 방문 때 검색·수집한 자료와 지난번 제3차 방문 때 검색·수집한 북한 측 노획 문서 자료에서 몇 점을 뽑아 싣는다. 이 자료 가운데는 '북조선 수립 후 초기 내각상'의 모습과 '남하공작원명단'(남한 측에서 볼 때는 남파간첩명단(?)) 등도 포함돼 있었다.

기록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이 진리를 NARA 자료실에서 온몸으로 느꼈다.

인민군 '정치상학교재' 표지
 인민군 '정치상학교재' 표지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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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제121군부대 지령문
 인민군 제121군부대 지령문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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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박격포중대체계도
 인민군 박격포중대체계도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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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참모 의견서
 통신참모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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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인수증 1950. 7. 13.
 포로 인수증 1950. 7. 13.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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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하공작원명단
 남하공작원명단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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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귀순을 유도하는 공산군 측 선전 삐라
 국군의 귀순을 유도하는 공산군 측 선전 삐라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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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로동당 신분 증명서
 북조선로동당 신분 증명서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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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남부전구빨찌산사령관남도부 발행 원호증
 동해남부전구빨찌산사령관남도부 발행 원호증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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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치하 서울역 앞 복구공사 1950.
 인공치하 서울역 앞 복구공사 1950.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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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맹간부가 여성의용군을 격려하다.
 여맹간부가 여성의용군을 격려하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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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로 도하하는 인민군들
 부교로 도하하는 인민군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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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최승희의 '승무'
 무용가 최승희의 '승무'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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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의 대표적 작가 이기영(1895~1984)
 카프의 대표적 작가 이기영(1895~1984)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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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조선인민군우편한 4640호> 도서출판 '삼인' / 15,000원
<대통령의 욕조> 도서출판 '삼인' / 18,000원



태그:#NARA, #이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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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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