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종조국인 잉글랜드에는 그만큼 다양하고 뛰어난 수준의 유소년 클럽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리오 퍼디난드, 조 콜, 프랭크 램파드, 마이클 캐릭 등 수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낸 유스 클럽이 있는데, 바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스 클럽(이하 웨스트햄 유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2016년, 잉글랜드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위치해있는 웨스트햄 유스(15-16세)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코칭 스태프로 활동했었다. 바로 전력분석관 배태한씨. 비록 올해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귀국 이후에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 4일 그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웨스트햄 유스 시절의 배태한씨 .

▲ 웨스트햄 유스 시절의 배태한씨 . ⓒ 배태한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까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5-16세 팀에서 전력분석관으로 활동했고, 현재에는 축구 교육법에 대해 강의하고 글을 쓰고 있는 배태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이렇게 좋은 자리를 제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국내에서는 전력 분석관이라는 직업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사실 국내에서 전력분석관은 '비디오 분석관' 혹은 '에디터' 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습니다. 사실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소프트웨어 등의 IT 계열의 전공자가 비디오 에디터로(전력분석관) 활동하는 반면, 영국에서는 축구학, 전력분석을 따로 공부하여 축구를 잘 알고 있고 분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석관으로 활동합니다. 한마디로 비디오 분석관은 경기의 하이라이트 등을 제공해주는 반면, 전력분석관은 더 나아가 영상을 통하여 코치 뿐 아니라 선수 개개인들에게도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전력을 분석하여 설명중인 배태한씨 .

▲ 전력을 분석하여 설명중인 배태한씨 . ⓒ 배태한


- 축구계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있습니다. 그 중 전력분석관을 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가 좋아서 여러 활동들을 제 나름대로 해보았고, 그때의 경험 중 하나였던 분석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활동을 하셨었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극복한 방법은?
"사실 저는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합니다. 영국에 갔을 당시에도 영어로 글은 거의 못 썼고 대화도 힘든 정도였죠. 군대에서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지만 막상 영국에 도착하자 막막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까 어느덧 영국에서 살아남기위해 영어를 열심히 하는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결과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군대에서의 2년보다 영국에서의 2개월이 더 큰 도움이 되었죠(웃음)."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라는 높은 수준의 클럽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운이 좋았고, 나름의 경력을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사실 웨스트햄의 큰 규모 때문에 부담이 적지않았는데요, 다행히도 유소년 팀이라는 적합한 팀을 제안해주셔서 고민없이 수락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팀에서 여러모로 배려를 해주었죠."

- 영국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실 영국 내에서는 힘들었던 점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정말 즐거웠죠. 오히려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좋지 못한 소식들을 접할 때,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특히 지난 2014년,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영국에서 살고있던 저는 너무 힘들었고, 영국에서나마 부당한 이유로 선수의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청소년들을 돕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열띤 강연중인 배태한씨 .

▲ 열띤 강연중인 배태한씨 . ⓒ 배태한



-
 국내 유소년 선수들과 영국의 유소년 선수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의 유소년 선수들은 볼을 다룰줄 아는 능력, 즉 테크닉적인 부분에서는 유럽 국가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수준급입니다. 해외 코치들이 한국 유소년 선수들을 볼때 "한국에 메시가 나올 것이다" 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죠(웃음). 하지만 볼과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은 영국선수들이 훨씬 우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훈련의 차이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한국의 유소년 클럽들은 테크닉에 중점을 둔 훈련을 하는 반면에 영국은 경기를 위주로 하여 선수들이 실전감각을 익히고, 그로 인해 창의력을 키울 수 있게끔 해줍니다."

- 국내에는 유소년 선수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해 논란이 되는 감독들이 있는데 영국에도 그런 감독들이 있나요?
"완전히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선수 개개인의 창의성을 개발하는 것이 영국 축구가 추구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양쪽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겠지만 그런 감독들은 수명이 길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부임 1달만에 경질되는 감독들도 있죠(웃음)."

한국인 최초 웨스트햄 유스 전력분석관 .

▲ 한국인 최초 웨스트햄 유스 전력분석관 . ⓒ 배태한


- 가끔 sns를 통해서 스포츠 언론계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데 그 이유와 앞으로 한국 축구 언론이 가야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언론계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감히 제가 말씀을 드린다면, 최근 한국 축구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로 인한, 근거없는 무조건적인 비판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간혹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기자분들이 계시는데 대부분의 축구팬분들께서 기사로 정보를 제공받는 시대인만큼 언론에서도 신중한 판단으로 쓴 글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선수가 아닌 축구계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려면 우수한 학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로인해 능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쉽죠. 그런 상황들은 청소년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거나 회피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잘 개발시켜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학생들의 꿈을 찾아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

▲ 그는 학생들의 꿈을 찾아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 ⓒ 배태한


- 한국에 돌아온 이후 유독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해주고자 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당시 학생들과 함께 있던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그저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한국의 어른들의 문제는 매우 큽니다. 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축구계에서만이라도 청소년들이 꿈을 찾아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는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 사실 한국인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분석관님을 지금까지 이끌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뛰어난 분들도 많이 계시죠. 그렇기 때문에 그 분들께 어떻게라도 보답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고, 비록 부유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든든하게 지원해주셨던 부모님의 역할 역시 컸던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꿈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일어날 줄 알아야 합니다. 남들이 지시하는 것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플레이를 만들어야 하고, 자신이 뛰는 이유를 계속해서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더 나아가서 자신의 플레이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또 남들과 나누다 보면 분명히 좋은 선수로 성장할 것 입니다."

그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

▲ 그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 ⓒ 배태한


비록 영국에서의 꿈을 모두 이루지 못한채 돌아온 그이지만, 귀국 이후 또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누구보다 겸손할 줄 알며, 누구보다 축구를 볼 줄 아는 그였기에 한국인으로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들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년들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열심히 활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그를 모든 이들이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웨스트햄 UTD.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