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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나를 태운 테제베(TGV) 기차는 파리 몽파르나스 역(Gare Montparnasse)을 서서히 출발했다. 파리 외곽의 회색빛 집들을 통과한 기차는 브르타뉴(Bretagne) 지방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차는 브르타뉴의 안개에 덮인 숲을 아스라이 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차는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루아르(Loire) 강변을 산책하듯이 지나고 있었다.

브르타뉴의 평원 위에 아침 안개가 가득 덮여 있다
▲ 낭트 가는 길 브르타뉴의 평원 위에 아침 안개가 가득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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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의 여정 중 하루를 온전히 비워두었다. 여행자들이 많이 몰리는 관광지가 아닌, 한적한 프랑스의 옛 도시를 찾아가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프랑스를 여행하는 도중 즉흥적으로 가기로 한 도시는 바로 낭트(Nantes)였다.

차창 밖의 루와르 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 루와르 강의 아침 차창 밖의 루와르 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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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서쪽으로 394km. 2시간을 달린 테제베는 낭트 역에 조용히 도착했다. 역에는 아직도 아침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프랑스의 기차역은 각 도시를 상징하는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명성이 높은데, 이곳 낭트 역은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이 육중하게 철로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낭트 역은 과거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낭트는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의 고향이기도 하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해저 2만 리> 등 내가 어렸을 적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공상과학소설의 고향이 이곳이다. 내가 낭트의 거리를 걷게 된 것도 깊은 호기심 속에서 놓지 못했던 이 책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지금도 현실화되고 있는 그의 기가 막힌 상상력에 경외감을 느끼곤 한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공상과학소설을 집필한 도시에 들어와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던 나의 무의식이 오늘날 낭트로 이끌었을 것이다.

역을 나와 구시가 쪽으로 접어들자 도시에 충만한 문화의 숨결이 느껴졌다. 혁명과 전쟁 속에서도 조화롭게 보존된 18세기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도시 한복판에 프랑스의 젖줄, 루아르 강이 흐르는 등 파리와 비슷한 도시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낭트는 '서쪽의 파리'라고 불리고 있다. 프랑스 서부 대서양 연안에서 수도와 같은 낭트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놀라운 것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낭트 역과 낭트 구시가를 연결하는 현대적인 트램이 길을 가고 있다
▲ 낭트의 트램 낭트 역과 낭트 구시가를 연결하는 현대적인 트램이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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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낭트의 거리. 평일 오전이라 역에서 시내로 걸어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지 않고 한산한 편이다. 역과 이어지는 스탈린그라드 대로(Boulevard de Stalingrad)에는 낭트의 중심지로 향하는 노면전차가 달리고 있다. 낭트를 참 정겹게 만드는 현대적이고 앙증맞은 이 노면전차, 트램은 시민들을 태우고 이동하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이 시간의 트램 안에는 몇몇 시민들이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지도를 열어 찾아보니 낭트 시내에는 3개의 트램 노선이 달리고 있었다. 나는 유럽의 트램 타기를 아주 좋아하지만 낭트 시내의 관광명소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모두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다.

낭트 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자 육중한 성벽과 해자를 갖춘 브르타뉴 대공 성(Château des ducs de Bretagne)이 시야를 막아 섰다. 옛 성들이 늘어선 프랑스의 정원 루아르 지역에서 만나는 첫 번째 고성이다. 당시 이 지역 낭트를 위시한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을 지배했던 당당한 성이다. 이 성은 낭트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낭트 여행 1번지다.

낭트에 살던 브르타뉴 대공들의 거주지이자 거대한 요새이다
▲ 낭트 브르타뉴 대공 성 낭트에 살던 브르타뉴 대공들의 거주지이자 거대한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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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브르타뉴 대공들의 거주지였던 이 성은 브르타뉴 대공, 프랑수아 2세(Francis∥)에 의해 1466년에 크게 재건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큰 성을 지어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루이 11세(Louis XI)에게 저항하고 브르타뉴의 독립을 확보하려고 했다. 워낙 규모가 컸던 이 성의 공사는 그의 딸인 안느 드 브르타뉴(Anne de Bretagne)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이 성은 브르타뉴 대공이 일상을 살던 거주지이면서 요새이기도 했다. 그래서 성의 외부는 도저히 기어오를 수 없는 성벽과 함께 쉽게 건널 수 없는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한 마디로 성의 외부를 향해서는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성은 최근에 대규모 개·보수 공사도 마쳤기 때문에 어느 석재 한구석도 흐트러짐 없이 잘 보존돼 있다.

대공의 성을 둘러싼 해자의 물속은 가까이에서 보면 아주 깊어 보인다. 이 성 해자의 물은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루아르 강에서 인공적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프랑스 중앙부를 적시고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1000km의 긴 물줄기 중 한 갈래가 이 거대 성의 해자에까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낭트가 루아르 강에 기대어 발전한 도시고, 이 해자는 루아르 강물 안에 있으니, 이 대공의 성도 결국 프랑스의 풍요로운 루아르 강이 낳은 산물인 것이다.

해자 위에는 오리 가족들이 깃털을 다듬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낭트 성 해자 해자 위에는 오리 가족들이 깃털을 다듬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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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 요새 기능을 위해 성을 둘러싸고 깊은 해자를 파 놓았지만 깊은 해자 덕분에 이 중세의 성은 더 운치 있는 모습으로 완성됐다. 과거에는 바닥을 깊게 파 만든 해자에 물을 가득 넣어두었겠지만 지금은 해자의 반 정도는 정갈한 잔디밭으로 가꾸어져 있다. 이 잔디밭 옆 해자에서는 오리 가족이 물 위에 둥둥 떠서 팔자 좋게 깃털을 다듬고 있고, 물속에서는 물고기와 자라가 한가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다.

해자 잔디밭 위 산책로에서 시민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한가롭게 산책을 한다
▲ 해자 산책로 해자 잔디밭 위 산책로에서 시민들이 반려견을 데리고 한가롭게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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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의 잔디밭 위에는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별도의 산책로가 가꾸어져 있고 반려견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날씨 좋은 휴일에는 이 넓은 잔디밭에 사람들이 소풍을 나와 햇살을 즐긴다고 한다. 주변에 시원스럽고 정갈한 물이 가득하고 길옆으로는 역사의 향기를 내뿜는 성벽이 호위하고 있으니 산책로로는 최고인 곳이다. 낭트 시민들은 이 역사의 산책로에서 여유 있게 걸어가고 있었다.

중세의 거대성 낭트는 시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다
▲ 낭트 성 입구 중세의 거대성 낭트는 시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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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프랑스의 고성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나는 해자 밖을 빙 돌아 성의 입구를 찾아갔다. 성의 입구로 들어가려다 보니 한 여인의 청동상이 서 있다. 가녀린 여인의 얼굴이지만 얼굴에서는 야무진 표정이 느껴진다. 작지만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브르타뉴 대공, 프랑수아 2세의 딸인 안느 드 브르타뉴(Anne de Bretagne)다.

한 손을 가슴 위에 얹은 그녀는 어딘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전진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은 동상이 약간 비스듬한 데다가, 동상의 전체 길이가 짧기 때문일 것이다. 안느 드 브르타뉴가 생전에 키가 작았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동상도 고증 그대로 사실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동상을 자세히 보면 유독 다리가 짧게 묘사돼 있다. 실제로 그녀는 왼쪽 다리가 오른 쪽보다 짧아서 발을 절었고 다리가 더 짧은 쪽 발에 높은 굽의 신발을 신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체적 불편함을 지녔던 이 작은 여인은 낭트와 브르타뉴의 역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여걸이었다.

이 총명한 브르타뉴 대공은 브르타뉴를 자유롭게 한 여걸이었다
▲ 안느 드 브르타뉴 이 총명한 브르타뉴 대공은 브르타뉴를 자유롭게 한 여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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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비록 37년의 짧은 생을 살다가 갔지만 낭트 시민들은 그녀를 이 거대한 성의 가장 위대했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낭트 시민들이 낭트의 역사 속에서 그녀를 가장 사랑하고 기리는 것은 당시 그녀가 최선을 다해 브르타뉴 공국의 국정을 돌보았던 진정성을 지닌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총명함과 인내력을 가지고 프랑스로부터 브르타뉴 공국의 권리를 되찾아오기까지 했으니 낭트 시민들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477년에 태어난 그녀는 브르타뉴 공국의 땅덩어리를 빼앗으려는 프랑스의 탐욕스러운 책략을 보고 자랐다. 또한 그녀는 이 성 안에서 그녀 아버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브르타뉴 공국 내 여러 영주들의 끊임없는 음모를 경험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음모와 탐욕이 가득 찬 세상을 경험하며 학습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가 적법한 남자 후손이 없이 죽자 11세의 어린 나이에 브르타뉴의 대공이 됐다. 일찍부터 나랏일을 보고 자랐던 총명한 그녀는 브르타뉴의 핵심적인 권력을 무리 없이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매우 지적이며 얼굴이 아름다운 그녀에게는 여기저기서 구혼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브르타뉴 대공으로서의 그녀는 공국의 운명을 걸고 프랑스 왕인 샤를 8세(Charles Ⅷ), 루이 12세(Louis XII)와 연달아 정략결혼을 하게 됐다. 그녀의 역사를 알게 된 후 동상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눈빛이 더 촉촉하게 느껴진다. 그 눈빛은 나라의 운명에 따라 남편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의 왕비이자 브르타뉴 대공으로서 브르타뉴를 다스리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중세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종속적인 여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끝까지 브르타뉴 공국의 자치권을 보호하는 정치력을 발휘해 브르타뉴가 프랑스에 종속되지 않고 반 독립적인 나라로 남을 수 있도록 했다.

그녀가 죽은 후, 브르타뉴 공국은 프랑스 왕권으로부터 지켜온 독립이 완전히 끝나게 됐다. 그녀는 낭트와 브르타뉴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마지막 브르타뉴의 대공일 뿐만 아니라 싸우지 않고 화합과 평화의 시대를 열었던 선구적인 여인이었던 것이다.

마치 이 여인은 해자 앞에서, 해자를 건너 들어가기 전에 여인들의 진취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속박에 잡혀있던 여인들의 실력이 비로소 발휘될 때에 어느 사회든 조금씩 더 전진해 나간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안느 드 브르타뉴의 동상을 보면서 우리 역사에도 이토록 귀감이 되는 여성들이 앞으로는 결국 출현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성의 정문과 성 밖을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튼튼한 석교이다
▲ 낭트 성 석교 성의 정문과 성 밖을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튼튼한 석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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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와의 인사를 마치고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해자를 건넜다. 해자 위에는 성과 성 밖을 이어주는 석교가 걸려 있고 석교의 성 쪽 끝에는 목재로 만들어진 도개교(le pont-levis)가 연결돼 있었다. 도개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해 다리를 위로 올리고 다시 내릴 수도 있도록 하는 시설인데, 현대에도 자동차가 이 튼튼한 도개교 위를 왕래하고 있었다. 안느 드 브르타뉴가 완성한 성답게 대공의 성은 요새로서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해 문을 위로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만든 방어용 시설이다
▲ 낭트성 도개교 적의 침입에 대비해 문을 위로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만든 방어용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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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영화 속에서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성처럼 아름답고 단단한 성 안으로 들어섰다. 도개교 양쪽에 세워진 두 개의 망루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나의 진입을 반기는 듯했다. 나는 해자의 물을 건너고 도개교까지 건넘으로써 드디어 성 안으로 들어섰다.

성 안은 성 밖과 달리 르네상스식 궁전 건물이 우아하게 서 있고, 성 안 마당은 마치 운동장처럼 넓었다.

그녀, 안느 드 브르타뉴가 다리를 절며 내 뒤를 따라오면서 이 궁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줄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걸어갔다. 감은 눈 안에서 그녀가 이 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편이 있습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브르타뉴, #낭트, #낭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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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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