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 CJ E&M


높은 콧대를 치켜들고 더러운 세상의 거인들과 맞서 싸우는 용맹한 시라노. 2017년 7월 7일부터 10월 8일까지 초연무대를 선보인 뮤지컬 <시라노>는 진정한 사랑과 진실한 용기를 담은 작품이다. 여기엔 정의를 위해 칼을 휘두르는 군인이면서 사랑 앞에서는 작아지는 시인 시라노, 시라노가 사랑하는 통통 튀는 여자 록산, 록산이 첫 눈에 반한 순수한 영혼의 크리스티앙 이렇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크리스티앙이 록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시라노가 대신 써주면서 시작된다.

그 남자 시라노의 매력

"시라노! 시라노!" 무대 위 사람들이 모두 시라노를 찾듯 누구나 시라노를 알게 되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못된 귀족들이 시인들의 비판적 시를 읽고 분노하면 대신 1:100으로 맞서 싸우고, 연극을 모독하는 배우가 있으면 그를 내쫓고 전 재산을 털어 관객들의 표 값을 대신 지불하는 남자.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흉측하고 긴 코를 가졌음에도 주눅 들지 않는 남자. 그가 시라노다.

시라노의 매력은 이런 '상남자'같은 면모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진정한 매력은 훌륭한 글솜씨와 말솜씨다. 그라면 100장 분량의 연설문도 거뜬히 쓰고 말할 것이다. 뮤지컬 <시라노>는 그런 시라노의 매력을 잘 담아냈다. 특히 그의 용맹함은 넘버 '거인을 데려와'에서 잘 표현됐는데, 맞설 적과 악한 사람들을 '거인'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다. 그래, 시라노라면 거인쯤은 돼야 맞설만할 것이다. 노래 '거인을 데려와'말고도 '안녕, 내 사랑'에서는 록산에 대한 숭고한 사랑의 마음이 잘 표현됐고, 극의 말미 록산이 부른 '최고의 남자'에서는 시라노의 성격과 가치관이 응축됐다.

우리 모두의 영혼

뮤지컬 <시라노>의 마지막 공연 날. 관객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시라노의 한 마디가 있다. "우리 모두의 영혼" 이 대사는 최후를 맞이하는 시라노의 독백 부분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라노는 마지막 거인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며 최후에 가져가야 할 것은 '영혼'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공연을 하는 동안 시라노 역을 맡은 류정한 배우가 변주해오던 부분이다. 극 초반에는 '나의 영혼'이었다가 중반부부터 '우리의 영혼'이라고 했고, 마지막 공연 날 '우리 모두의 영혼'이라고 말했다.

이 영혼은 평생 숭고하고 깨끗하게 지켜온 시라노 자신의 영혼이기도 하고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록산의 영혼, 용감한 크리스티앙의 영혼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드기슈, 르브레, 라그노 등 모두의 영혼일 것이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본 관객들의 영혼이기도. 마지막 공연 날 관객들이 운 이유는 이 '영혼'이 시라노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영혼처럼 이 뮤지컬에는 완전한 악역이 없다. 절절한 사랑이야기인 듯싶다가도 영웅이야기 같고, 전쟁과 슬픔, 우정이야기도 담겨있다. 아마 이 부분이 '고전'을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시라노>는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원작 <시라노 드 벨쥐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고전의 아름다움을 중간 중간 엿볼 수 있었다.

작품을 채운 노래들

뮤지컬 <시라노>의 넘버는 고전을 현대에 맞게 가져오려 노력한 부분이 돋보인다. 특히 '네 관상이 진상이니 상을 내려주지'라는 가사처럼 시라노의 말솜씨에 맞춰 재치 있고 감동적이게 표현된 가사들이 눈에 띈다. 넘버 '나의 코'에서는 시라노의 괴상한 '코'를 설명하면서 그의 괴팍하면서도 센스 있는 성격을 잘 설정했다.

1막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이라이트 넘버 '나 홀로'도 빼놓을 수 없다. '왜 신은 나에게만 가혹한가'라고 절규하는 시라노의 감정이 대폭발하는 장면이다. 언제나 단단하고 쓰러질 것 같지 않는 시라노가 홀로 달 앞에서 원망하듯 무릎 꿇고 다시 일어나 홀로 싸우겠다는 모습이 내 마음을 울렸다. 이 장면에서는 극 포스터에 등장하는 무대장치 '달'이 나와 달빛에 비친 시라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 앞에서 본인은 어둠이 가장 잘 어울린다던 시라노는 참 달을 닮았다.

이 글을 통해 모든 넘버를 하나씩 다 설명하고 싶을 정도로 시라노의 넘버들은 버릴 게 없다. 극의 내용을 잘 설명하면서 중독성 있고 기승전결까지 잡은 대단한 넘버들이다. 시라노의 말솜씨를 빌려와 더 잘 설명하고 싶은 심정이다.

뮤지컬 <시라노> 공연장에 앉아있는 동안 시라노는 관객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고 화내주고 울어줬다. 위로의 노래와 귀여운 허세로 관객들을 웃고 울린 시라노. 뮤지컬이 막을 내린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하늘에 뜬 달을 보면 시라노가 떠오른다. 우리를 위로하고 달로 떠난 시라노. 뮤지컬 <시라노>의 재연 무대가 어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덧붙이는 글 채효원 시민기자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글쓰기 콘텐츠 동아리 Critics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Critics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시라노 류정한 홍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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