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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촬영한 경의선 공유지에 세워진 푯말. 이것을 세운 사람들은 공유지의 공공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을 찾기 위해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을 한다.
▲ 하늘·땅·물·햇살 우리 모두의 것 지난 4월 촬영한 경의선 공유지에 세워진 푯말. 이것을 세운 사람들은 공유지의 공공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을 찾기 위해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을 한다.
ⓒ 홍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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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곧 이사를 한다. 경기도 자락 어딘가에서 살고 있던 그가 갖고 있는 보증금은 삼백만 원. 일거리 하나만으로는 좋아하는 것도 하고 생활도 하는 게 어려운 우리는 둘 다 'N잡러(직업이 여러 개 있는 사람)'다. 하지만 친구가 여러 개 갖고 있는 일자리도 대개 서울에 있다. 고향이 경기도의 그 동네도 아니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조건에 맞춰 밀려 내려간 것뿐. 삼백만 원의 보증금을 거는 월세방은 실은 서울에선 찾기 어렵다. 기껏 싼 방을 찾으면 사람이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기 어려운 조건의 주거환경인 경우가 많다.

"옥탑과 반지하는 사람 살 만한 데가 아니므로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글을 본 일이 있다. 이사철인 봄과 가을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혹한·혹서·침수·사생활 침해 등의 악조건에 필수적으로 노출된다고 했다. 하지만 싼값에 방을 구하려면 어쩔 수 없이 뭔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은 종류도 다양하다. 거리가 아주 멀거나, 아주 좁거나, 아주 춥거나, 아주 덥거나, 자꾸 곰팡이가 피거나, 방음이 안 되거나, 환기가 안 되거나, 화장실이 잘 막히거나, 수압이 너무 약하거나, 아주 채광이 나쁘거나, 심지어 방이 '네모 모양'이 아니거나, 대로변에 접한 문을 열면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방으로 연결되어 늘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나열한 대부분의 악조건을 직접 겪거나 주변에서 목격했다.

하여튼 빠듯한 예산으로 집을 구하다 보면 '사람 하나 살기 위해 이렇게 갖춰야 할 조건이 많던가' 싶을 정도다. 이쯤되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할 만한 조건의 방을 애초에 왜 만들까?

청년 주거 문제, '셰어하우스'가 해결책 될까

서울에서 독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필요한 돈이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사십만 원이다. 보증금 천만 원, 그걸 모으기가 누군가에겐 그렇게 어렵다. 길을 지나다 부동산 벽면에 붙은 무수한 전세·매매 정보를 보면 한국 사람들 일이억 원쯤이야 늘 수중에 있을 것 같건만, 최저시급이 여전히 만 원이 안 되는 나라에서 특히 아르바이트 노동자, 사회초년생 같은 저소득층에게 천만 원은 언감생심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캥거루 세대'"라며,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게 독립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경우는 흔하다. 성년이 넘은 나이에 부끄럽게도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일견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비판을 하더라도 부모로부터 무사히 '독립'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의식주는 보장해 준 다음 비판해야 옳지 않겠는가.

집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을 정말로 많이 만난다. 학교나 직장이 집에서 너무 멀거나 이제는 독립생활을 좀 해 보고 싶다는 경우부터 부모나 형제로부터 물리적·정서적 폭력을 당하고 있어 반드시 독립이 필요한 경우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나 역시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오래 받으면서 서울에서 독립생활을 영위하느라 이런저런 주거 형태를 경험해야 했다. 4인실이지만 별로 저렴하지 않은 '민자' 대학 기숙사부터 한두 평짜리 창문 없는 고시원, 2인실에 월 15만 원 내면 밥까지 주지만 성적표를 매 학기 검사하던 지자체 설립 기숙사, SH공사의 대학생 주택 사업의 일환인(그러나 공사 직원과 소통이 잘 안 돼 자주 답답했던) '희망 하우징' 원룸, 잠깐 얹혀살던 친구의 원룸, 거실과 발코니가 딸린 투룸에 이르기까지 내 서울 생활의 역사는 곧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주거 공간들을 옮겨 다닌 역사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 주거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지인으로부터 '기본소득' 배분 아이디어의 일환으로 아예 모든 청소년이 성년이 되는 순간 천만 원쯤의 '청년 배당' 형식으로 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이걸 보증금 삼아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도와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보증금은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에,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다른 대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증금만 내고 나면 저절로 월세를 부담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대로, '내 한 몸 뉠 자리만 있으면 감지덕지'인 수준의 공간들이 주로 청년을 비롯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공간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 봐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은 수를 고민해 볼 수 있겠지만, 우선은 한 사람이 부담하는 월세 부담을 경감시키고 제대로 된 수준의 주거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제도와 여러 가지 실험들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셰어하우스'의 보급이다. 셰어하우스는 혈연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주거 공간 일부 또는 전체를 공유하며 생활하는, 앞서 말한 사안을 해결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법한 주거 형태다.

화제가 된 '강남 셰어하우스'에 드는 의문점

강남의 한 셰어하우스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시설 목록
 강남의 한 셰어하우스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시설 목록
ⓒ '하품하우스' 상세정보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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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에 170평 규모의 셰어하우스가 생겼다는 소식이 SNS상에서 화제가 됐다. 이 공간을 현재 40명의 입주민들이 공유하며 생활한다고 한다. 보통의 원룸이 5평에서 15평 정도의 규모라고 할 때 170평은 꿈같은 공간이다. 교통이 매우 편리한 입지도 그렇고, 단열과 채광과 통풍이 괜찮고 '정원'이 딸린 주거 공간을 구할 수 있단 측면에서는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여러 공동 주거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셰어하우스에 살기 위해선 거주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가령 전에 살던 SH공사의 대학생 임대주택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와 공용으로 사용하는 전기, 수도에 대한 공과금 분담 때문에 늘 잡음이 발생했다. 기숙사에서는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가정주부'가 있는 집에서 누려 온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은 당연하지 않다고 느껴 본 일이 없는 룸메이트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 셰어하우스 측은 이런 부분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을 한 흔적이 눈에 띈다. 가령 쓰레기를 처리하고, 청소하고, 공과금을 부담하고, 생필품을 구입해야 하는 부담을 모두 업체가 담당한다는 부분이 그렇다. 또한 입주하기 전 공동생활에 적합한지 판별하는 인터뷰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그렇다.

또한 주거 공간에 각종 취사도구와 가전, 가구를 구비해 두어 초기 이사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아볼 만하다. 전구 등의 소모품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방역과 방충, 보안과 안전을 신경쓴다고 적어 둔 점, 다리미같이 없으면 매우 불편하지만 원룸이라면 비치하기 고민스러웠을 가재 도구까지 구비한 점도 '독립 생활'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 이 공간을 설계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 공간이 정말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아한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공간에는 1인실(8개), 4인실(2개), 8인실(3개)이 있다. 월세는 59만~72만 원이고, 관리비가 별도로 10만~15만 원이 추가되며 보증금은 300만~500만 원 수준이다. 보증금 '천만 원'을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절반 이하의 보증금이란 조건이 반갑겠지만, 월세를 보면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평균인 월세 49만 원(2016년 부동산 중개 서비스 '다방' 매물 분석 결과)에 비해도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단기 계약의 경우 최대 22%의 월세(1개월 계약 시)를 더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더구나 가장 개인 공간이 많이 확보되는 1인실 공간이 2.5평(8.3m²)인 것을 감안할 때,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가용 공간을 늘린다는 셰어하우스의 취지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170평을 산술적으로 나누면 4.25평, 작은 원룸과 비슷한 수준이다. 각 방의 설계도와 내부 사진을 참조했을 때 개인 공간이 매우 좁게 배당된 것을 알 수 있었고, 거실이나 카페테리아 같은 공용 휴식 공간에 4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테이블이 있는지 역시 내부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공동 주거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현재 1인실 최고 월세는 72만원 수준으로, 윌세 부담을 충분히 줄인다는 셰어하우스의 원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
 현재 1인실 최고 월세는 72만원 수준으로, 윌세 부담을 충분히 줄인다는 셰어하우스의 원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
ⓒ '하품하우스' 방 정보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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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공동 주거'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기를 제안한다. 누군가는 단지 괜찮은 원룸을 구할 돈이 없기 때문에 셰어하우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공동 주거'는 총체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실천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몸'을 통제하는 것은 '정신'을 통제하기 위한 행위다. 사실, 몸과 정신은 다르지 않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것이 곧 나" 같은 소비자 정체성이 들어간 슬로건을 굳이 차용하지 않더라도, 몸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의 문제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처음 읽고, 한 사람이 자신만의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을 갖는 것이 그 사람을 '해방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살면서 '나만의 방'을 제대로 소유해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구한 원룸에서 내가 그 공간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공간을 관리한 것이 매우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한 발 더 나아간 고민을 한다. 과연, '원룸'이라는 공간은 인간에게 적합한 주거 환경인가? 경험상 적어도 인간에게는 요리와 식사를 위한 공간, 수면을 위한 공간, 작업을 위한 공간 정도는 분리되어 있는 주거지가 필요하다. 거실에 방이 두 칸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나의 생활은 사 년 동안 살던 원룸에서의 생활과 비할 바가 안 되도록 질이 좋아졌다. 물론 이 집은 전에 살던 원룸에 비해 앞서 언급했던 채광과 방음, 단열 등의 조건이 월등히 좋기도 하다.

이건 모두 이 공간을 공유하며 사는 세 명의 하우스메이트들 덕분에 가능한 생활이다. 말하자면, 나는 일종의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을 두지 않았고, 용도별로 방을 분류해서 쓴다. 거실에 충분한 크기의 테이블을 두고 거기서 책을 보고 글을 쓴다. 침실에서는 잠만 잔다. 주방에서는 요리를 한다. 큰 방에서는 손님을 맞는다. 원활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톡방을 만들어 두고 변경사항을 바로바로 전달하고, 필요하면 회의도 한다.

조금씩 돈을 내서 월세를 부담하고, 공과금을 내고, 생필품을 사고, 장을 본다. 내역은 모두가 볼 수 있게 적어둔다. 이렇게 해서 일 년을 넘게 살았지만 혹한기와 혹서기의 공과금을 포함해 한 달에 한 사람이 부담해야 돈이 40만 원을 넘어 본 적이 없다. 집을 부분적으로만 공유하는 사람은 10만 원쯤 보태고, 피치 못하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엔 돈을 안 받기도 했다. 같이 사는 우리는 확실히 앞서 언급한 셰어하우스의 장점을 고루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오랜 시간 서로의 가치관을 탐색하고 생활 패턴을 점검하고 맞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SH공사에서도 원룸만을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한 명 이상의 하우스메이트를 둬야 하는 셰어하우스 형식으로 집을 분양했는데, 당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때려 넣듯이 한 공간에 넣는다니 너무 무모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겨우 서너 개 나온 원룸에 당첨되어 기뻤지만, '젊은이들이 공동 생활을 안 해 봤으니 우선 경험하게 해 주자'는 취지의 정책에는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강남의 셰어하우스 건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과 비평들을 접하며 씁쓸했던 부분은 이런 부분이었다. 어쩌면 집과 학교에서 통제 당하는 삶에 익숙한 사람은 극도로 자기 공간이 제약된 상태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주거지를 공유하며 느끼는 몸의 제약에 대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해 다소 둔감한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점점 나를 둘러싼 '물적 토대'로서의 주거 조건이 개선되며 '정신적' 긴장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키는 순간이 많아지고, 근육을 적절하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이제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땅은 누구의 것인가? 어째서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단지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는가? 누군가에게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누리는 것이 어째서 이토록 힘이 드는가? 나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구하는 게 어려울 것 같다.


태그:#셰어하우스, #공동주거, #SH공사, #대학생임대주택,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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