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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국화만 피어있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도 슬피 울었을까? 올해들어 금굴산(연천군 미산면 임진강변) 자락에선 소쩍새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쉬지않고 소쩍소쩍 울어댔다. 봄부터 늦여름까지 줄기차게 울어대더니 가을이 시작되자 소쩍새는 점점 울음을 감추고 잠잠해져 가고 있다. 아마 봄에 우는 소쩍새는 짝을 찾기 위해, 여름에 우는 소쩍새는 어린 새끼와 먹이, 그리고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줄기차게 울었으리라.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로 일주일간 머물다 오니, 메리골드를 비롯해서 다른 꽃들도 다 시들어버리고 오직, 국화만 독야청청 피어 있다! 일주일전만해도 그렇게 싱싱하게 피어있었던 메리골드였다. 소쩍새가 봄부터 가을까지 줄기차게 울어댄다면, 메리골드는 봄부터 가을까지 독특한 향기와 함께 줄기차게 피어난다. 그러나 메리골드도 무서리를 견디지 못한다. 오랫동안 피는 까닭에 천수국(千壽菊)이라고도 부르는 메리골드는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오랫동안 피어주는 꽃이다.

무서리에 피어난 국화꽃
 무서리에 피어난 국화꽃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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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까지만 해도 최저기온이 4도 이상으로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30일과 31일 사이에 영하 4도에서 영하 5도까지 떨어지자 꽃들이 그만 움 츠릴 대로 움츠리다가 이렇게 시들어 버린 것이다.

무서리를 맞고 시들어 버린 천수국(메리골드)
 무서리를 맞고 시들어 버린 천수국(메리골드)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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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무서리를 이기지 못한다. 영하의 날씨에 된서리를 맞은 메리골드, 코스모스, 맨드라미 등 가을꽃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모두 시들어 버리고 오직 국화만 피어 있다. 거기에 무와 김장배추, 양배추는 무서리를 맞았지만 아직 푸름을 간직한 채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갈색 텃밭에서 싱싱하고 자라나고 있다. 늦어도 다음 주까지는 김장을 해야 할 것 같다. 김장을 하고나면 텃밭은 긴 겨울잠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무서리를 맞은 양배추
 무서리를 맞은 양배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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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부터는 다시 평년기온을 되찾아 최저기온이 영상 4도 이상으로 올라갔지만 한번 시들어 버린 꽃은 다시 피어나지 못한다. 동물과 식물의 차이점이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동물들은 동굴이나 숲속에서 추위를 피했다가 날씨가 풀어지면 슬슬 다시 나오지만, 식물계의 꽃들은 한 번 시들면 그해는 다시 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화만 오직 청초하게 추위를 이기며 독야청청 피어 있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 났을까? 국화꽃을 보고 있자니 국화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운 솔이(가명) 엄마가 생각이 난다. 이 국화는 6년 전 지리산 섬진강변에 살고 있는 솔이 엄마가 보내준 꽃이다.

무서리에 피어난 국화꽃 같은 여인

우리가 구례 살고 있었을 때 꽃을 좋아하는 아내와 이웃집에 살고 있었던 솔이 엄마는 서로 자기 집에서 키우던 화초를 선물로 주고받곤 했다. 처음에는 화단이 없어 꽃을 가꾸기가 어려웠는데, 아내가 세멘바닥에 화단을 만든다고 했더니 솔이 엄마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아내와 솔이 엄마는 함께 낑낑대며 리어카로 흙과 돌을 실어와 마당 한편에 세평 화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솔이 엄마가 소를 키우는 이웃집에 부탁하여 푹 썩힌 소똥 한 무더기를 실어와 세평 꽃밭에 섞어 넣었더니 화초들이 쑥쑥 자나라 매년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우리는 6년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구례에서 한 참 먼 이곳 연천군 임진강변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가 떠나던 날 솔이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언니, 나 혼자 두고 이렇게 멀리 떠가버리면 나는 어떡해!" 정들자 이별이라고 했던가! 너무나 정이 듬뿍 들었던 솔이 엄마였다. 그녀의 말처럼 연천은 구례에서 물리적으로 너무나 먼 거리였다. 우리는 연천에 살고 있는 동안 딱 한번 솔이 엄마를 구례로 가서 만났다. 섬진강과 임진강 사이의 먼 거리가 이토록 서로를 만나기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6년전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국화는 매년 이렇게 싱싱하게 피어난다.
 6년전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국화는 매년 이렇게 싱싱하게 피어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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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 엄마가 보내준 연보라색 국화꽃이 매년 무서리 속에서 피어나면, 우린 마치 솔이 엄마를 만난 듯 우리는 반갑다. 솔이 엄마는 젊은 시절에 남편과 해어져 홀로 살고 있다. 그녀는 홀로 외롭게 살아가며 병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면서 꿋꿋하게 살아왔다.

솔이 엄마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두 분이 번갈아 가며 병석에 눕자, 십수년을 넘게 수발을 들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녀는 남편이 떠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지극한 정성과 헌신적인 봉사로 시부모님을 모셨다. 그리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홀로 상을 치러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녀는 당국에서 두 번이나 효부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솔이 엄마인들 어찌 억눌린 생활이 좋을 리만 있었겠는가? 허지만 솔이 엄마는 무서리에 피어나는 국화처럼 먹구름 속에서 가슴으로 울며, 두 딸과 한 아들을 고이 키우면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왔다.

무서리 추운 날씨에 피어난 혜경이 엄마 같은 국화꽃이여!
 무서리 추운 날씨에 피어난 혜경이 엄마 같은 국화꽃이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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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정말 솔이 엄마는 서정주의 시처럼 내 누님 같이 생긴 국화꽃이다.

오늘(11월 5일) 이곳 연천의 최저기온은 영하 4도로 다시 뚝 떨어졌다. 무서리가 내리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저리도 예쁜 꽃이 피어나다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꽃잎 속에는 한 마리 꿀벌이 꿀을 빨아먹다가 무서리에 박제가 되어 그대로 얼어붙어 있다. 다른 꽃들은 다 저버린 후, 마지막 남은 국화꽃 향기 그리도 좋았을까?

국화꽃 꿀을 빨아먹다 얼어버린 꿀벌
 국화꽃 꿀을 빨아먹다 얼어버린 꿀벌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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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무서리를 맞고 피어난 국화꽃 속에 고개를 처박고 박제된 꿀벌, 그리고 국화꽃처럼 청초하고 아름다운 사연을 간직한 솔이 엄마를 생각하면서 나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국화꽃을 네모난 상자에 담아냈다.

국화꽃에 몰려드는 나비와 벌
 국화꽃에 몰려드는 나비와 벌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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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어디선지 나비와 벌들이 국화꽃을 찾아 들었다. 일순, 국화꽃은 나비와 벌들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피어난 국화 향기를 맡고 나비와 벌들이 찾아 든 것이다.

이처럼 무서리가 내린 영하의 날씨에도 꽃은 나비와 벌들을 불러들이고 나비와 벌들은 국화꽃 속에서 마지막 남은 꿀을 빨아드리고 있다. 오, 자연은 위대하다!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간다면 이 지구상에 죽고 죽이는 전쟁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태그:#무서리에 피어난 국화꽃, #천수국, #메리골드, #무서리, #양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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