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등 문화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정원 정문 앞에서 블랙리스트작성 국가정보원 고발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3월 문화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국정원 정문 앞에서 블랙리스트작성 국가정보원 고발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국가정보원에 정보를 제공한 영화진흥위원회 내부자는 누구일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30일 공개한 '문예계 내 左(좌)성향 인물 현황'에 대해 영화계 내에서 여러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다소 오래된 개인 이력들을 기록한데다, 준정부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전 현직 직원들 이름도 나오기 때문이다.

국정원 개혁위의 발표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 8월 국정원은 '좌성향 문예계 인물들이 2014년 지방선거를 조직 재건의 호기로 보고 세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어 면밀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또한 2014년 1월에는 '문예기금 운용기관의 보조금 지원기준 보완필요 의견'이란 보고서를, 그해 2월에는 '문화진흥기금 지원사업 심사체계 보완 필요 여론'이란 보고서도 제출했다. 같은해  3월에는 좌성향 문제 단체 15개와 문제 인물 249명을 적시한 '문예계 내 좌성향 세력 현황 및 고려사항'이란 보고서를 올렸는데, 이번에 공개된 내용에는 15개 단체와 249명의 명단이 나와 있다.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의 주요 인물들이 담겨 있는 셈이다. 

15개 단체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등으로 영화단체 중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영화인회의, 한국영화감독조합 등이 포함돼 있다. 249명에는 시인인 도종환 현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영화인으로는 영화단체연대회의 이춘연 대표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차승재 동국대학교 영상원장 등이 포함돼 있다. 영진위 전현직 관계자 이름도 4명이 포함돼다.

정보기관 접촉 잦은 영진위 고위직 의심

 부산 영화진흥위원회

부산 영화진흥위원회 ⓒ 영진위


영진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명단에 들어있는 전 현직 관계자들의 이름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명단을 보고 한참 웃었다"면서, "심지어 직원이 아닌 사람이 직원으로 나와 있는데, 아무도 누군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거론된 사람 중에는 휴직중인 사람 이름도 있는 데다. 정치적 활동과는 상관없이 세상을 초월해 사는 분도 있더라. 영진위 소속으로 나와 있는 한 사람은 직원들조차 누군지 모르는 분"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또한 "계속 승승장구한 직원도 들어 있다"며 어떤 과정을 통해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의아스럽다는 반응이다.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 중에는 정치 활동과는 거리가 멀지만 입바른 소리를 종종해서 윗분들이 안 좋아하는 직원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정보수집과정에서 내부자들의 조언을 참고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영진위 내부에서는 오랜 기간 정보기관 쪽과 접촉한 사람이 있다며, 사적인 감정이나 판단을 전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영진위 또 다른 관계자는 "높은 직책에 계신 분 중에 정보기관 쪽에 영진위 내부동향을 알려주는 분이 있다"며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신원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영진위 관계자들은 "이 모든 게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이어오며 쌓인 적폐의 일종"이라며 '새로운 위원들이 선임됐고, 위원장 선임도 앞두고 있는 만큼 철저히 청산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화계에서도 지난 정권의 영화계 농단에 동조한 이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박근혜 정권 아닌 이명박 때 작성됐을 가능성

 10월 30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공개한 문예계 내 좌성향 인물에 이름이 올라 있는 영화인들.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정, 방은진 감독, 봉준호 감독

10월 30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공개한 문예계 내 좌성향 인물에 이름이 올라 있는 영화인들.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정, 방은진 감독, 봉준호 감독 ⓒ 성하훈


한편으로 영화계에서는 30일 공개된 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가 이명박 정권 때부터 관리해온 명단이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온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관리해온 블랙리스트라는 것이다. 근거는 이름 옆에 붙은 경력들이 오래된 게 많다는 점이다. 작성 시점을 2014년 3월로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이전 경력들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경우 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표기돼 있으나, 2012년 8월 동서대 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 위원장은 중앙대 교수로 있던 이명박 정권 때 부산영화제에 대한 좌파 공세 속에 강제로 쫓겨날 뻔했던 위기를 겪었다. 당시 부산영화제를 좌파라고 한 핵심은 이용관 전 위원장 축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서울영상위원회 기획홍보팀장으로 표기돼 있는 서수민 현 한국영상위원회 해외사업팀장의 경우도 2010년 서울영상위를 나와 그해 10월부터 2015년까지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후 귀국해 한국영상위원회 일을 맡고 있는데, 2010년에 맡았던 직책으로 표기돼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정리해 놓은 내용이 수정 없이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것으로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방은진 감독 역시 단편영화 '트레일러' 연출이라고 나와 있을 뿐 작성 시점인 2014년 3월 이전에 연출한 장편 <용의자X> 등은 빠져 있다. 민노당 당원으로 표기된 봉준호 감독과 김태용 감독, 배우 문소리, 오지혜,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으로 표기된 박찬욱 감독도 2009년~2010년의 이력이다. 류승완 감독도 2013년 1월에 개봉한 <베를린>이 아닌 2010년 개봉한 '<부당거래> 감독'으로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이명박 정권 때 작성된 국정원 블렉리스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249인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강석필 감독은 "그만큼 오래 전부터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광으로 생각하겠다"며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명단이 없는 일부 영화인들은 "열심히 투쟁하지 못한 것으로 반성한다"며 조소를 보냈다.

한편, 이명박 정권 블랙리스트는 최근  문성근 명계남 배우 이창동 감독 등 82명 명단이 공개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 박근혜 이명박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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