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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리아의 국경도시 아자즈에서 한 시민이 무차별 폭격으로 파괴된 도심의 모스크와 탱크를 카메라에 담았다
▲ 시리아 시민사진1 시리아의 국경도시 아자즈에서 한 시민이 무차별 폭격으로 파괴된 도심의 모스크와 탱크를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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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국경을 너머 조금만 가면 너른 평야에서 가축들이 풀을 뜯고 올리브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시리아의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 시리아 시민사진2 터키에서 국경을 너머 조금만 가면 너른 평야에서 가축들이 풀을 뜯고 올리브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시리아의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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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시리아입니다. 그리고 시리아 사람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서방 외신 기자들이 찍은 사진들이 아니라 일반 시리아 시민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기록한 사진들입니다. 실화냐고요?

실화입니다.

지난 8월 저는 시리아와 맞닿아있는 터키 국경 도시 킬리스(Kilis)에서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밀반입 작전으로 5대의 디지털카메라를 시리아 내부로 전달했습니다. 그 카메라로 일반 시리아 시민 4명이 난민 캠프에서의 일상과 도심 풍경 등 그들이 담고 싶고 외부에 알리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카메라에 담은 것이죠. 이런 시도는 아마도 국내외를 통틀어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다른 데에서는 보지 못했고 보기 힘든 사진들이라는 뜻입니다.
일상이 녹아있는 시리아 대중들의 발, 버스
▲ 시리아 시민사진3 일상이 녹아있는 시리아 대중들의 발,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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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은 사람도 찍힌 사람도 정부군의 공습에 맞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시리아민간구조대로써 한때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올랐던 '하얀헬멧' 의 일원이다
▲ 시리아 시민사진4 사진을 찍은 사람도 찍힌 사람도 정부군의 공습에 맞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시리아민간구조대로써 한때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올랐던 '하얀헬멧' 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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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들이 몰리면서 국경 도시에 있는 학교들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들처럼 보이지만 한커풀만 벗겨도 전쟁으로 얻은 심리적 신체적 상처가 깊은 아이들이다.
▲ 시리아 시민사진5 난민들이 몰리면서 국경 도시에 있는 학교들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들처럼 보이지만 한커풀만 벗겨도 전쟁으로 얻은 심리적 신체적 상처가 깊은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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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는 이제 전 국민의 절반이 난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7년 3월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국적국 시리아 안에서 살아가는 국내 실향민이 630만 명이라고 합니다.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는 등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으나 사실상 국경이 폐쇄되어 시리아를 탈출할 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시리아 국경 안쪽의 난민 캠프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좀 더 일찍 탈출해 터키에서 살고있는 난민들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와 목소리는 거의 보도된 바 없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사진에 담는 포토보이스(Photo voice)가 특별한 이유입니다.

시리아의, 시리아에 의한, 시리아를 위한 포토보이스, 바로 <시리아피스 프로젝트> 전시회의 시작이요 전부입니다.

[가족은 나의 힘!]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이 곁에 있어 고단한 난민살이에도 웃음과 감사를 잃지 않을 수 있다.
▲ 시리아 시민사진6 [가족은 나의 힘!]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이 곁에 있어 고단한 난민살이에도 웃음과 감사를 잃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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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없는 시대에 태어난 딸에게 평화의 시대를 물려주기 위해 아빠가 카메라를 들었다
▲ 시리아 시민사진7 평화없는 시대에 태어난 딸에게 평화의 시대를 물려주기 위해 아빠가 카메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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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피스포토 프로젝트>는 비영리민간단체 '여행하는카메라'가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여행하는카메라는 사실 시리아나 난민 이슈를 꾸준히 다뤄온 단체가 아닙니다. 저개발국 아이들 손에 디지털카메라를 전달해주고 사진을 찍게 함으로써 현지 아이들이 사진에 찍히는 객체나 수혜자로서가 아니라 주도적인 주체로서 자존감을 얻게 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죠.

참여자 아이들이 찍은 사진들은 매년 현지와 한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여 공유해왔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반짝이는 사진들 덕분에 힐링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과 같은 감동을 나눌 수 있어서 매년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 조금은 버거워도 보람 있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전시회는 과거 전시회들과 좀 다릅니다. 바로 그 다름이 이 글을 쓰게 된 모티브이자 두통처럼 가끔씩 저를 괴롭히고 있는 근원적 회의감입니다.

이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나라에서 열리는, 주인공인 작가들은 참석할 수 없어 부재한, 관람객들은 관심이 없어 아마도 텅텅 빌 것으로 예측되는!

이런 전시회이니 말입니다. 그럼 저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전시회를 하는 걸까요?
"IS가 참수하는 장면을 저도 직접 봤어요" -아델 아르무(12세)
▲ 시리아 난민아동 사진1 "IS가 참수하는 장면을 저도 직접 봤어요" -아델 아르무(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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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우리 마을 사람들을 참수하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봤어요. IS가 잘 보라고 어린이들을 맨 앞줄에 세웠어요!" - 유셉 베흘루(14세)
▲ 시리아 난민아동 사진2 "IS가 우리 마을 사람들을 참수하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봤어요. IS가 잘 보라고 어린이들을 맨 앞줄에 세웠어요!" - 유셉 베흘루(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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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마을 사람들을, 친척들을 참수하는 것도 모자라서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게 했다고 합니다.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 아이들의 증언입니다. 예술치료사이기도 한 저로서는 이 그림을 그린 아이가 전형적인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PTSD는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경험해서 그 사건이 종료된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하며 고통과 공포감을 느끼는 증상입니다.

이런 걸 그려야지 하고 마음먹어서 나온 그림이 아닙니다. 너무 충격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을 압도하는 그 기억이 시도 때도 없이 재경험 되고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참여자의 누이가 그렸다고 하는데, 정작 그 누이는 그림을 자기가 그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교사들은 그 누이가 시리아에 있을 때는 아주 똑똑했는데 마지막 시리아에서의 몇 년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은 거의 바보가 되었다며 안타까워 한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PTSD 증상 중에는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커서 아예 그 사건과 관련된 기억을 지우거나 얼이 나간 듯한 해리 증상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아이가 그런 경우이죠.

터키 국경 도시 킬리스(Kilis)는 7km만 가면 시리아 땅이기 때문에 시리아 난민들이 가장 많이 유입된 도시 중 하나로 11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시리아피스포토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한 아이들'이라고 하는 시리아난 민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20여 명의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주고 며칠 동안 사진을 찍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참수 장면 목격에 대한 기억 외에도 시리아 아이들을 압도하고 있는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나의 조국'에 대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물어봤을 때입니다.

"무너지다!"

그 대답에 이어 유사한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의 기억 속 '나의 조국'은 무너지는 이미지였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 대부분이 폭격을 생생하게 겪은 것은 물론이요, 폭격으로 엄마와 동생을 잃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있던 건물이 폭격 맞아서 건물 무너지고 다리와 팔 다 부러졌었어요.얼굴의 이 흉터가 그때 생긴 상처예요" - 시벨(13세)
▲ 시리아 난민아동의 증언 "제가 있던 건물이 폭격 맞아서 건물 무너지고 다리와 팔 다 부러졌었어요.얼굴의 이 흉터가 그때 생긴 상처예요" - 시벨(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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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곳에서 1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미사일이 떨어졌어요. 다행히 그 미사일이 터지진 않았지만 너무 무서웠어요. 미사일 폭격이 엄청나게 심했어요. 사람들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고..."- 아하멧(14세)
▲ 시리아 난민아동의 증언 "제가 있는 곳에서 15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미사일이 떨어졌어요. 다행히 그 미사일이 터지진 않았지만 너무 무서웠어요. 미사일 폭격이 엄청나게 심했어요. 사람들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고..."- 아하멧(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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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하마, 홈즈, 알레포 등 반군세력이 커서 정부군과 격전을 치렀던 도시들은 현재 도시의 90%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도 감히 재건을 꿈꾸기에는 너무 요원한 잿더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7년째 기약 없는 전쟁이 계속되면서 시리아에서 태어난 아이들 수천 명이 전쟁 중이 아닌 시대를 살아본 적 없는 것입니다.

전쟁 중이 아닌 시대를 살아본 적 없는 수천 명의 시리아 아이들- 그 아이들이 평화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희생과 고통이 있어야 할까요?
▲ 시리아 시민사진8 전쟁 중이 아닌 시대를 살아본 적 없는 수천 명의 시리아 아이들- 그 아이들이 평화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희생과 고통이 있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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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샤 오스만네 가족은 이 사진의 제목을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이라고 지었다
▲ 가족사진 아라샤 오스만네 가족은 이 사진의 제목을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이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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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거기에서 보냈다!"

자녀 두 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가족사진까지 찍게 된 아라샤 오스만(33세)은 시리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묻는 저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과거형으로 끝나버린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녀는 시리아인 남편을 둔 팔레스타인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에 이어 시리아까지, 그녀의 이번 생은 연거푸 난민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눈물을 참고 인터뷰를 잘 진행하는가 했는데 마지막 인터뷰 대상자인 따이바(37세)의 눈앞에서 저는 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시리아 난민학교의 교장인 그녀에게도 시리아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녀의 눈이 저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제 눈 너머 머나먼 어딘가를 보는 듯한 그녀의 눈 속에서 저는 천 개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완벽한 '통'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훅! 제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그것은 비통함이었습니다.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저도 모르게 질문지로 제 눈을 가렸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한참 만에 붉어진 눈으로 그녀가 입을 뗐습니다.

"...살인...죽음...폭격...파괴...이산.."

맨몸으로 탈출해야 했던 난민들에게 아픈 기억을 헤집게 만드는 제가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호기로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모금을 더 많이 하고 전시회에 더 사람들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난민들의 불쌍한 사진들, 슬픈 사연들만 편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차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그들에게 설명하고 약속한 것은 이 정도입니다.

"시리아인 여러분들이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 한국도 시리아에 대해서 잘 몰라요. 하물며 어른들도 모르는데 아이들은 시리아라는 나라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알게 해주는 것이 지금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 기회를 통해 시리아에 대해 알게 되면 지금까지 시리아 뉴스 나올 때 관심 없던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한 번 더 들어볼 거예요. 알아야 관심도 생기고 관심이 있어야 행동이 따라와요. 지금 하는 일은 그 시작점에 불과하지만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저는 믿어요."

"우리집에서 시리아 땅이 보여요. 저기 터키 국기 있는 데가 국경이고 그 너머가 시리아 땅이거든요. 거기서는 안전하고 부유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 슬퍼요." -제이네프 하지이(11세)
▲ 시리아 난민아동 사진3 "우리집에서 시리아 땅이 보여요. 저기 터키 국기 있는 데가 국경이고 그 너머가 시리아 땅이거든요. 거기서는 안전하고 부유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 슬퍼요." -제이네프 하지이(1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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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들 사정 안 된 건 알겠는데요, 그렇다고 제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죠?"

제가 시리아 난민 관련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으로 얽히고설킨 시리아 전쟁을 일개 우리가 종식할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지극히 당연하니 개인적으로 미안해할 일도 없고요. 하지만 그러니까 손 놓고 외면하자는 얘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시리아 난민들이 말하는 바람은 긴급구호 물품을 보내달라는 것도 아니요 무너진 학교를 지어달라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시리아 안에서 사람들 너무 고생하고 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시리아가 파괴되고 무너졌는데 알려지지 않고 있어요.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국제사회가 시리아 사람들에 대해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
"우리 시리아 사람들 이야기를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고통받고 있어도 절망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내 고통을 모르고 있고 나 혼자 철저히 고립되었다고 느끼면 그 순간 공황상태가 오고 지독한 절망이 시작되는 것이죠.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내 고통을 알아주고 기억해주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느끼면 살아낼 힘이 되고 이유가 됩니다. 시리아 사람들의 진짜 절망은 이 엄청난 비극과 고통을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고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데에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주고 우리들의 목소리를 한국에 들려줄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핸드 네자르(38세, 난민학교 교사)

'특별한 아이들'이라고 하는 시리아난민학교의 아이들 20여 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진을 찍은 후 현지에서 조촐한 전시회를 가졌다
▲ 시리아피스포토 터키 현지 전시회 '특별한 아이들'이라고 하는 시리아난민학교의 아이들 20여 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진을 찍은 후 현지에서 조촐한 전시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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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스에 있는 7개의 난민학교 중 저희 프로젝트에 대해 협조를 허락한 곳은 이곳, '특별한 아이들' 난민학교뿐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여러 나라의 NGO와 종교단체들이 명성이나 잇속을 차리기 위해 난민을 이용하기만 한 경험들이 여러 차례 있기 때문입니다. 난민이 되지 않았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피해의식과 자격지심 같은 것들도 그들을 방어적으로 만드는 데에 한몫한 것 같았습니다. 더 큰 이유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었습니다. 사진을 찍게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런다고 실질적으로 삶에 무슨 도움이 되며 고작 며칠 해서 얼마나 좋아지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인정합니다.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손에 잡히는 확실한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 며칠 한다고 해서 난민 아이들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저 또한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의혹을 품는 분들에게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강물이 처음부터 강물인가요?
꼭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프로젝트만 할 수 있는 건가요?
큰 변화의 점 하나는 찍는 프로젝트들이 무수히 많아지면 결국 큰 변화의 강물일 수도 있지 않나요?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투사도 아니요, 평화운동가도 아닙니다. 단지 시리아가 평화로웠던 10년 전에 배낭여행 한번 다녀왔다는 점 외에는 시리아와 어떤 혈연관계나 사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시회까지 하면서 종주를 하고 있으니 제가 보기에도 제가 이상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은 한 개도 없는 이런 이상한 전시회를 나는 대체 왜 해야 하지?"
"먼 나라 남의 나라 전쟁이라고! 나와는 상관없어!"
"평소에 시리아발 사진 보면 마음 무거워져서 외면하기 바쁘면서... 위선적인 거 아니야?"

'알량한 사명감 따위' 개나 줘버리라며 꼬드기는 내면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런 제게 좋은 처방전으로 작용한 것이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과 분노를 잊지 않은 저를 생각하고, 끝내 잊지 않은 우리들이 있었기에 오래 걸렸지만 결국 도래한 촛불 혁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그냥 알아주기만 하는 것! 그것이 시리아사람들에게 얼마나 살아갈 힘이 될지 짐작하기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 감히 세월호를 비유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세월호에 공동의 트라우마를 가진 우리, 세월호 유가족을 보면 채무감으로 외면하고 싶었던 우리, 노란 리본을 달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우리, 그 우리들 모두가 저에게는 증거요 원동력입니다. 그리하여 시리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다 봤어!"
"내가 다 기억해!"
"제가 그림을 그리고 아빠가 제목을 썼어요. 제목은 "시리아에 태양은 다시 뜰 것이다!" - 히바 툴레 알 모하메드
▲ 시리아 난민아동 사진5 "제가 그림을 그리고 아빠가 제목을 썼어요. 제목은 "시리아에 태양은 다시 뜰 것이다!" - 히바 툴레 알 모하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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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기'에 동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 전시회에는 참석할 수 없지만, 이 전시회의 주인공인 시리아 사람들을 생각해서 7분여의 영상물도 제작합니다. 영상물은 오는 17일 오후 7시 전시회 오픈과 동시에 공개되고 이후 유투브 등 온라인에 업로드해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전시회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자세한 내용 및 이후 소식은 여행하는카메라 블로그 (http://blog.naver.com/travelingcamera)를 참고해주세요.

2018년 11월 17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11월 25일 저녁 7시까지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갤러리 카페 <허그인>에서 열리며 17일 7시에 오프닝 행사가 있습니다
▲ 시리아피스포토 프로젝트 전시회 2018년 11월 17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11월 25일 저녁 7시까지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갤러리 카페 <허그인>에서 열리며 17일 7시에 오프닝 행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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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리아, #난민, #사진전, #여행하는카메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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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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