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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숙 씨가 근무한 1990년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내부 사진이다. 박
 씨는 퇴직 후 유방암에 걸렸다. 3라인은 2009년에 폐쇄됐으나, 삼성은 피해자들이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왔다.
▲ 1990년대 3라인 클린룸 내부 사진 박민숙 씨가 근무한 1990년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내부 사진이다. 박 씨는 퇴직 후 유방암에 걸렸다. 3라인은 2009년에 폐쇄됐으나, 삼성은 피해자들이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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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중 최초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고 황유미씨는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근무했다. 삼성은 "일반적으로 2~3년이 소요되는 공사를 착공 6개월 만에 완공"했다며 1987년 8월 설립된 기흥공장 3라인을 '기적'이라 이른다. 노동자를 쥐어짜낸 '덕택에' 삼성전자는 3라인 설립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졸속 공사와 노동 착취는 3라인 한 곳에서만도 수십 명의 직업병 피해자와 5명의 백혈병 사망자를 낳았다.

"3라인에서 유미씨가 맞은편에서 근무해 서로 인사한 적이 있어요"

은영(가명)씨는 3라인 생존자다.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은영씨는 확산, 세정, 임플란트 등 여러 공정에서 일했다. 그곳에서는 공간만 있으면 설비가 설치됐고, 배기라인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3라인 설비들이 많이 노후화돼서 이것저것 고치는 게 많았고, 셧다운될 때도 있었어요. 4라인에서 못 쓰던 설비를 3라인으로 들여와 설비 개수가 늘어나기도 했어요."

설비들로 빼곡한 3라인이 충분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여러 공정을 드나들며 불규칙적인 교대근무를 수행해야 했던 은영씨는 밀폐된 공간에서 각종 독극물에 복합적으로 노출됐다. 3라인에서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조차 미비했다. 그나마 갖춰진 보호구도 물량 조달 압박 때문에 사실상 착용할 수 없었다.

"폴리 공정에서 냄새 나는 황갈색 연기가 눈에 빤히 보였어요. 하지만 방독면은 아예 없었지요. 불산이 튀는 환경이었는데 움직임이 둔해질까봐 고무장갑도 못 꼈어요."

은영씨는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웨이퍼를 유해물질에 담가야 했다. 감광액 냄새가 특히 역했다. 아세톤, IPA 같은 독성유기용제는 맨손으로 벤코트에 묻혀 '일반 물티슈 쓰듯이' 설비 청소에 사용했다. 다른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가 증언했던 바와 같이 은영씨도 안전 교육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故) 황유미 씨가 보관하고 있던 3라인 확산 공정 호리존탈 설비 매뉴얼의 사진이다. 해당 설비는 800~1200 ℃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은영(가명) 씨도 같은 설비를 다뤘다.
▲ 3라인 확산 공정 호리존탈 설비 고(故) 황유미 씨가 보관하고 있던 3라인 확산 공정 호리존탈 설비 매뉴얼의 사진이다. 해당 설비는 800~1200 ℃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은영(가명) 씨도 같은 설비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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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은영씨는 어깨 통증과 팔다리 감각 이상, 몸살 같은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지 마비 증상과 약물 부작용까지 이어진 탓에 안정된 수술과 재활이 필요했던 은영씨는 이듬해 퇴사했다.

시력이 저하되기 시작한 2008년, 은영 씨는 10만 명당 3.5명이 걸리는 희귀질환인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발병률이 매우 낮은데도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라인 오퍼레이터 중 다발성경화증 피해자는 은영씨까지 4명이나 확인됐다. 은영씨처럼 유기용제 노출과 20세 이전 교대 근무, 야간근무를 겪은 다른 세 명의 피해자는 현재까지 모두 산재인정 판결을 받았다.

시간이 흐른 뒤 은영씨는 인터넷에서 삼성이 '이미 지출된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까지 보상해준다는 소식을 접했다. 은영씨의 어머니는 울분을 토했다. 힘들게 모은 의무기록과 진료비 내역, 진단서를 삼성에 보냈으나, 그들이 제시한 보상금은 터무니없는 수준이었다.

은영씨는 무엇보다도 피해자를 대하는 삼성의 일방적이고 불투명한 태도가 언론에서 본 것과 너무 달라 실망했다. 보상금 산정 과정과 이유를 물어도 삼성 관계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은영씨는 "피해자에게 상한선을 정해두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등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에 대해 신속히 산재 인정하라." 지난 10월 31일(화) 반올림의 제13차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이 열렸다.
▲ 반올림 제13차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등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에 대해 신속히 산재 인정하라." 지난 10월 31일(화) 반올림의 제13차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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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보상 거부한 은영씨 등 피해자 5명 집단 산재신청

지난 10월 31일(화) 은영씨(삼성반도체 1997~2005년 근무)와 김소○씨(삼성디스플레이 2005~2008년 근무), 이화정씨(SK하이닉스 2005~2015년 근무), 정은규씨(삼성디스플레이 2010~2015년 근무), 권○○씨(삼성전기 1994~1999년 근무)가 반올림을 통해 집단으로 산재를 신청했다. 이번 제13차 집단 산재신청으로 총 94명의 전자산업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 8월 29일 2015두3867 판결에서 "비록 노출허용기준 이하의 저농도라 할지라도 상시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현대의학으로도 그 발병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 전향적으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 산재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삼성의 산재 신청 방해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남발이 직업병 진상 규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반올림은 기자회견을 통해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해온 "삼성전자가 여전히 직업병 문제에 대해서 철저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직업병 산재 은폐, 독성물질 사용에 대해 공개사과하고, 피해자들에게 정당하게 보상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아울러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 또한 과거의 구태를 답습하며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의심스럽다"고 비판하며 공단의 신속한 산재 인정을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우용 님은 반올림 청년인턴입니다.



태그:#반올림, #삼성직업병, #삼성반도체,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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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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