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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흐르는 시간을 실감하게 한다. 푸르던 잎에 울긋불긋 색이 들고, 단풍의 시절도 지나면 그 다음엔 낙엽 되어 땅으로 돌아간다. 무성한 잎들로 뒤덮여 있던 나무줄기는 잎을 떨구고서야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때가 되면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가려져 있던 줄기는 드러나고, 보이던 잎들은 낙엽이 되어 땅으로 사라진다. 자연이 살아가는 이치다. 흐르는 시간을 눈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가을은 그래서 우리를 사색하게 하나 보다.

권력이 영원할 줄 알고 국정을 농락한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갇혀 법의 심판대 앞에 서있는 것도, 세월호 참사 그리고 광주민주항쟁의 채 다 밝히지 못했던 진실들이 오랜 세월 끝에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는 것도 모두 때가 된 것이리라. 우리도 각자 삶의 어느 때를 지나고 있는지 돌아보는 가을이면 좋겠다.

고창 은사리 단풍나무숲
 고창 은사리 단풍나무숲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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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 편백나무숲
 축령산 편백나무숲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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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치열한 일상에 파묻혀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리의 둔감한 마음도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 스르르 흔들린다.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때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게 되니까 말이다. 군더더기를 걷어낸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하며 소박한 자연의 마음을 느껴보는 시간. 그것이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이번 가을에는 잠시 조용한 시간을 내어, 나를 돌아보고, 나에게 고마운 것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내기 좋은 호젓한 가을 여행지로 고창 은사리 단풍나무숲과 영양 대티골 낙엽 숲길을 추천한다. 가을 중에서도 특별히 11월에 더 어울리는 곳들이다.

은사리 단풍나무숲과 축령산 편백나무숲

수령이 100~400년 된 제법 굵직한 단풍나무 노거수(老巨樹) 500여 그루가 자생하는 고창 은사리 단풍나무숲은 문수산 입구에서 문수사 입구 부도밭까지 길 양쪽으로 이어진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풍나무 자생지이기도 하다. 세월의 깊이를 드러내는 단풍나무 고목들이 알록달록 단풍잎을 환하게 빛내며 우리를 맞이하는 곳이다.

키가 제법 큰 아기단풍 고목들도 많은데, 앙증맞고 귀여운 단풍이파리가 저 높은 가지 끝에서 하늘을 덮은 별처럼 색색이 빛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주차장부터 절까지 이어진 단풍나무 숲길도 좋고, 절 입구에 있는 단풍나무 고목들도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은사리 단풍나무숲은 바로 근처에 있는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숲과 같이 다녀오면 좋다.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조림왕으로 불리던 춘원 임종국 선생이 20여 년에 걸쳐 키워낸 숲이다. 나무사랑이 지극했던 그가 가뭄에는 물지게를 지고 보살핀 숲이기도 하다. 피톤치드가 풍부하기로 알려진 편백나무, 삼나무가 빼곡하게 조성돼 있어 건강에 좋은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

산림청과 생명의숲이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숲이기도 하다.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이 많이 찾으며 휴식과 치유의 숲으로 주목받고 있다. 숲을 걷다보면 투병중인 환자나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숲에서 명상을 하며 쉬는 장면도 많이 만난다.

축령산 편백나무숲길은 영화 <태백산맥> 등의 촬영장소인 금곡영화마을로도 이어진다. 은사리 문수사 단풍나무숲에 대한 여행정보는 고창군청 문화관광과에서, 축령산 편백나무숲과 금곡영화마을은 장성군청 문화관광과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가는 법이나 걷는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영양 대티골 낙엽길
 영양 대티골 낙엽길
ⓒ 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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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티골 마을숲 낙엽길

경북 봉화와 영양의 경계에 위치한 일월산 자락에 자리잡은 산속 오지마을인 대티골의 마을숲은 11월이면 낙엽길의 운치가 빼어난 곳이다. 첩첩 산중의 산골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길은 화려한 단풍나무는 없지만 쭉쭉 뻗은 금강소나무들이 싱그럽고, 참나무 등 누런 활엽수 낙엽이 걷는 내내 흙길을 가득 메우는 수수하고 정감어린 낙엽길이다.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벗 삼아 걷다보면 가을기운이 확 느껴진다.

이 길은 청송, 영양, 봉화, 영월을 이어 걷는 길, 외씨버선길 7코스의 일부구간이자 지금은 새 도로가 놓여 쓰이지 않는 옛 31번 국도와 겹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걷다보면 녹슨 옛 31번 국도 이정표를 만나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도 있다. 깊은 숲길로 접어들면 영양군민의 젖줄인 반변천의 발원지도 지난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호젓하고 아기자기한 길을 걷다보면 다시 대티골 마을로 이어진다. 조용히 걸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기 좋은 평화로운 마을숲길이다.

40여 명 남짓한 주민들이 모여 사는 대티골은 깊은 산골이라 곰취와 두릅, 산마늘, 참나물 등이 많이 난다. 미리 상의하면 대티골 마을회를 통해 산나물백반 식사나 마을에서 공동운영하는 황토구들방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여행정보는 대티골마을회와 외씨버선길 홈페이지에서 참고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지인님은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전직 참여연대 간사였고 지금은 여행카페 운영자가 되었습니다. 매이지 않을 만큼 조금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 자유가 많은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숲길, #걷기, #편백나무숲, #축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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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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